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상 천문학자 | ||||||
<여기까지 오기까지> 경이로운 ‘별똥별 쇼’
이때부터 자외선우주망원경연구단을 이끄는 이영욱(연세대 천문우주학과 교수) 단장의 관심사는 온통 천문학으로 채워졌다. 당시에는 천문학 관련 서적이 적었고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 천문학에 대한 지식을 얻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 단장에게 ‘학생과학’이란 잡지가 천문학자의 꿈을 키우는 데 큰 힘이 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이 잡지를 읽다가 자코비니 별똥별 쇼가 펼쳐진다는 사실을 알고 우이동 집에서 담요를 깔고 누웠다. 몇 시간쯤 지났을까. 그의 머리 위로 난데없이 무수한 별똥별이 떨어졌다. 무려 5시간 동안 별들의 쇼가 펼쳐진 것이다. ‘학생과학’에는 모형비행기나 반사망원경 등의 설계도가 자주 소개됐다. 천문학자의 꿈을 키우던 이 단장은 책에 소개된 반사망원경의 설계도를 종합해 자신만의 반사망원경 설계도를 완성했다. 그 뒤 연세대 천문학과에 입학하자 부모님과 친구들에게서 빌린 돈을 모아 직접 반사망원경을 제작했다. 천문학과에 입학했지만 1·2학년 교과 과목에는 물리와 수학 수업만 있을 뿐 천문학 수업은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별을 보고 싶었던 이 단장은 친구들을 끌어 모아 천문학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다. 당시 경기도 일산관측소에는 국내에서 가장 큰 지름 61cm 반사망원경이 있었는데, 이 단장과 친구들은 겨울방학을 모두 그곳에서 보내며 우주에 푹 빠졌다. 하늘이 자신을 부르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이 단장은 다른 길로 빠질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1984년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 천문학과로 유학을 떠났다. 석·박사 통합과정을 4년 만에 마치고 캐나다 빅토리아대와 허블우주망원경연구소를 거쳐 1993년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어려움을 넘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우주에서 별이 폭발하거나 은하가 충돌하면 가시광선뿐 아니라 자외선, 적외선, X선, 전파 등 여러 파장의 전자기파가 발생한다. 우주에서 날아든 각종 전자기파는 우주 각지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건의 기록을 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지구에선 가시광선과 전파만 지상에 도달하고 나머지 파장은 대기에서 흡수된다. 대기권 밖에 망원경을 설치해야 관측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1993년 이 단장은 모교 천문우주학과에 교수가 됐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우주에 관측위성 하나를 쏘아 올리려면 최소 1200억 달러(약 124조9200억 원)가 든다. 하지만 이 단장에게 지원된 국가연구비는 1년에 1500만원 정도였다. 이 단장에게는 외국 과학자들이 관측한 사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 단장이 원하는 위치를 외국 과학자들이 촬영한다 해도 결과를 분석한 논문은 외국인의 이름으로 쓰일 수밖에 없었다. 학자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이 단장은 칠레에 위치한 세로톨로로 미국국립천문대에서 지름 0.9m짜리 망원경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3년 넘게 요청했다. 이윽고 일주일 간 사용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대학원생 2명을 출장 보내자 1년 연구비의 3분의 2인 1000만 원이 쓰였다. 그래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일주일 간 날씨는 매우 화창했다. 연구팀은 그때까지 구성성단으로 알려졌던 ‘오메가 센타우리’가 우리은하에 잡힌 왜소은하였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했다. 구성성단을 이루는 별들은 동시에 태어나기 때문에 나이와 화학조성이 같다. 반면 오메가 센타우리를 구성하는 별들은 화학조성이 구별되고 별들의 나이 차이가 최대 20억년으로 나타났다. 화학조성이 다양하고 나이 차이가 나는 천체는 구성성단이 아니라 은하였던 것이다. 이 결과는 1999년 ‘사이언스’에 게재됐다. <나의 성공담> NASA의 첫 한국인 공식 파트너
그는 1989년 미국 예일대에서 천체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보통 자외선은 질량이 크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신생별에서 1만~3만K(절대온도 K=섭씨온도℃+273.15)로 뜨거운 상태에서 나온다. 이 단장은 박사논문에서 질량이 작고 나이가 많은 별도 진화 후반부인 헬륨연소 단계에서 갑자기 2만K 정도로 뜨거워져 자외선을 방출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논문은 갤렉스 계획에 참여할 발판이었던 자외선 은하연령측정법의 기초가 됐다. NASA의 갤렉스 계획이 진행되기 시작했을 때 이 단장은 갤렉스 계획의 미국측 연구책임자를 설득할 수 있었다. 한국측 연구비가 확보될 경우 함께 하자는 확답도 받았다. 1997년 11월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크리스 마틴 교수가 프로젝트 책임자(PI)로 선정됐다. 같은해 12월 이 단장이 이끄는 자외선우주망원경연구단도 과학기술부 ‘창의적연구진흥사업’으로 선정됐다. 2006년부터는 창의적연구진흥사업의 후속과제인 도약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2002년 4월 발사된 갤렉스는 지금 50cm의 반사경을 가진 작은 망원경이지만 시야는 허블망원경보다 100배나 더 넓다. 연구팀은 2003년 갤렉스를 이용해 안드로메다은하 전체를 자외선으로 관측하는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2006년 1월에는 초기 우주에서 은하 형성의 비밀을 밝히는 단서를 발견해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구성성단은 100만여 개의 별들이 구형으로 모여 있는 천체다. 흔히 구성성단의 색은 파란색과 붉은색 2가지로 나눠져 천문학자들은 기원이 다른 두 종류의 구성성단에서 ‘이중 색 분포 현상’이 발생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연구팀은 구성성단의 진화 과정에서 색 분포의 양분화 현상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자외선망원경 연구의 미래상> “사람 구하고 싶어도 없다” 흔히 천문학이라고 하면 춥고 배고픈 학문이란 인식이 퍼져 있다. 1학년 과목을 가르치는 이 단장에게도 한 학기 동안 2명의 학부모에게서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자식이 천문학을 하겠다는 데 밥 굶는 거 아니냐?”는 내용이다. 이 단장은 “창의연구와 도약연구에 천문학이 2곳이나 선정돼 최근 활력을 받고 있다”며 “박사후 연구원을 구하고 싶어도 사람이 없어 못 쓸 정도로 인력 수요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연세대 이과대 학부 8개 전공 가운데 천문학은 해마다 정원을 넘기고 있다고 했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는 당장 눈에 보이는 기술을 개발해야 했지요. 하지만 1인당 국민 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하려면 자연 현상에 대한 규명이나 원리 설명처럼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는 연구를 해야 합니다. 천문학은 아직도 무한한 미지의 세계죠. 연구할 주제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 단장은 NASA와 함께 갤렉스를 만들면서 축적한 인공위성의 설계와 발사, 운용 기술이 한국의 인공위성 개발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자외선우주망원경은 [ ](이)다 이 단장에게 자외선우주망원경은 50%다. 쉽게 말해 인생의 절반이다. 그는 “무척 귀중한 것이 될 수도 있지만 목을 맬 정도로 귀중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제까지 자외선우주망원경 연구로 네이처와 사이언스 같은 학술지에 4~5편의 논문을 썼지만 우주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그만큼의 관심이 있다는 얘기다. 그는 당장 10년 전으로 되돌아가 다시 창의연구단을 시작하라면 안 할지도 모른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만큼 자외선우주망원경연구는 그에게 힘들고 고단한 주제였다. 그럼에도 이 단장이 창의연구에 이어 도약연구를 신청한 것은 “남들보다 더 잘할 수 있고 즐겁게 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제 아이디어의 50%는 다른 곳에 쓰여 질 겁니다. 아직 보여줄 수 있는 아이디어의 절반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다음번엔 이 단장에 우리에게 또 무엇을 보여줄 지 몹시 궁금해진다. | ||||||
글/서금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symbious@donga.com (2008년 06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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