멋진 닭고기 정식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시내 관광을 하기로 했다. 먼저 화장장으로 갔다. 산자와 죽은 자가 같이 있는 곳. 죽은 자와 헤어지는 곳. 곳곳에 시신 타는 냄새가 역하다. 건기라서 하천 물은 마르고 오염도는 심각하다. 어디서 아주 슬픈 곡조의 군악대 조가가 들려온다. 군인들이 도열해 있다. 그들은 건너편의 망자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계급이 꽤 높은 자가 사망했다고 한다. 반군과의 교전에서 죽은 모양이다. 잠시 주변이 숙연해졌다. 아! 죽음 앞에서는 계급이 높은 자나 낮은 자나 공평하구나. 죽은 자를 보내려고 제사 지내고 난 후 재물을 강물로 버리자 주변 아이들이 금방 물로 들어가 그것을 건져간다. 먹기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주변에는 확인만 되지 않았을 뿐 거적을 뒤집어 쓴 자가 전혀 미동도 않은 체 자고 있다. 그는 아마 죽어 있을지도 모른다.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은 그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그가 아픈지, 잠자는지, 죽었는지. 여기는 이런 곳이다. 자연계에서 죽음은 하나의 과정일 뿐인 것을.....

 

 

 

* 1/10 셀파족 학교 방문과 네팔 전통 춤 관람과 체험

 

  조금 쌓인 피곤함을 말끔히 없앨 만큼 제법 잠을 푹 잤다. 아침 기분이 상쾌하다. 9시경 호텔을 출발하여 셀파족 학교를 방문하기로 했다. 정성스레 준비한 옷가지와 학용품을 버스에 싣고 약 40분 정도 버스를 달려(카투만두 시내에서) 외곽에 있는 초ㆍ중ㆍ고가 함께 있는 공립학교를 방문했다. 멀리 구름 속에 보이는 설산이 내일부터의 트레킹을 설레게 한다. 학교의 시설은 아주 열악해 보였다. 과학실을 가 보니 교사가 그린 태양계 그림이 붙어있다. 선물을 학교에 모두 전달하고 학교 측에서 알아서 분배하면 좋겠는데 현지 가이드 말이 그렇게 하면 아이들에게 골고루 배분되지 않는다고 했다(중간에 횡령자가 있다는 말이겠지) 그래서 우리는 일일이 낱개 포장을 하는 수고를 했던 것이다. 나 역시 교사지만 (이 학교의 교사는 국가에서 선정한 절반과, 그 지역에서 선발한 절반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국가와 일반 국민이 교사를 절대로 믿지 못하는  국가의 장래를 어찌 생각해야 할까 마음이 찹찹하다. 그러나 교실에 들어섰을 때 어린이들의 눈은 그저 말고 초롱초롱하기만 하다. 4명 정도씩 3교실을 방문하고 선물을 주기로 했다. 우리가 들어선 교실에서는 그래도 내가 나이가 많다고 나보고 학생들에게 한 마디 하라고 했다. “초롱초롱한 여러분을 만나서 행복합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저는 고등학교 교사랍니다. 모두 새 옷으로 여러분에게 기쁨을 주었으면 좋았을 것인데, 일부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입던 옷 중에서 새것을 잘 세탁해서 가져온 것입니다. 기꺼이 받아주신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여러분을 보니 여러분은 모두 아주 총명한 것 같습니다. 부디 열심히 공부하여 네팔의 훌륭한 일꾼이 되어 주세요” 통역을 담당했던 핀조는 한국어에 능통한 일류 통역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우리의 교육이 무너진다. 학교가 무너진다고 하지만. 어느 시대에도 그런 소리는 늘  있어 왔다. 이 학교를 방문하며 적어도 우리나라의 성장에 교육이 얼마나 공헌 했는가를 절감했다. 학교를 방문하는 과정에서 곳곳에 있는 정부군의 초소가 이곳이 반군의 출몰지역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네팔의 정정은 아주 안정된 것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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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진3  (0) 2006.09.18
산사진2  (0) 2006.09.18
 

“히말라야 오지 학교 탐사대”라는 이름으로 우리 대원 21명은 1월 8일부터 1월 24일까지 16박 17일의 일정으로 네팔을 다녀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두 곳의 학교도 방문하고 네팔의 불교문화와 힌두교문화, 랑탕의 깊은 계곡과 눈 덮인 랑탕히말의 자연을 보고 티벳 문화의 흔적 등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그 기억이 잊혀지기 전에 서투르지만 후기를 남기려 한다.

   

 

 웬 장비가 이리도 많을까? 사람이 며칠을 사는데 이리 많은 것들이 필요하구나. 1월 8일 충주 청소년 수련관에 모인 우리 일행은 바리바리 짐을 꾸려 14시 30분 인천 공항으로 출발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차들이 꾀 많았다. 우리의 장도를 축하하려는 듯 눈보라가 멋지게 휘날렸다. 밤 9시에 인천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5시간 30분 정도 걸려 한밤중에 방콕에 도착했다. 카투만두로 가는 연결 비행기 노선이 맞지 않아 우리는 무려 8시간 정도를 공항에서 기다리다가 11시 30분 비행기로 이튿날 오후 14시 30분경 카투만두에 도착했다. 덴지와 핀조 일행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주황색 꽃목걸이는 만든이의 정성이 가득했고, 아름다웠다. 버스로 시내를 거쳐 안나푸르나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긴 비행시간과 방콕에서 기다리기 지루하여 마신 양주 때문인지 몹시 피곤하다. 잠시 시내를 산책했다. 2002년도에 왔을 때처럼 공해에 눈과 목이 아리다. 카투만두의 대기오염은 상상을 초월한다. 자동차 배기가스와 기온이 안정된 고도가 높은 분지의 특성 때문이다. 예전보다 차와 오토바이가 더 늘어난 듯하다. 그러나 그곳 사람들은 별 반응이 없다.

  저녁은 빌라에베레스트에서 한식으로 했다. 기내식과 간식으로 깔깔해진 입맛에 역시 우리의 된장국과 김치는 특효약이다. 타멜 거리를 지나 호텔로 돌아오는 도중에 교통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가는 것 같다. 쉴 새  없는 차와 오토바이의 경적소리, 사람들과 자전거가 휩싸여 그냥 흘러간다. 먼지와 향냄새가 뒤섞여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어서 빨리 이 도심을 벗어나고 싶다. 저녁 후 동료들은 내일 방문할 학교의 옷가지를 포장하고 정리한다. 콜멘에서 지원한 80벌의 옷과, 각 학교에서 수거한 옷가지들을 정리하는데 꽤 많은 양이다. 많은 사람들의 따스한 정이 모여 있는 옷가지들이다. 이제 깊은 잠을 청해야겠다. 룸메이트는 태권도로 몸을 단련한 58세의 신흥고등학교 체육 선생님이신 최창원 선생님이시다. 크! 최 선생님은 펜티 한 장에 웃통도 다 벗고 잠을 잔다. 나는 옷을 다 입고 자도 약간 추위를 느끼는데 대단한 청춘이다. 구랫나루에 가슴에 털 난 사나이다. 잠자는 모습을 흘깃 훔쳐보니 한창때는 세상 무서울 것이 없었을 듯한 태권도 챔피언이다. 나이는 나보다 한참 위이지만 이런 무쇠 사나이를 보디가드(?)로 둔 나는 얼마나 행복한 녀석인가! 인천 공항에서부터 장창락 기자와 나는 담배를 끊기로 약속했다. 담배를 한 대 피우다 걸리면 네팔  토종닭 한 마리를 사기로 했다. 담배를 안 피우기로 한지 24시간이 약간 더 지났다. 약 기운이 떨어져서인지 머리가 띵하고 의욕도 없고 기운도 없다. 주변 사람들은 이제 생각이 날 때가 되었는데 한 대 피우면 어떨까 하고 유혹한다. 그깟 닭 한 마리가 뭐 대수냐는 듯.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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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일기 제13일] 다시 인천으로!

8월 22일.


아침을 일찍 먹고 짐을 챙겼다. 체크아웃을 하는 중에 누가 또 방안에 있던 과자와 음료를 먹었나 보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린다. 김 사장이 어젯밤 장난 전화 한 사람은 벌금을 내야 한다고 겁(?)을 주기도 한다. 물론 그대로 믿는 아이들은 없다.


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하였다. 모든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된다. 공항 밖에 나와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자유시간을 주었다.


돌아다니다 보니 삼성컴퓨터가 있다. 청소년 희망 찾기 탐사대 홈페이지에 들어와 보니 재준 어머니의 조바심이 들어 있었고, 자연 어머니의 응원이 들어 있었다. 내가 관리하는 카페에도 들어가 보았다.


출국 시간이 되어 출구에 집결하였다. 이제 뉴질랜드 대원들과 김 사장, 김 부장과 이별을 해야 하는 시간이다. 한 줄로 늘어서 이별의 악수를 나누는 가운데 자연이, 선정이, 예진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꼭 다시 오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면세점에서 임 선생님과 와인을 샀다. 와인의 세계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어 김 사장의 도움을 받아 적어둔 것으로 샀다. 이윽고 탑승 시간이 되어 비행기에 올랐다.


이 피디가 사 온 술을 꺼내 놓는다. 일찌감치 마시고 잠들 자자는 것이다. 주변에 있는 지도자들과 나누어 마셨다. 온몸이 나른해져 온다. 그래도 이 피디는 잠이 안 오는지 연신 왔다갔다 한다. 스튜어디스에게 맥주를 얻어와 나누어 마셨다. 석희와 돌아가면서 맥주를 꽤 많이 얻어다 마셨다고 한다.


비행기는 홍콩 공항에 도착하였다. 뉴질랜드에서 홍콩으로 올 때는 올수록 시간이 뒤로 간다.


홍콩에서 인천으로 오는 비행기는 뉴질랜드에 가는 것에 비하면 순식간이다. 아시아나 항공을 타서 스튜어디스가 한국 사람이니 언어에 대한 부담감도 없다. 잠깐 사이에 한국에 도착한 듯 싶다.


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빠져나오니, 대원들의 가족들 모습이 보인다. 이미 전에 본 적이 있는 재준이, 윤미, 지은이, 슬기 부모님이 얼핏얼핏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COSMO SNF 직원들이 귀국하는 대원들을 위해 꽃다발을 준비해 가지고 나와 환영해 주었다. 내 참 귀국하면서 이런 환영 인사를 다 받아 보다니.

COSMO SNF 직원들과 가족들, 대원들이 함께 모여 기념 촬영을 하였다.


그리고 또 다시 길게 작별 인사가 이어졌다. 마주잡는 손 안에는 따뜻한 정과 추억이 담겨 있었다. 나는 임 선생님과 건호와 함께 충주로 왔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는 추억과 고마움과 희망이 가득 들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언제고 이들을 다시 만나면 우리는 또 하나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을 것이다. '아오테아로아', '희고 긴 구름의 나라'에서의 생활을 떠올리며.

 

[탐사일기 제12일] (2) 노보텔에서 뉴질랜드를 새기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인 노보텔로 돌아왔다. 도착해서 방을 배정받고 간단히 씻고 앉아 있으려니, 다들 모이라는 전갈이 왔다.


카메라를 들고 가 보니 대원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김 팀장의 지도로 롤링 페이퍼(이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를 작성하였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느꼈던 점, 하고 싶은 말, 궁금한 것 등을 담아 성심 것 적어 주었다. 누가 장난기가 발동하였는지 나중에 받아 보고는 이게 뭐냐고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석희부터 민상이까지 모든 대원, 김 대장(김 대장과 김 사장은 나중에 들어왔다.)과 모든 지도자들. 모두 숙연한 가운데 돌아가며 소감을 말하다 여전사 의정이 차례에서 그만 울음이 터진다.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의정이게서 여성적인 면모를 느끼게 된다.


이것으로 뉴질랜드에서의 탐사대 활동은 마무리되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남아 아쉬움을 달래고 있는데, 나와 임 선생님은 방으로 돌아와 맥주 한 캔씩을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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