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일기 제9일] (1) 타우포 호수에 기쁨의 눈물을 보태다

8월 18일.

기상 시간은 좀 여유가 있었지만, 늘 습관이 되어 5시가 조금 넘으면 잠이 깬다.


식당으로 갔더니 조장 선생님들이 모여든다. 소 선생님이 수첩에 적은 쪽지를 보여준다. 우리 조는 '만성 공주병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환자 둘을 보내고, 맏며느리 진주와 귀염둥이 자연이를 얻었다.


그런데 그동안 지글지글 속만 썩였던 슬기가 새로 바뀐 지도자, 조원들이 맘에 든다며 좋아하고 있다. 그동안 미운정만 쌓였는데도 그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는 서운한 기분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간은 흘러 식당에 놓아두었던 모든 집기들을 다 챙기고 출발하였다.


우리가 처음 들른 곳은 송어양식장이다. 이 곳은 송어를 식용으로 잡아 팔기 위해 양식하는 것이 아니라, 산란기를 맞이하여 올라온 송어의 알을 받아 부화, 양식하여 다시 방류하기 위한 시설이다. 맑은 물 속에는 치어들이 노닐고 있었다. 자연과 어우러진 참 아름다운 풍경이다.


양식장에는 송어의 성장과정을 알 수 있는 자료와 낚시 도구나 그 밖의 낚시와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는 박물관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와서 공부하기에도 좋도록 신경을 써 준 것이 좋았다. 이곳에는 이렇게 규모가 크지는 않아도 올망졸망하게 역사와 정보를 담고 있는 박물관이 많아 산교육의 장이 되고 있었다. 탐방 코스를 따라 조금 더 가니 강에서 낚시하는 풍경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다.


호수 주변에서는 어린 아이에게 인조 미끼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는 모습도 보이고, 낚시하는 방법 및 조리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모습도 보인다.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송어양식장 견학을 마치고, 타우포 호수로 갔다. 분화구에 물이 고여 호수를 이루었다는데, 크기가 서울만 하다고 한다. 그야말로 끝없이 펼쳐지는 호수 광경이 장관이었다. 물가에는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갈매기와 흑조들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뉴질랜드 사람들의 자연을 사랑하는 정신 때문인지 아니면 먹이를 제공하는 사람들에게 길들여져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사람이 다가가도 그다지 도망가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새들에게 빵과 과자를 던져주고, 먹여주고. 모두들 재미있게 놀고 있다.


점심시간이 되어 우리는 조원과 마지막 오찬을 함께 했다. 메뉴는 컵라면.


 

[탐사일기 제8일] (2) 명(明), 그리고 암(暗)

루아페후 산 등정에 성공한 데 대해 모두들 들뜬 얼굴이다. 저녁에는 '크리스천 라이프' 기자단이 준비한 바비큐 만찬을 하였다. 김 사장의 말처럼 뉴질랜드의 모든 쇠고기를 다 가지고 온 듯하였다.


갖가지 부위별 고기맛을 보니 금세 배가 불러왔다. 후식으로는 골든 키위를 잘라 먹기도 하고, 하룻동안 있었던 이야기도 하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배가 불러 더 이상 그 근처에 머물러 있다간 다리가 돌아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밖에서는 아이들이 왁자지껄 소리를 내며 먹는 데 분주하였다. 아마 그 중에 말이 없는 사람이 있었다면 오서방과 재준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앞서 이야기 한 외국인 아이들까지 합세하여 그야말로 잔치분위기였다.


식당에 앉아 있으려니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고, 크리스천 라이프 지 기자들도 함께 자리를 하게 되었다. 주제는 교민 사회의 삶의 모습에서, 탐사대의 구성 배경, 이민 생활의 어려움 등 쉴 새 없이 바뀌어 가는데, '라이프'지 기자는 우리를 취재하고, 한 기자는 그들을 취재하고, 임 선생은 또 그들을 취재하고, 온통 취재 열기로 가득하였다.


그러다가 아이들을 돌려보내고, 지도자끼리 협의회를 하였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조원에 대한 트레이드 이야기가 나왔다. 결론은 애초에 조 편성을 하였던 소 선생님에게 트레이드 권한을 위임하기로 하고 협의회가 마무리되었다. 발표는 내일 아침 조회 시간에 하고, 짐은 타우포에 도착한 다음에 옮기기로 하였다.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앞이 환하게 밝아지는 기분이다. 그동안 겪었던 맘 고생이 사르르 얼음 녹듯이 녹아내리는 듯 한 기분이다.


차량에 돌아와 아이들에게 차마 내색하지 못하고, 아이들의 건강 상태를 살피고, 평소에 하던 말만 간단하게 전한 후 잠자리에 들도록 하였다.


 [탐사일기 제8일] (1) 루아페후, 너에게 나를 보낸다.

 

새벽 3시 50분에 눈을 떴다. 밖에 나와 보니 오늘도 날씨가 좋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주먹밥을 준비하였다. 단비 조는 주먹밥에 콩, 김치 등을 이용하여 얼굴 모양을 만들고 있었고, 경록이 조는 김으로 눈사람 주먹밥을 만들고 있다. 오서방이 속해 있는 조는 주먹밥 대신 샌드위치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통가리로 산행시 주먹밥이 너무 차가워 먹기가 힘들었나 보다.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뉴질랜드 교민이 운영하는 '크리스천 라이프'지 기자 일행이 방문하였다. 오늘 루아페후 등반 과정을 동반 취재한다는 것이다. 오클랜드에서 밤새(8시간으로 기억) 달려 왔단다. 그 정성이 놀랍다. 이곳의 도로는 자연환경을 최소로 훼손하는 방법으로 건설되었기 때문에 거리상으로는 서울~부산 정도이지만 굴곡이 심하여 시간이 많이 걸린다.


아침밥을 준비하는 과정에도 인터뷰를 하느라 바쁘다. 활달한 윤미는 또 인터뷰의 대상에서 빠질 수 없었다. 어젯밤 석희와 등반 연습을 한다고 스틱을 가지고 돌아다니던 생각이 난다. 내가 그를 발견했을 때는 막 타임캡슐에 묻을 소원에 관한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야 그 동안 여러 번 들었기에 그다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7시 쯤 되어 차에 올랐다. 40분쯤 걸려 스키장 입구 주차장에서 내려 대열을 정비했다. 크리스천 라이프의 편집인인 이승현 목사님의 기도로 루아페후 산 정상 등반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결의를 다졌다.


이번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전 대원에게 안전벨트를 차게 하고, 시각 장애 대원들에게는 특별히 헬멧을 착용하도록 하였다.


대원들은 리프트 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태양 빛이 굉장히 강렬하다. 소 선생님의 지도로 즉석 몸 풀기 운동을 실시하였다. 스키를 타러 온 외국인들이(이런, 우리가 외국인인가?) 재미있는 듯 따라한다. 이제 곧 리프트를 타고 올라갈 것이다.


처음에는 2인용 리프트를 타고 중간에서 다시 4인용 리프트를 탔다. 리프트에서 내려 대원들이 다시 집결하였다. 여기가 해발 2,100미터. 이제부터 약 700미터 가량은 우리의 힘으로 올라가야 한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건호가 아직 아이젠을 착용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어제 착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모양이다. 이미 선발대는 출발한 상태이고 마음이 급하니 아이젠 착용이 잘 되지 않는다. 건호의 아이젠 착용을 마무리하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대원들에게 잘 다녀온다고 인사를 하고 등산을 시작하였다.


이러는 와중에 시간을 지체하여 대열과 많이 떨어졌다. 오늘 같은 날은 앞뒤로 돌아다녀야 역동적인 모습을 담을 수 있기에 좀 무리하더라도 부지런히 걸어 대열과 합류하려고 하였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후미에서는 오서방이 벌써부터 지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고, 박 부대장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지친 아이들을 앞으로 몰고 있었다.


부지런히 걸어 선두의 대원들을 만났다. 이곳은 통가리노 크로스 트래킹 지역에 비해 바위가 없고, 길이 넓어 장애 학생들이 걷기에는 한결 수월하나 처음부터 계속 가파른 경사길이어서 모두들 호흡이 거칠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저 멀리 나우로호에 산이 흰빛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하늘은 코발트 빛으로 이렇게 푸른 하늘은 처음 본 듯 싶다. 날씨가 아주 맑아서 정상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이는데 가도가도 끝은 보이지 않는다. 지그재그로 길을 내며 산길을 오른다.


김 대장과 이 피디는 촬영에 여념이 없고, 석희와 지 사장이 윤미를 이끌고 선두에 섰다. 김 팀장과 친구 사이로 시설에 대해 알아보러 왔다는데, 자기 할 일은 제쳐두고 팔 걷어 부치고 열성적으로 아이들을 돕는다. 성실한 모습이 가히 남의 귀감이 되겠다.


그 뒤로는 민상이가 종석이와 함께 길을 오르고 있다. 그리고 조금씩 지쳐가는 대원들이 보이고 저쪽 후미에서는 재준이가 양쪽에서 부축을 받으며 쓰러질 듯 걸어오고 있다. 참 먹는데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녀석이 지구력이 좀 부족한 게 탈이다.


앞뒤로 돌아다니며 촬영을 하니 남들보다 배는 힘이 드는 기분이다. 산 정상에 올라 주변 모습과 아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산 정상에 아이들의 소원이 담긴 타임캡슐을 묻고, 기념 촬영을 마친 후 분화구를 구경하러 내려왔다가 그냥 하산하기로 하였다.


이제 시간이 1시가 넘어가니 그새 눈이 녹아 발이 푹푹 빠진다. 발걸음을 옮기기가 힘들 정도로 빠져든다. 바람을 피해 어느 정도 내려와서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하였다. 건호와 종석이가 점심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한다. 가져온 빵을 나누어 주니 맛있게도 먹는다. 식사 후에는 깜짝이벤트로 김 팀장이 발대식 당시 준비했던 부모들의 영상 편지를 보여 주려 하였는데, 강렬한 햇빛과 바람 소리 때문에 잘 보이지도 잘 들리지도 않는다. 할 수 없이 다음 기회로 미루고 하산을 서두른다. 오후 3시가 넘으면 리프트가 끊기기 때문이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설산을 올려다보며, 내려다보며 하산을 하였다. 중간에 경사가 급한 곳은 로프를 설치하였는데, 눈이 녹아 한참씩 미끄러진다. 정상에 오르고 난 끝이라 이제는 미끄러지는 것도 즐거운 모양이다. 모두들 소리를 지르고 웃고 떠들며 떠들썩하다.

모두들 성취감을 한아름 안고 하산하였다.


 

8월 16일.


평소 습관처럼 5시 30분에 잠이 깨었다가, 좀 더 뒤척이고 7시쯤에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자유시간, 우리조는 아침을 먹을 것인지 아닌지 다른조는 다들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하는데 아직도 자고 있는지 보이질 않는다. 오늘 아침은 다른조에서 해결하였다.


아침을 먹고 가까운 Visitor Centre에 걸어서 갔다. 그곳에서는 무분별한 파괴를 막기 위해 뉴질랜드 정부에 통가리로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주기를 바라며 기증하였다는 마오리 추장(Horonuku, Te Heuheu Tukino IV, Ariki) 흉상이 서 있고, 1996년 화산 폭발 당시 감지 기록 등을 전시하는 전시 공간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매장이 있었다. 안쪽 극장으로 들어가 역사 기록물 "The sacred gift"와 화산 폭발 과정을 다루고 있는 영상을 보았다.


한 가운데에는 통가리로 국립공원의 모형도를 만들어 놓아 어제 다녀온 망가테포포 새들과 내일 오를 루아페후 산의 모습들을 미리 엿볼 수 있었다. 영상 관람을 마치고 아이들은 선글래스를 써 보기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놀고 있었다.


김 부장에게 오후에 간단히 산책할 만한 코스가 있는지 물어 보니 타라나키 폭포를 추천하였다. 세시간 정도가 걸릴 거라고 했다. 임 선생님, 소 선생님, 한 기자가 함께 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점심을 먹고 나오면서 그 동안 일정에 쫓겨 이런 좋은 경치가 있는 줄도 모르고 차 안에서만 보냈던 시간을 아까워하였다. 길이 평탄하게 이어지므로 노인분들이 많이 보인다. 네팔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나마스테." 인사를 하듯이 우리는 "Hi.", "Hello." 인사를 했다. 모두들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했고, 그 중에는 우리 일행을 일본인으로 생각했는지 "곤니찌와" 하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있었다.


한참 아름다움에 취해 길을 걷다 보니 폭포 하나가 나타난다. 빙하 녹은 물이 높은 바위 위에서 큰 소리를 내며 아래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길을 내려 폭포 아래로 내려가 시원한 빙수 한 잔 씩을 나누어 마시고, 기념 촬영을 하였다.


돌아오는 길은 올 때와는 달리 나무숲이다. 숲길 또한 잘 보존되어 있어 트레킹 코스로는 제격이었다.


돌아와 보니 아침에 정찰 산행을 갔던 김 대장 일행이 도착해 있다. 김 대장의 얼굴에 희색이 도는 것으로 보아 내일 산행이 예상했던 것보다 좋은 모양이다. 김 대장은 루하페후 등정을 대원들을 10명씩 두 조로 나누어 이틀에 걸쳐 산행을 하자고 했다. 지도자들이 이틀 동안 산행에 동행해서 아이들을 모두 산행에 동참시키자는 것이다. 김 대장도 마음에 부담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늦은 오후 시간엔 박 부대장, 임 선생님, 한 기자와 함께 골프장이 있는 곳까지 걸으며 산책을 했다. 그 사이 김 대장은 아이젠, 헬멧 등을 구하러 나갔다. 저녁 햇살을 받으며 잔디 위를 걷는다. "뉴질랜드에 가서 골프를 치고, 스키를 타고 왔다는 말은 못하더라도 골프장을 한 바퀴 돌았다, 스키 리프트를 타고 2,100미터까지 올라갔었다고만 이야기해도 사람들이 그렇게 이해해 주기 때문에 이 코스는 꼭 돌아야 한다."고 박 부대장이 너스레를 친다.


내려가다 보니 1929년에 세워졌다는 샤또 통가리로 호텔이 보인다. 아이들과 눈싸움을 하는 가족들도 있고, 저만치에는 눈사람도 세워졌고, 더 멀리에는 홀을 돌며 골프를 치는 사람도 있다. 갑자기 낭만적인 분위기가 되어 잔디 위를 걷다 해가 질 때쯤 되니 날이 추워지기 시작한다.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김 대장이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부대장을 부른다. 아이젠을 빌려왔으니 아이들에게 지급해야겠다고 한다. 박 부대장이 차를 타고 가고, 남은 일행은 천천히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협의회를 하는 중에 산행은 다시 하루에 끝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태리와 혜진이는 체력 여건이 좋지 않아 산행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이들은 도우미 학생들이 리프트를 타고 함께 올라가서는, 그 곳에서 잔류학생들끼리 활동을 하도록 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산행을 한다는 계획이었다. 도우미는 자원한 단비, 예진이, 경록이, 형탁이, 선정이로 결정되었다.


곧바로 대원들에게 대여한 아이젠을 지급하고, 내일 일정에 대한 안내와 주의사항을 전달하였다. 박 부대장이 돌아다니며 아이젠 착용 방법을 교육하였다.


8시부터 본부 차량에서는 시각장애 학생들과 뉴질랜드 교민 학생들의 소원 적기가 있었다. 이들의 소원을 적은 쪽지는 내일 루아페후 산 정상 만년설에 묻게 될 것이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기회가 되면 다시 그곳에 올라 타임캡슐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조원들에게 내일 산행에 필요한 준비물을 미리 챙겨놓도록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어제의 불편했던 심기가 다시 풀리게 되었다.


 

[탐사일기 제6일] (2) 울고 싶어라, 이 마음.

모두들 얼굴에는 성취감이 담겨 있다. 게다가 내일은 예비일로 잡혀 있어 대원들 표정이 여유롭기까지 하다.


저녁을 먹고 협의회를 가졌다. 오늘 혜진이와 태리의 예를 들어 대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올라갈 수 있는 대원과 올라갈 수 없는 대원으로 편성하여 등반을 진행하자는 것이다. 소 선생은 더 나아가 공격조를 별도로 편성하자고까지 하였다.


그리고 한참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묵시적으로 동의하는 눈치다. 분위기에 휩싸여 속으로만 생각하고 선뜻 말을 못하고 있는데, 같은 의견을 가진 임 선생이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 탐사대의 활동을 산악인의 등반과 같은 성격의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교육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힘들어도 참고 견디고 노력하다 보면 마침내 눈앞에 다가오는 정상을 누구나 볼 수 있어야 한다고.


김 대장과 김 사장이 난색을 표한다. 기상 상태와 눈의 질에 따라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고, 리프트 시간 때문에 일정한 시간 안에 산행을 마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도자가 책임을 진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결론은 내일 김 대장과 김 사장이 산에 가 보아서 상태를 파악해 보고 난 다음에 결정을 짓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김 대장의 어깨를 누르는 책임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봐는 아니나 심기가 불편해졌다. 생각해 보면 이 많은 아이들이 실내 암장에서, 조령산에서, 또 여기에 와서는 OPC에서, 통가리로 새들에서 모든 대원들이 힘을 합쳐 루아페후 산 정상을 밟아 보는 모험, 극기 활동을 통해 희망을 찾아보자고 이 먼 곳까지 찾아 온 것이 아닌가. 아직 어린 대원들이기에 대표 한 둘이 정상에 가서 깃발을 꽂고 오는 것으로 만족하기에는 대원들의 마음 속 상처가 클 것이 걱정이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복잡한 마음속에 한 잔 술을 털어 넣으니 금세 감상적으로 변해 버리고 만다.


잠시 나와 바람을 쐬니 다시 정신이 맑아진다. 잘 될 거야, 모든 일이 잘 될 거야. 자기 최면을 걸어 본다.


차 안으로 들어와 보니 다시 숨이 막힌다. 건조되지 않은 빨래가 차 안 가득히 널려 있다.


구석에 태리 혼자 쓰러져 잠이 들어있고,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탐사일기 제6일] (1) 설산에서 바람 맞다

8월 15일, 광복절이다.

새벽에 일어나니 밤사이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여 있다. 밖에 나오니 새벽하늘에 별빛이 눈부시다. 정말 많은 별들이 하늘에 쏟아지고 있었다. 하늘이야 언제고 보이고, 별이야 언제고 있지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아야만 하늘은 비로소 내 눈 안에 들어오는 것이고, 별이 내 마음에 쏟아지는 것이다.


4시가 되니 아이들이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두런거리며 돌아다닌다. 아마 어떤 꿈 많은 소년, 소녀들은 아직도 단잠에 빠져들어 있을 것이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주먹밥을 만들어 챙기고 차에 오른다. 아이들에게 배낭을 잘 꾸려 놓았는지, 잊은 것은 없는지 확인하도록 하고 6시에 출발을 하니 도로 또한 빙판이다.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이동 중 오른쪽에 통가리로 산과 나우로호에 산이 어둠 속에서 수묵화처럼 피어나고 있었는데, 그 위로 산과 똑같은 모양의 구름이 얹혀 있어 새롭고 신기함을 더해 주고 있었다. 왼쪽으로는 해가 오르려고 하늘빛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나우로호에 산으로 오르는 도로에 접어드니 차는 이내 비포장길로 접어들고 잠시 달리다가 멈춰 섰다. 앞의 지 사장이 운전하는 차가 미끄러져 헛바퀴를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내려서 차를 밀었다. 뒤에 있던 차들도 탄력을 받지 못해 몇 번 더 차를 밀어야 했다.


바람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옷을 단단히 입으라고 하였다. 움직여서 땀이 나기 전까지는 몸을 따뜻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하라고 했다. 어수선한 가운데 미처 일출을 볼 수가 없었다.


차에서 내려 장비를 점검하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였다. 작년에는 이 곳에 눈이 내리지 않아서 나무다리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눈이 가득 덮여 산행이 만만치 않을 듯 싶었다.


30여 명의 대부대가 일렬로 늘어서 산행을 시작하는 모습이 참으로 장관이었다. 윤미, 종석이, 재준이, 태리, 혜진이는 1명씩 안내 보행을 하였다. 지난 번 사전 교육 때 조령산에서 산행시 안내 보행 실습을 하였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기는 하지만 이제 앞으로 경사가 급해지면 아이들이 지칠 것이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 지도자를 투입하기로 하였다.


길 옆으로 빙하 녹은 물이 내를 이루어 흐르고, 작은 폭포가 물소리로 귀를 잡고, 물빛으로 눈길을 잡는다. 눈밭 위 투명한 고드름은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인다.


민상이가 고드름을 가지고 장난을 하는 모습이 참 귀엽다. 이 피디, 김 대장, 한 기자, 임 선생님이 각자의 카메라를 가지고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인다. 저 카메라에는 대원들의 숨소리도 담기고, 눈보라도 담기고, 산도 담기고, 물도 담기고 우리들의 소망도 함께 담기리라.


저만치 산장이 나타난다. 산장에는 어제 미리 도착하여 숙박을 한 듯한 외국인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대원들은 산장에서 한숨을 돌리고, 스패츠, 아이젠 장비를 착용하고, 가방 어깨끈을 조이고, 피켈을 부여잡고 다시 출발을 한다. 길을 안내하느라 도우미들의 목소리가 어지러이 날아다닌다. 어느 다리에선가 혜진이가 다리 밑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곳도 눈밭이어서 다치지는 않았지만 도우미들이 더 주의해야 할 것이다.


외국인들 지들이 먼저 산행을 하여 길을 만들어 주어야지 장애우를 데리고 가는 우리가 길을 만들어야 하느냐고 김 대장의 너스레가 시작된다. 이 말을 듣기라도 한냥 긴 대열을 이루고 나아가는 우리 대원들의 행렬 사이로 외국인들이 지나간다. 아무래도 보행이 더디기에 늦게 출발한 이들이 우리를 지나쳐 저 앞으로 나가더니 차츰차츰 모습을 감추기 시작한다.


발걸음은 다시 이어졌고, 김 사장은 후미에서, 선두에서 아이들이게 용기를 주느라 분주하다. 김종민 팀장은 선두에서 시각장애 학생들이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눈을 발로 밟아 길을 만들었다. 참여하는 사람 하나하나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대단하다.


이제 마지막 화장실이 나타난다. 뒤집어 보면 남자들에게는 지금부터 화장실이 더욱 넓어지고 커지는 것이다. 돌아서기만 하면 화장실이 되기 때문이다. 조금 쉬는 중에 혜진이가 통증을 호소한다. 아무래도 어제 OPC에서 다쳤던 다리가 성치 않은 모양이다. 고심 끝에 김 부장이 혜진이를 데리고 내려가기로 하였다.


다른 대원들은 손을 흔들어 혜진이를 배웅하고 산행을 다시 시작했고, 이제부터는 경사가 급해져서 박 부대장이 태리의 산행을 돕기로 하였다.


그런데 태리의 상태도 좋지는 않았다. 평소 운동을 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태리는 체력이 많이 약한 편이었다. 그래 포기하려는 것을 박 부대장이 가는 데까지 올라가다가 정 힘들면 그 때 내려오자고 달래며 끌고 올라갔다. 올라가며 모처럼 태리가 환히 웃는 모습을 보았다. 태리가 곧 사람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신기해했고, 박 부대장은 네가 잘 걸어서 금세 사람들을 따라잡은 것이라고 용기를 주었다.


앞에는 소병조 선생님이 재준이를 데리고 올라가고 있었다. 소 선생님은 스틱을 양 손에 쥐고 끝을 재준이가 잡게 하여 스틱을 당겨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하였다. 산행을 하며 아이디어를 발휘하여 각자의 방식을 터득하여 산행을 하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뒤따라오던 태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속으로 내려갔나 보다 생각하고 있는데, 잠시 뒤 고개 저 쪽으로 두 명의 그림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한참을 따라온다. 그러다 어느 고개 마루에선가 박 부대장이 하산을 결심하고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외친다.


부대장과 작별을 하고, 걸음을 재촉하여 선두 쪽으로 붙었다. 가다가 지은이를 만나고, 선정이를 만나고, 진주와 윤미를 만나고, 종석이를 만나고, 그렇게 선두 쪽으로 나아갔다.


이제부터는 선두 쪽에서 카메라에 아이들을 담기로 하였다. 하늘에 구름이 몰려오고 눈보라가 치기 시작한다. 바람에 날리는 눈발이 얼굴을 때린다. 마치 소백산에서 맞는 칼바람, 모래바람을 연상시킨다.


정상이 가까워지니 바람이 더 거세지고 앞사람의 발자국이 지워지기 시작한다. 이러다가 하이트 아웃이 생기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길을 표시하는 나무 표지에는 눈이 쌓여 얼음을 이루고 있었고, 그 얼음은 심한 바람으로 한쪽 방향으로만 바람 무늬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새들 정상이 보인다. 눈보라는 더욱 거세져 이러다 날라가 버리는 건 아닌지 공포에 휩싸인 나는 피켈을 눈에 박고 꽉 잡고 김 대장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니 임선생이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나도 앞사람의 발자국을 잃어버려 엉뚱한 곳으로 길을 들어었는데 한 기자가 그 쪽이 아닌 것 같다고 조언을 하여 방향을 바로 잡았는데 임 선생이 엉뚱한 곳으로 올라간다. 바람이 너무 거세 불러도 안 들릴테니 그저 바라만 보고 안전하게 올라가기만 기대할 뿐이다.


눈보라가 좀 약해짐 틈을 이용하여 새들에 오르니 정말 눈부시게 아름답다. 사방이 온통 눈으로 덮이고 눈빛은 희다 못해 푸른빛을 띠고 있다. 어디를 보아도 그 아름다운 빛에 입을 다물지 못하게 된다.


이제 저쪽에 김 대장, 이 피디를 선두로 윤미 일행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들은 새들 정상에 선 것을 진심으로 기뻐했고, 뒤 이어 올라오는 대원들을 껴안고 축하해 주었다.


바람이 덜 부는 것을 가려 점심 식사를 하였다. 밥은 이미 식어 위 속으로 한기가 들어간다. 물은 끓여 배낭 안쪽에 넣어 두었더니 아직 따뜻하다. 점심을 먹고 나니 구름이 걷히고 저 멀리 설산들이 모습을 드러내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나우로호에 산도 자꾸만 올라가고 싶은 유혹이 생기도록 아름다웠다.


김 대장이 대원들을 불러 경사길 보행법과 미끄러졌을 때 정지하는 법을 가르쳤고, 대원들이 실습을 하였다. 촬영을 하며 굉장한 추위를 느꼈다. 등산화가 방수가 안 되어 양말까지 다 젖어 버렸기 때문이다. 여벌 양말을 가져왔지만 신발이 젖은 마당에 양말은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었다. 다음 루아페후 산 등반 때는 대책을 미리 세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산길에 들었다. 하산이 쉬울 것 같았는데 그 사이 기온이 올라가 표면의 얼은 눈이 녹아 발이 푹푹 빠진다. 심한 경우는 허벅지까지 빠진다. 밑을 내려다보면 시퍼런 것이 그 밑으로도 아무 것도 없다. 크레바스라고나 할까. 겁이 난다.


소 선생님이 부대장에게 무전을 친다. 박 부대장의 목소리가 워낙 커서 주변에서도 무슨 이야기하는지 다 들린다. 내려올 때는 하산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이렇게 하면 루아페후 산 등반도 무난하리라.


이미 많이 지친 아이들이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푸념을 한다. 그러며 언제 차 있는 곳에 도착하냐고 한 마디씩 한다. 김 사장이 아이들에게 힘을 실어준다.


하산을 하니 혜진이, 태리, 박 부대장, 김 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비를 풀고 차에 올라탔다. 아이들은 차에 타자마자 곧바로 잠이 든다. 피곤하기도 하겠지. 김 사장이 오늘 날씨가 참 좋아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날씨는 계속 맑을 예정이란다.


 

[탐사일기 제5일] (1) OPC, KOREA!

8월 14일

오늘은 OPC(Outdoor Pursuits Centre) 모험학교 활동을 하는 날이다. 날씨는 쌀쌀하고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아침에 모였을 때 소병조 선생님이 익살스런 제안을 한다. 아침 운동으로 개울에 내려가 얼음물에 손발 씻고 오기, 2km 달리기, 이 자리에서 몸 풀기 체조하기 중에 선택을 하란다. 일부 장난기 있는 아이들이 구보를 선택하고 대부분의 나무늘보들은 체조를 선택한다.


참 보면 볼수록 소 선생님은 모험학교 선생님답게 아이들을 다루는(?) 솜씨가 대단하다. 역시 베테랑 선생님이다. 체조를 하니 밤새 뭉쳤던 근육이 다 풀린다.


아침을 먹고 출발을 한다. 이슬보슬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이런 날 조심하지 않으면 안전사고의 염려가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주의를 시킨다.


OPC에 도착하였다. OPC는 에베레스트를 처음 오른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설립한 시설이라는데, 우리나라의 청소년수련원, 모험학교와 비슷한 시설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힐러리 경의 안목에 주목하였다.


오늘도 대원들을 두 조로 나누어 활동을 시작한다.

먼저 활동 들어가기 전에 서약서를 작성하고 필요한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계곡을 따라 한참을 이동하니 허름한 가건물 형태의 활동장소가 나온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한손을 가운데에 모으고 임의로 서로 손을 잡고 나머지 한손은 바깥쪽에서 임의로 잡고 있다가 뒤엉커 잡혀있는 손들을 풀어 하나의 큰 원을 만드는 게임을 하였다.


두 번째 활동으로 가상의 용암지대를 건너는 게임을 하였다. 한 장소에서 모여 있는 대원전체가 용암지대를 안전하게 지나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게임이다. 마법의 모자를 쓴 단 한사람은 안전하게 용암지대를 건널 수 있으며 모자는 오직 한번만 사용할 수 있다. 물론 모자를 쓴 사람은 다른 동료를 없거나 안거나 등의 방법을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다. 첫 번째 활동보다는 비교적 문안하게 과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과제들은 아이디어와 조원들의 단합, 회의 능력을 키우기 위한 활동이라고 한다.


다음 코스는 계곡을 가로지르는 플라잉 폭스. 일종의 활차로 뛰어내리는 짜릿함과 담력 및 끌어주는 협동심이 필요한 활동이다. 학생들은 괴성을 지르면서도 잘도 즐긴다. 나도 한번 아래쪽은 푸른 계곡이라 기분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대학 시절 병영 훈련시 했던 막타워 같은 느낌이리라.


시간을 줄이기 위해 차량으로 다음 장소로 이동하였다. 다음은 침몰해 가는 타이타닉호에서 빙하로 안전하게 탈출. 빙하로 옮겨 타기 위하여 먼저 높은 곳에 로프를 고정하는 과제를 해결하고 대원들의 지혜와 로프 하나만을 이용하여 탈출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마치면 이제 빙하가 서서히 녹기 시작하여 면적이 점점 감소하는 빙하위에서 팀원이 낙오하지 않고 견더내는 게임으로 막을 내린다.


오전 마지막 게임으로 5m 정도의 두 개의 판자에 줄이 메여져 있고, 팀원이 판자위에 올라가서 이동하는 게임이다. 대원들의 합심된 마음과 단결이 필요한 게임이었다.


이렇게 하여 오전 일정을 마치고 점심 식사 시간을 가졌는데, 시간 여유가 없어서 컵라면을 채 먹지도 못하고 다시 모여야 했다.


우리 팀의 OPC 지도자는 이름이 조시이다. 기억력도 좋고 유머도 있다. 아이들의 이름을 한번 듣고 대부분 기억한다. 정인이를 자두로 소개하여 한바탕 웃기도 하였다.


오후 일정이 이어졌다. 오후에는 주로 담력을 키우는 활동을 하였다. A조는 높은 곳에 올라가 옆 건물로 건너뛰는 훈련을 하였다. 의정이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축구도 잘한다는데, 훈련을 하는 모습을 보니 자세가 딱 잡혔다. B조는 구름다리 건너기 활동을 하였다. 진상이의 앞구르기가 눈에 띄었다.


그러다가 조그만 사고가 생겼다. 혜진이가 올라가다 다리를 부딪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급히 혜진이를 아래로 내렸다. 김 사장이 혜진이를 안아 옮겼고, 깔판을 가져다 그 위에 눕혔다. 김 대장이 달려와 다리를 움직여 보라고 했다. 보아하니 그리 심한 부상은 아닌 듯했다. 얼음찜질을 하며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일정이 계속 진행되었다. 이번에는 인공 암벽을 등반하여 번지를 하는(스카이 윙 또는 빅스윙이라고 하던가?) 스릴 만점의 모험 활동이었다. 차가운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어 손이 얼어붙고 다리 근육이 경직되는 가운데 훈련이 진행되었다. 암벽을 오르는 대원은 손이 고와 홀드를 잡기가 어려운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잘도 참고 오르며, 밑에서 확보를 보는 대원들도 불평불만 하나없이 일체감이 되어 해내었다. 이 훈련에서는 특히 지은이의 활약(?)이 눈부셨다. 올라가는 데에도 상당히 애를 먹었고, 뛰어 내리는 데는 더더구나 많은 갈등 과정을 거쳐야 했다. 박 부대장이 용기를 북돋웠지만 지은이는 좀처럼 결심을 못하고, 다리는 떨어질 줄 모른다. 차라리 현지 지도자에게 밀어 달라고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단다. 결국 전대원의 기를 받고서야 우여곡절 끝에 지은이도 다시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이 과정을 끝으로 오늘의 일정은 끝이 났다. 날이 개자 저 멀리 루아페후 산 정상이 보인다. 정상은 만년설로 뒤덮여 있다. 이제 3일 후면 우리는 저 곳에서 눈보라를 맞고 있으리라.


일정을 정리하고 다시 와카파파 빌리지 홀리데이 파크로 돌아왔다.


내일은 새벽 3시에 일어나야 하니까 일찍 잠자리에 들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일러두었다.


물건을 가지러 운전석 쪽으로 가다가 머리를 심하게 부딪쳤다. 물론 머리 조심하라는 문구가 써 있긴 하지만 그건 단지 경고 문구일 뿐 막상 닥치면 부딪치는 경우가 많았다. 전에도 몇 번 머리로 받은 적이 있는데, 이번 경우에는 강도가 매우 세었다. 주변에 별이 병아리처럼 맴돌더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저녁을 먹고 곧바로 지도자 협의회를 가졌다. 내일 산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방한모, 아이젠, 피켈 등을 지급하고, 유의사항을 전달했다.



 

[탐사일기 제4일] (2) 와카파파의 어수선한 밤

홀리데이 파크에 차를 세우니 아이들은 벌써부터 눈싸움을 하느라고 난리다. 그렇지 않다면 저 넘치는 젊은 힘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곳 홀리데이 파크에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설치되어 있어 언제든지 세탁이 가능한데 세탁과 건조를 위해서는 2달러, 1달러짜리 코인이 필요하다. 이곳은 와이토모보다 세탁 비용이 저렴했다.

석희가 우리차에 들려서 빨래감이 없냐고 묻는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빨개감과 10달러를 건데 주면 세탁을 부탁하고, 밴을 둘러보니 차의 증세가 차츰 심각해짐을 느끼게 된다. 그 동안 집이나, 학교 등을 통해서 익히 여자의 방이 늘 깔끔하고 향기 나고 아름답기만 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혹시라도 아직도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어 환상을 깨시길.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수백 가지 환상 중의 하나이다.), 점점 수납장에 있던 옷가지들이 밖으로 진출하고 있었다. 침구를 정리하지도 않고, 겉옷과 속옷들이 구석구석 발견되는데, 진출 범위도 가스렌지 위, 개수대까지 다양하다. 이러다가는 옷으로 완전히 점령당할 것 같다. 게다가 분명히 쓰레기봉투까지 걸어 놓고도 쓰레기는 발생 지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가끔 아이들이 나가고 나면 이불도 개고, 주변을 치워 주기도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 오늘은 불러 놓고 따끔하게 한 마디 하리라. 분노의 칼을 갈기 위해 숫돌을 찾아보니 갑자기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그렇다면 부드럽게라도 한 마디 하리라.


조원들을 불러 차량 청소의 당위성을 힘주어 역설하니, 이쁘게 웃으며(아이고, 내가 못 살아.) 통가리로 크로싱 끝나고 예비일에 꼭 반드시 기필코 열심히 부지런히 깨끗하게 치워 놓겠노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아직도 이틀을 더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식당으로 가니 아이들이 식사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제대로 된 밥을 먹어 본적이 없다. 다들 귀한집의 공주들이라 주방근처에는 한번도 가 본적이 없나보다. 죽에, 삼층밥에 심지어 슬기는 독특한 음식 문화의 주인공이 된 날도 있었다. 아마 딴 생각을 하고 있었겠지만 슬기가 쌀도 씻지 않고 물도 붓지 않은 상태에서 불을 켜 '라이스 블랙 구이'를 만들어 사람들의 입을 즐겁게 해 주었던 것이다. 이 일이 생긴 이후로 나는 밥만은 직접 해주기로 하였으며 조가 바뀌지 전까지 실행으로 옮겼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난 여행기간 내내 덜 마른 밥(임 선생의 표현)을 먹었어야 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난 처음으로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물론 다른 것들은 아직도 엉망이지만.


사전 교육 당시에 장애우 학생들과 이야기하면서 자기들도 요리를 하고 싶다고 해서 비장애우 학생들에게 설거지만이라도 반드시 함께 하고, 기회가 되면 요리도 함께 하라고 했기 때문에 태리도 자기 몫이 생기긴 했지만 비장애우 학생들의 비협조로 태리는 거의 여행내내 지루한 시간을 많이 보냈어야 했다.


3조 메뉴는 닭갈비이다. 양이 많아서(역시 진주는 맏며느리감이다.) 덜어서 현지에서 스키를 타기 위해 놀러 온 아이들에게 주었다. 놀랍게도 그들에겐 매울 닭갈비를 잘도 먹는다. 뒤에 들은 바로는 그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는 한국인 친구들이 많이 있어서 한국 아이들과 아주 친하고 한국 음식을 먹어 본 적이 많아 한국 음식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날 이후 이 아이들은 며칠동안 우리 탐사대 덕분에 한국 음식을 포식할 수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본부 차량에서 지도자 협의회를 가졌다. 중요한 안건은 내일 있을 OPC 모험학교 활동과, 통가리로 크로싱, 루아페후 산 등정에 관한 일정 조정 등이었다. 날씨와 관련하여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어 참 예민한 사안이다. 제발 날씨가 좋아야 할 텐데. 이들이 이 머나먼 뉴질랜드까지 와서 루아페후 산 등정에 실패하면 그 실망감이 엄청날 것이기 때문이다.


차량으로 돌아오니 아이들이 아직 안 자고 있다. 아이들과 좀 이야기를 하다가 매일 일정을 기록으로 남겨둘 것을 당부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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