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1. 09.[]

 

  오늘도 예외없이 아침 6시에 우리를 깨우는 뜨거운 홍차가 배달되었다. 이 추위 속에서 새벽같이 일어나 음식을 준비하는 조리팀이 고마웠다. 뜨거운 차를 마시니 몸이 훈훈해졌다. 오늘 트레킹은 추위와의 싸움을 해야 할 것이다. 630분에 식당에 모여 아침식사를 하였다. 몇몇 대원이 아침식사를 못한다고 하니, 걱정이 되었다. 뜨거운 물이라도 많이 마셔야할텐데~.  오늘 산행 코스는 눈이 많고 바람이 강한 고개를 넘어야하니 나 또한 대비를 든든히 하였다. 등산바지 위에 오버트라우져를 한 장 더 입었고 상의는 다운 조끼 위에 우모복을 입었다. 고소모와 방수 장갑을 끼었고, 스패츠와 아이젠을 착용하여 출발 준비를 마쳤다. 언제나 그러하듯 730분에 출발 채비를 한 대원들이 모두 모였다. 먼저 식당 앞 빈 공터에서 간단한 체조를 하고 출발하였다.

 

 

[고사인쿤드의 호수가에 있는 힌두교 사원(호수 바로 옆 건물)_김영채 사진]

 

  이 곳 고사인쿤드는 힌두교도에게는 매우 신령스런 성지라고 한다. 호수 속에 힌두교의 주신 중 하나이며 우주의 수호신인 비슈누(Visnu) 신이 잠들어 있다고 믿고 있어, 호수가에 시바신의 상징으로 숭배되는 링가(Linga)를 모신 사당이 있었다. 사당을 지나 라우레비나 패스로 향하는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호수를 오른쪽에 끼고 눈과 바람과 추위를 헤쳐 한참을 걸으니 고사인쿤드는 산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고개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추위는 더 심해졌고, 눈이 깊게 쌓여 걸을 때 마다 발목보다 깊이 빠지니 걷는 속도는 느려지고 힘은 더 들었다. 힘이 들어도 천천히 오르니 어느덧 고개 정상 가까이에 왔다. 

  고사인쿤드가 사라지고 새로운 호수가 나타났는데 수르야쿤드이다. 고갯마루 가까이 등산로 오른쪽에 있는 수르야쿤드(Surya Kund)의 안내판을 지나니 이번 트레킹에서 최고 높이인 라우레비나 패스(Laurebina Pass 4,610m)의 정상이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2시간 10분이 걸렸다. 고개 정상에서 탐사대원들 모두 뿌뜻한 마음으로 기뻐하였다. 지금부터는 내리막길이지만 눈이 쌓여있어 빨리 걸을 수는 없었다. 고개 정상에서 내리막길로 한참을 내려가니 롯지가 하나 나왔다. 수르야쿤드의 이정표에는 롯지가 있는 페디까지 2시간 거리라고 했으나 우리는 2시간 30분만에 페디(Phedi 3,730m)에 도착하였다. 롯지만 하나 있는 페디에서 뜨거운 국수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점심식사를 하고 나니 이제 춥지 않았다. 우리 탐사대가 넘어야 할 가장 큰 고비를 탐사대원 모두가 무사히 넘겼다.

 

 

[라우레비나 패스 정상 근처의 수르야쿤드 안내판_설상욱 사진]

 

  점심을 먹고 오후 1시에 출발할 때, 나는 우모복을 벗고 오버자켓으로 갈아 입었다. 고개를 넘어 남쪽으로 오니 고도가 낮고 남향이라 고사인쿤드를 출발할 때처럼 춥지는 않았다. 페디의 롯지를 나와서는 롯지 뒤편의 계곡을 향하여 급경사면을 내려간 다음 산 능선으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곱테까지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몇 개의 산 능선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가야하는 험한 길을 따라 점차 고도를 낮추어 나갔다. 오전에 흐리기만 하던 날씨가 오후가 되니 눈발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눈발이 점점 더 심해져서 잠시 쉬는 동안 배낭에 커버를 씌어야할 만큼 많은 눈이 내렸다. 어젯밤의 달무리가 눈을 몰고 온 것 같았다. 오전에는 심설산행을 하더니 오후에는 눈꽃산행인가! 히말라야의 설원에서 눈까지 맞으면서 산행을 하다니 정말 다양한 겨울산행을 경험하게 되었다. 오늘 내리는 눈은 우리 탐사대에 대한 축복인 셈이다. 앞 사람의 어깨와 배낭 위에 눈이 수북이 쌓였다. 탐사대원들이 지쳐갈 무렵 3시간 10분만에 곱테(Ghopte 3,430m)에 도착하였다.

  곱테에는 롯지만 2개가 있었는데, 트레킹 도중 만났던 롯지 중에서 가장 허접하였다. 침대 2개가 있는 방이 어찌나 좁은지 침대와 침대 사이가 30센티미터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할 수 없이 등산화는 침대 아래에 넣고 카고백은 복도에 두었다. 방과 방 사이도 얇은 나무판자로 허술하게 막아서 옆방의 불빛이 그대로 스며들어왔다. 옆방에 있는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 지 알 지경이었다. 옆방에서 랜턴을 끄니 내 랜턴불빛이 옆방까지 스며들어가 잠을 방해할까봐 미안해서도 랜턴을 꺼야했다. 불빛도 스며들고 코고는 소리도 훤히 들리는 그런 판자벽 롯지이지만, 이렇게 허술하기는 해도 오늘밤에 내리는 눈비와 추위를 막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오후에 내리던 눈은 저녁식사 이후에도 그치지 않고 내리는 모양이 밤새 내릴 것 같았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젯밤보다는 고도가 천 미터나 낮아 그리 추울 것 같지는 않았다. 저녁식사 후 난로가 있는 식당에서 쉬다가 9시 30분에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추위와 눈보라 속에 큰 고개를 넘어 피곤한지 오늘은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출처 : 충북등산학교
글쓴이 : youngch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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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1. 07.[토]

 

  오늘 아침은 평소보다 30분이 늦은 6시 30분에 기상하였다. 7시에 밥과 된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하였다. 식사 후에는 반드시 숭늉이 곁들여 졌다. 트레킹 기간 내내 김치, 고추장, 젓갈 등 한식음식을 먹게 되니 음식 트러블이 없어 대원 모두의 체력관리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매일 아침마다 다른 국을 끓여내는 쿡의 솜씨가 놀랍지만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미리 치밀하게 식단을 짠 탐사대장님의 세심한 배려가 더 놀라울 뿐이다. 오랜 히말라야 등반 경험을 통한 대원들의 체력관리 노하우가 탐사 일정과 식단 속에 다 들어있는 것 같았다. 전문가다운 리더십이다.

  8시에 모두 모여 아침체조를 하였다. 롯지에는 마당이 없어 곰파의 마당에서 체조를 한 후 싱곰파를 향해 출발하였다. 마을 곰파를 나와 군부대 아래 쪽 길로 가다가 보건소 앞에서 농경지를 지나 언덕길로 접어들었다. 한 시간 반 쯤 오르면 2개의 롯지가 있는데 겨울이라 문이 잠겨있었다. 약 10분 쯤 더 오르면 산 사면에 두르사강(Dursagang 2,650m)의 티숍(Tea Shop)이 있고 전망이 좋은 마운틴뷰롯지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쉬었다. 아침 햇살이 따뜻하였다. 이 롯지의 입구 문 위에는 바람으로 돌리는 작은 마니차가 있었다. 이곳 두루사강은 마을이 없고 롯지만 서너 곳이 있었다. 트레킹 코스 중간 중간에는 두세 시간이나 서너 시간을 걸으면 마을이 있거나 롯지가 있었다. 트레커들을 위하여 국가 차원에서 롯지들을 건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적당한 거리마다 쉬거나 점심식사를 할 수 있는 롯지는 꼭 있었다.

 

 

[두르사강(Dursagang 2,650m)에 있는 마은틴뷰 롯지의 대문 위에 있는 바람으로 돌리는 마니차_김영채 사진]

 

  숲속 길을 2시간 정도 더 올라가면 탁 트인 능선 위에 롯지가 2개가 있는데, 여기가 풀룽능선(Phulung Danda) 위에 있는 포프랑(Phoprang 3,210m)이다. 롯지 선셋뷰호텔 간판에도 「단다(Danada)」라는 말이 있는데 단다는 능선을 뜻하는 말이다. 시간이 11시 40분, 전망 좋은 곳에서 가네시 히말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쉬면서 여기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햇살은 화창하나 3천미터가 넘으니 금방 추위를 느껴 오리털 파카를 꺼내 입었다. 운행 중에는 가벼운 복장으로, 쉴 때는 파카를 입어 보온을 하는 일이 고산 트레킹 중에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쉽게 말해 옷을 입었다 벗었다를 잘하여 땀을 흘리지 않는 것이 레이어링 시스템이다. 땀을 흘리지 않고 등산을 하는 사람이 가장 등산을 잘하는 사람인 것이다. 땀을 흘리는 일은 에너지의 손실을 의미하므로 그렇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김치볶음밥으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김치볶음밥을 먹고도 숭늉은 나온다. 우리 탐사대의 조리팀은 참으로 대단한 조리팀이다.

 

  오후 1시에 포프랑을 출발하였다. 이제부터는 3천미터 이상의 고소 산행이 시작되었다. 비교적 텽탄힌 길을 따라 걸었다. 롯지를 출발하자마자 바로 전나무 숲이 나왔다. 숲속 음지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열대 우림지역이라 수백 년 된 아름드리나무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었다. 숲 속에서 나무하러 온 싱곰파의 어린이들을 만났다. 눈 속을 슬리퍼를 신고 오는 아이도 있었는데 추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즐겁게 떠들고 장난치며 놀고 있었다. 1시간 30분정도 숲속 길을 걷다가 산 모퉁이를 돌아가니 싱곰파의 마을과 롯지가 보였다. 길은 마을 입구에 있는 롯지 앞에서 둔체에서 오는 길과 합류하였다. 지도에는 둔체에서 싱곰파까지 5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다.

 

 

 [포프랑에서 점심시간에 한가로운 탐사대원 모습, 모처럼 여선생님 대원이 다 모였다_김영채 사진]

 

 오후 2시 40분에 싱곰파(Singh Gompa 3,300m)의 레드판다호텔(Red Panda Hotel)에 도착하였다. 규모가 큰 롯지였다. 식당 건물과 숙소 건물이 분리되어 있는데 숙소도 트레킹 도중에 만난 롯지 중에서는 시설이 가장 좋았다. 2층으로 된 숙소 건물은 각 거실을 중심으로 2인용 객실이 4개가 있으며 거실 한 편에 좌변기의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구조였다. 고산에서는 밤에 자주 깨어 화장실을 가야하는데, 화장실이 방 밖에 있지만 실내에 있으므로 매우 편리하였다. 겨울이 아닌 계절에 온다면 전망도 좋고 실내가 편리하게 되어 있어 며칠 묶고 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히말라야 트레킹 도중 만난 롯지 중 가장 좋은 숙소였다.

  오늘 일정은 7시간이 못되어 트레킹이 끝났다. 호텔방에 짐을 정리하고도 아직 해가 많이 남아있어 마을에 있는 치즈공장을 방문하였다. 공장 내부는 볼 수 없었으나 야크 젖으로 만든 치즈는 구경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맷돌크기의 치즈 덩어리에서 1kg 단위로 잘라 팔고 있었다. 몇 대원이 야크치즈를 구입할 때 나도 1kg을 샀다. 가격은 1kg에 570루피(1루피는 14원) 하였다. 잘 숙성되었으나 가미되지 않은 치즈 맛은 느끼하고 짠 맛이 강해 우리나라에서 먹던 슬라이스 치즈 맛은 아니었다.

 

  저녁식사 전까지 식당에서 이야기며 노래하고 시간을 보냈다. 6시에 저녁식사를 할 때 박종익 부대장님이 내일 일정에 대하여 상세하게 소개를 하였다. “내일 우리가 머무를 장소는 고사인쿤드인데 해발고도가 4,380m나 되므로, 이번 트레킹 일정 중에서 내일 일정이 가장 어렵고 중요한 일정이다. 현재의 고도에서 약 1천미터나 고도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며, 내일 운행만 잘하면 모레부터는 힘들지 않고 순탄할 것”이라고 하였다. 박 부대장님의 권유로 내가 간단하게 덧붙였다. “고산병이 오지 않도록 물을 많이 마시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혹시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대원은 잠자기 전에 고산병 약을 먹어야 한다”고 조언을 하였다. 나는 컨디션이 아주 좋아져 저녁식사도 충분히 하였다. 룸 메이트인 연철흠 선생님의 컨디션도 매우 좋아 다행이었다.

  저녁식사 후 우리팀의 포터들이 노래와 춤을 추며 우리를 위로해 주었다. 네팔 민요인 ‘레삼피리리’와 ‘심심해’를 부르며 춤까지 추었다. ‘레삼피리리(Resham Firiri)’는 네팔의 산에서 온 유명한 민요 중의 하나인데, 우리말로는 ‘비단 두건이 바라에 날리네’라는 뜻이라고 하며, 이 민요는 낭만적인 젊음의 감정을 표현하는 노래라고 한다. 또 ‘심심해’라는 노래는 윤석주 자문위원님이 신청하여 포터들이 불러 주었는데, 노랫말 속에 우리말 심심해라는 말이 많이 나와서 우리끼리 ‘심심해’라고 부르게 되었다. ‘심심해’라는 노래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심시메 파니마(Sim Sime Panima)’라는 노래인데, 네팔의 브라만(Brahmans)과 체트리(Chhetri) 공동체의 전통 결혼식에서 새로운 커플에 대한 환희에 찬 행복과 번영을 기원하며 축하할 때 부르는 노래라고 하였다. 매우 경쾌하고 즐거운 가락이었다. 우리도 아리랑을 불러 우리 민요를 들려주었으며, 나중에는 ‘레삼피리리’를 같이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내년에 트레킹 준비할 때는 우리 가요의 노랫말도 꼭 적어 와야 하겠다. 탐사대 수첩에 가사가 적힌 ‘레삼피리리’는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겠는데, 막상 우리 가요를 부르려니 도통 가사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들 노래 가사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게 다 나이 먹은 탓인것 같기도 하다.

  모든 대원이 각자 방으로 돌아가고 나와 연 선생님도 방으로 와서 내일 운행 준비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출처 : 충북등산학교
글쓴이 : youngch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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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1. 07.[]

 

  오늘 아침은 평소보다 30분이 늦은 630분에 기상하였다. 7시에 밥과 된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하였다. 식사 후에는 반드시 숭늉이 곁들여 졌다. 트레킹 기간 내내 김치, 고추장, 젓갈 등 한식음식을 먹게 되니 음식 트러블이 없어 대원 모두의 체력관리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매일 아침마다 다른 국을 끓여내는 쿡의 솜씨가 놀랍지만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미리 치밀하게 식단을 짠 탐사대장님의 세심한 배려가 더 놀라울 뿐이다. 오랜 히말라야 등반 경험을 통한 대원들의 체력관리 노하우가 탐사 일정과 식단 속에 다 들어있는 것 같았다. 전문가다운 리더십이다.

 

  8시에 모두 모여 아침체조를 하였다. 롯지에는 마당이 없어 곰파의 마당에서 체조를 한 후 싱곰파를 향해 출발하였다. 마을 곰파를 나와 군부대 아래 쪽 길로 가다가 보건소 앞에서 농경지를 지나 언덕길로 접어들었다. 한 시간 반 쯤 오르면 2개의 롯지가 있는데 겨울이라 문이 잠겨있었다. 10분 쯤 더 오르면 산 사면에 두르사강(Dursagang 2,650m)의 티숍(Tea Shop)이 있고 전망이 좋은 마운틴뷰롯지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쉬었다. 아침 햇살이 따뜻하였다. 이 롯지의 입구 문 위에는 바람으로 돌리는 작은 마니차가 있었다. 이곳 두루사강은 마을이 없고 롯지만 서너 곳이 있었다. 트레킹 코스 중간 중간에는 두세 시간이나 서너 시간을 걸으면 마을이 있거나 롯지가 있었다. 트레커들을 위하여 국가 차원에서 롯지들을 건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적당한 거리마다 쉬거나 점심식사를 할 수 있는 롯지는 꼭 있었다.

  숲속 길을 2시간 정도 더 올라가면 탁 트인 능선 위에 롯지가 2개가 있는데, 여기가 풀룽능선(Phulung Danda) 위에 있는 포프랑(Phoprang 3,210m)이다. 롯지 선셋뷰호텔 간판에도 단다(Danada)라는 말이 있는데 단다는 능선을 뜻하는 말이다. 시간이 1140, 전망 좋은 곳에서 가네시 히말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쉬면서 여기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햇살은 화창하나 3천미터가 넘으니 금방 추위를 느껴 오리털 파카를 꺼내 입었다. 운행 중에는 가벼운 복장으로, 쉴 때는 파카를 입어 보온을 하는 일이 고산 트레킹 중에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쉽게 말해 옷을 입었다 벗었다를 잘하여 땀을 흘리지 않는 것이 레이어링 시스템이다. 땀을 흘리지 않고 등산을 하는 사람이 가장 등산을 잘하는 사람인 것이다. 땀을 흘리는 일은 에너지의 손실을 의미하므로 그렇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김치볶음밥으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김치볶음밥을 먹고도 숭늉은 나온다. 우리 탐사대의 조리팀은 참으로 대단한 조리팀이다.

 

  오후 1시에 포프랑을 출발하였다. 이제부터는 3천미터 이상의 고소 산행이 시작되었다. 비교적 텽탄힌 길을 따라 걸었다. 롯지를 출발하자마자 바로 전나무 숲이 나왔다. 숲속 음지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열대 우림지역이라 수백 년 된 아름드리나무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었다. 숲 속에서 나무하러 온 싱곰파의 어린이들을 만났다. 눈 속을 슬리퍼를 신고 오는 아이도 있었는데 추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즐겁게 떠들고 장난치며 놀고 있었다. 1시간 30분정도 숲속 길을 걷다가 산 모퉁이를 돌아가니 싱곰파의 마을과 롯지가 보였다. 길은 마을 입구에 있는 롯지 앞에서 둔체에서 오는 길과 합류하였다. 지도에는 둔체에서 싱곰파까지 5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다.

 

 

[포프랑에서 점심시간에 한가로운 탐사대원 모습_김영채 사진]

 

  오후 240분에 싱곰파(Singh Gompa 3,300m)의 레드판다호텔(Red Panda Hotel)에 도착하였다. 규모가 큰 롯지였다. 식당 건물과 숙소 건물이 분리되어 있는데 숙소도 트레킹 도중에 만난 롯지 중에서는 시설이 가장 좋았다. 2층으로 된 숙소 건물은 각 거실을 중심으로 2인용 객실이 4개가 있으며 거실 한 편에 좌변기의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구조였다. 고산에서는 밤에 자주 깨어 화장실을 가야하는데, 화장실이 방 밖에 있지만 실내에 있으므로 매우 편리하였다. 겨울이 아닌 계절에 온다면 전망도 좋고 실내가 편리하게 되어 있어 며칠 묶고 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히말라야 트레킹 도중 만난 롯지 중 가장 좋은 숙소였다.

  오늘 일정은 7시간이 못되어 트레킹이 끝났다. 호텔방에 짐을 정리하고도 아직 해가 많이 남아있어 마을에 있는 치즈공장을 방문하였다. 공장 내부는 볼 수 없었으나 야크 젖으로 만든 치즈는 구경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맷돌크기의 치즈 덩어리에서 1kg 단위로 잘라 팔고 있었다. 몇 대원이 야크치즈를 구입할 때 나도 1kg을 샀다. 가격은 1kg570루피(1루피는 14) 하였다. 잘 숙성되었으나 가미되지 않은 치즈 맛은 느끼하고 짠 맛이 강해 우리나라에서 먹던 슬라이스 치즈 맛은 아니었다.

 

  저녁식사 전까지 식당에서 이야기며 노래하고 시간을 보냈다. 6시에 저녁식사를 할 때 박종익 부대장님이 내일 일정에 대하여 상세하게 소개를 하였다. “내일 우리가 머무를 장소는 고사인쿤드인데 해발고도가 4,380m나 되므로, 이번 트레킹 일정 중에서 내일 일정이 가장 어렵고 중요한 일정이다. 현재의 고도에서 약 1천미터나 고도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며, 내일 운행만 잘하면 모레부터는 힘들지 않고 순탄할 것이라고 하였다. 박 부대장님의 권유로 내가 간단하게 덧붙였다. “고산병이 오지 않도록 물을 많이 마시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혹시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대원은 잠자기 전에 고산병 약을 먹어야 한다고 조언을 하였다. 나는 컨디션이 아주 좋아져 저녁식사도 충분히 하였다. 룸 메이트인 연철흠 선생님의 컨디션도 매우 좋아 다행이었다.

  저녁식사 후 우리팀의 포터들이 노래와 춤을 추며 우리를 위로해 주었다. 네팔 민요인 레삼피리리심심해를 부르며 춤까지 추었다. ‘레삼피리리(Resham Firiri)’는 네팔의 산에서 온 유명한 민요 중의 하나인데, 우리말로는 비단 두건이 바라에 날리네라는 뜻이라고 하며, 이 민요는 낭만적인 젊음의 감정을 표현하는 노래라고 한다. 심심해라는 노래는 윤석주 자문위원님이 신청하여 포터들이 불러 주었는데 노랫말 속에 우리말 심심해라는 말이 많이 나와서 우리끼리 심심해라고 부르게 되었다. ‘심심해라는 노래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심시메 파니마(Sim Sime Panima)’라는 노래인데, 네팔의 브라만(Brahmans)과 체트리(Chhetri) 공동체의 전통 결혼식에서 새로운 커플에 대한 환희에 찬 행복과 번영을 기원하며 축하할 때 부르는 노래라고 하였다. 매우 경쾌하고 즐거운 가락이었다. 우리도 아리랑을 불러 우리 민요를 들려주었으며, 나중에는 레삼피리리를 같이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내년에 트레킹 준비할 때는 우리 가요의 노랫말도 꼭 적어 와야 하겠다. 탐사대 수첩에 가사가 적힌 레삼피리리는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겠는데, 막상 우리 가요를 부르려니 도통 가사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들 노래 가사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게 다 나이 먹은 탓인가?

  모든 대원이 각자 방으로 돌아가고 나와 연 선생님도 방으로 와서 내일 운행 준비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출처 : 충북등산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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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1. 06.[]

 

  오늘은 새로운 루트로 트레킹을 가는 날이다. 둔체에서 순다리잘까지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가 고사인쿤드 트렉(The Gosain Kund Trek)인데 우리 탐사대는 샤브루베시에서 툴로샤브루로 가서 고사인쿤드 트렉으로 접어들게 된다.

  여느 때처럼 아침 6시 기상, 630분 아침식사, 730분 트레킹 출발이다. 잘 훈련된 군인들처럼 우리 탐사대는 예정 시간에 정확히 출발하였다. 이른 아침이라 마을은 조용하였다. 우리 탐사대는 찻길을 따라 걸어가다가 찻길에서 벗어나 오른쪽의 작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 강을 따라 있는 마을을 조용히 지나쳤다. 보테코시 강(Nadi)에 걸린 다리를 건너 오래된 샤브루벤시 마을을 통과할 때 주민들이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막 잠에서 깬 꼬마아이가 우리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마을이 끝날 때쯤 이번에는 랑탕 콜라(Khola, 하천)에 걸린 출렁다리를 건넜다. 랑탕 콜라를 따라 계곡 상류쪽으로 이어진 이 길이 랑탕 트렉(The Langtang Trek)이다. 영국의 탐험가 틸만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 중의 하나라고 소개한 그 랑탕 계곡으로 이어진 길이다.

 

  마을에서 30분쯤 걸으면 랑탕으로 가는 길과 툴로샤브루로 가는 길이 갈린다. 우리 탐사대는 계곡을 따라가는 평탄한 길을 버리고 오른쪽의 가파른 길로 접어들었다. 툴로샤브루로 가는 길이다. 샤브루베시와 툴로샤브루는 고도차가 약 800m 가량 나므로 앞으로 계속 고도를 높여야 할 것이다. 갈림길에서 한 시간 쯤 올라가서 물레방아가 돌리는 마니차를 만날 수 있었다. 사람 손으로 돌리지 않고 물레방아가 돌리는 마니차 옆만 지나가도 내가 마니차를 돌린 것이나 마찬가지라 하니 얼마나 경제적이고 합리적인가. 우리 탐사대에게 축복을 주는 마니차는 물레방아의 힘만으로도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말이 능숙한 가이드 핀죠의 설명에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 입구 능선 가까이에 올라서니 멀리 흰 눈에 덮여있는 가네시 히말이 보였다. 언제 보아도 하얀 설산 히말라야는 아름다웠다. 히말라야를 보는 것만으로도 피로감이 싹 가시는 것 같았다. 샤브루베시 마을을 출발한지 4시간이 조금 못 된 1120분에 툴로샤브루의 숙소 라마호텔(Lama Hotel)에 도착하였다.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 속에 있는 모든 숙소들이 호텔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으니 롯지로 이해하면 되겠다. 툴로샤브루는 따망족의 마을로서 상당히 큰 마을이었다. 네팔어로 툴로(Thulo)()의 의미를 갖는다고 하던데 역시 툴로샤브루는 샤브루라 이름을 붙인 마을 중에서는 큰 마을이었다. 마을의 집들도 벽을 돌로 지었고 오래된 것처럼 보였으며 대개 집들도 크게 지었다. 우리말로 하면 부촌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우리가 묶은 롯지의 옥상에서는 가네시 히말의 장관이 아주 잘 보였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조를 키질하는 일을 감독하는 지용희 선생님_김영채 사진]

 

  마을 안에 있는 곰파(사원)를 구경하였다. 곰파 관리인의 딸인 9살짜리 소녀가 열쇠를 가져와서 내부를 볼 수 있었다. 티벳불교의 곰파인데 정면 중앙에 불상이 있고 그 옆에 보살상과 벽화가 있는 모습이 우리나라 사찰의 내부와 비슷하였는데 내부에 타르초(Tarchog, 경문 등이 쓰여 있는 깃발)가 많이 있는 모습이 우리나라 사찰과는 달랐다. 곰파를 구경 한 후에 툴로사브루 마을을 구경하였다.

  청주에서 오신 지용희 선생님과 마을을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집 앞에서 대나무로 발을 엮는 아저씨를 만났는데 나마스테!”하고 인사를 하니 이 분도 두 손을 모아 가슴에 붙이고 나마스테인사를 하고나서 영어로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다가 안내를 받아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산골 마을에 사는 중년 남자로서는 영어를 매우 잘하였다. 집에는 부인과 젊은 여자가 멍석 위에서 키질을 하며 깨알보다 작은 조를 바람에 걸러내고 있었다. 옆에는 작은 쟁반에다가 쌀튀김을 넣어두고 간식으로 먹고 있었는데, 우리에게도 먹으라고 권하였다. 쌀튀김을 직접 만들었느냐고 물으니 카트만두에서 가져왔다고 했다. 잠시 후에 아저씨가 홍차를 대접해주었다. 홍차를 다 마실 때까지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많이 물어 보았다. 내가 부인 앞에 있는 사람이 딸이냐고 물으니 큰며느리라고 한다. 큰아들은 고사인쿤드의 롯지에서 일하고 있고 둘째 아들은 카트만두에 있는데 총각이라고 하였다. 자신은 22녀가 있는데, 두 딸은 모두 결혼을 하여 한 명은 툴로샤브루에, 한 명은 샤브루베시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시골이지만 편안하고 행복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살고 있는 네팔인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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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1. 05.[]

 

  어제의 눈발은 온데간데없고 날씨는 청명하게 개었다. 아침 햇살을 받은 롯지 주변은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눈세계로 변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부지런한 대원들은 이른 아침에 나그탈리전망대에 가서 가네시 히말의 사진을 찍고 왔다고 했다. 그 열정과 부지런함이 부러웠다. 오늘은 뚜만(Thuman 2,338m) 마을에 있는 뚜만초등학교에서 교육봉사활동을 하는 날이다. 나그탈리에서 뚜만까지는 약 1천미터 정도의 고도 차이가 나는데, 내리막길이라 한 시간 반 만에 뚜만 초등학교에 도착하였다. 오전 950분이었다. 작은 학교 앞 마당에서도 북동쪽으로 랑탕 히말의 하얀 설산이 멀리 보였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어디에서든지 약간만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히말라야의 설산을 볼 수 있으니 좋았다.

  작은 뚜만초등학교에는 젊은 남선생님 한 분과 전체 재학생 40명보다도 훨씬 많은 어린이들이 모여 있었다. 한국에서 후원회사인 영원에서 준비해 준 선물가방을 들고 학교로 들어섰다. 낱개로 되어있는 선물가방 속에는 어린이용 후드 자켓, 잠옷, 속옷, 학용품, 시장바구니 등이 들어 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방문인 뚜만초등학교에 봉사를 가면 선물을 받으려고 동네에 있는 모든 청소년들이 다 모여든다고 하더니 정말 그랬다. 먼저 수업봉사활동을 하기 전에 그 곳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재학생과 일반 어린이와 청소년을 분리시켰다. 방학이라서 그런지 선생님은 한 분만 있었다. 학교 건물 앞마당에서 가이드 핀죠의 통역으로 간단한 기념식을 하였다. 탐사대를 대표한 인사말은 김영식 대장님이 사양하여 윤석주 자문위원님이 하였고, 축구공 전달은 최창원 자문위원님이 하였으며, 뚜만초등학교의 선생님이 답례인사를 끝으로 기념식을 마치고 바로 수업활동을 시작하였다.

 

  수업봉사활동은 미술 수업과 체육 수업 그리고 우리말 수업이었다. 먼저 첫 수업은 미술 수업으로 오인숙 선생님의 지도로 재학생을 원형으로 둥그렇게 앉히고 청소년대원을 중심으로 전 대원들이 학생 사오 명 사이에 앉아 그룹을 지었다. 준비해 간 물감과 종이를 이용하여, 흰 도화지에 물감을 짜서 접은 후 펼쳐 대칭적인 그 문양이나 얼룩을 보는 데칼코마니(decalcomanie) 수업이었다. 수업에 참여하는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깨너머로 구경하는 동네 청소년들도 매우 재미있어하고 신기해하였다.

  이어서 체육 수업은 두 사람이 조를 짜 발목을 묶은 다음 2인 삼각 달리기 중간에 두 사람 사이에 풍선을 넣어 터트리고, 쌀가루에 덮인 사탕을 손을 대지 않고 입으로 먹는 게임이었다. 탐사대원 모두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게임이었는데 코에 하얀 쌀가루를 묻히면서도 모두 즐거워하였다. 우리 탐사대가 카트만두에 도착하자마자 김종민 선생님의 지도로 청소년 대원들이 게임 준비나 풍선 준비 등을 잘해두어 보람있는 봉사활동이 되었다.

 

 

[오인숙 선생님이 지도하는 미술 데칼코마니 수업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청소년들_김영채 사진]

 

  마지막 수업은 연철흠 선생님이 지도한 우리말 수업이었다. 우리말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딱 두 마디만 가지고도 아주 집중도가 높은 재미있는 수업을 하였다. ‘나마스테안녕하세요그리고 돈네밧감사합니다가 같은 말임을 가르치는 수업이었는데, 연 선생님의 티칭 노하우가 뛰어나 학생들 모두 처음 듣는 생소한 우리말을 배우려고 눈을 말똥거리며 수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잘하면 사탕을 하나씩 주니 사탕을 받으려고 어린이들이 더 열중하는 것 같았다. 학생들과 수업을 하는 사이에 한 시간 반의 수업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행사를 마치기 전에 탐사대원과 뚜만초등학교 학생들, 동네 청소년, 구경나온 주민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행사를 마쳤다.

 

 

[뚜만초등학교에서 우리말 수업 중인 연철흠 선생님_김영채 사진]

 

  오전 1130, 학생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뚜만 마을로 내려갔다. 학교가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15분쯤 내려가서 마을 한가운데 있는 롯지(Budda Hotel)에 도착하였다. 마을에 있는 주택은 벽을 돌로 쌓아 만들었는데, 집은 이층구조로 되어 있고 아래층은 헛간으로 마굿간이나 창고로 쓰이며 사람이 거주하는 곳은 이층이라고 한다. 이 주택들은 오백년 이상 된 집들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마을 전체가 인류가 보존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인 셈이다. 롯지에 도착하여 배낭을 벗고 홍차 한 잔 마시니 벌써 점심 먹으라고 한다. 조리팀이 벌써 라면을 끓여 놓았다. 언제나 부지런하고 우리들 입맛에 맞는 식사를 미리 준비해 주는 쿡 리마가 고맙다. 탐사대장님의 주도면밀한 탐사대 관리에 고마워해야 하겠다.

 

  1230분에 뚜만 마을을 출발하였다. 마을을 벗어나니 계단식 논이 나타났다. 산사면의 경사가 급하다보니 계단식 다랑이 논을 만들 수밖에 없겠다. 다랑이 논의 폭이라야 아파트 베란다만 한데 이를 경작지로 만든 네팔사람들의 생존본능이 놀랍다. 뚜만에서 한 시간 반쯤 걸어 달페디(2,317m) 마을 입구에서 쉬었다.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집 마당에서 수확한 옥수수를 말리거나 키질을 하여 옥수수에서 쭉정이를 걸러내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사오십 년 전 가을걷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정겨웠다. 다른 집에서는 아주머니가 절구통에서 곡물을 찧고 있었는데 남자는 없고 여자들만 있었다. 절구통은 돌로 된 것이 아니라 통나무 절구통이었고 절구공이는 원형이 아니라 손잡이 빼고는 사각으로 되어 있었다. 절구통은 옆이 쩍쩍 갈라져있어 매우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온 물건 같았다.

 

 

[달페디 마을에서 절구질에 열중하는 따망족 여인과 촬영에 열중하는 심 피디님_김영채 사진]

 

  뚜만 마을을 출발한지 2시간 만에 보테코시 강가에 있는 도로까지 내려왔다. 보테코시 강(Nadi)은 북쪽 티베트 히말라야에서 흘러온 강물인데 둔체를 지나면서 트리슐리 강으로 이름이 변하여 남쪽으로 흘러 인도로 흘러가는 강이다. 강가에 있는 포장도로를 따라 한 시간만 내려가면 샤브루베시 마을이다. 샤브루베시 마을 입구 검문소를 지나 숙소인 호텔(트레커 인)에 도착하였다. 오후 330분이라 아직 오후 햇살이 조금 남아 있다. 샤브루베시는 지도와 마을 안내판에는 Shyaphru Besi로 표기되었으나 여행안내서나 호텔 간판에는 샤브루벤시(Syabru Bensi)로 쓰여 있는데, 브이자(V) 계곡 속에 자리한 마을이라서 아침이 늦고 저녁이 일찍 온다고 여행안내서 나와 있다. 4층 건물인 우리 숙소는 이 마을에서는 가장 큰 건물이다. 오늘 트레킹은 8시간이 걸렸다.

 

  전기가 귀한 산 속 롯지에서만 지내다가 전등이 환하고 세면장에 물이 풍족한 여기만 와도 큰 도시에 온 것처럼 포근한 기분이 들었다. 모처럼 비누로 세수하고 발을 씻었고 양말도 빨아보았다. 온수가 많이 나오지 않아 머리는 감지 않았다. 그래도 참 개운하였다. 저녁식사시간까지 숙소에서 룸메이트 연 선생님과 편안하게 쉬었다. 식당에서 심 피디님으로부터 이곳 샤브루베시에서도 국제전화와 문자통신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에서 보내는 문자 한 통은 150원이고 받는 문자는 모두 무료라고 한다. 한가한 시간을 내어 휴대폰으로 집사람과 아이들, 가까운 분들에게 문자로 네팔 소식을 전했다. 전화통화는 1분에 1,500원이 넘어 굳이 전화를 할 필요는 없었다. 문자를 보냈더니 반가운 소식들이 날아왔다. 좋은 세상이란 것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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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1. 04.[수]

 

  밤에 두 번을 깨어 소변을 보았다. 5시 30분에 눈을 떠 모닝콜을 기다렸다. 6시에 따뜻한 홍차를 마시니 몸이 데워지는 것 같다. 우리 탐사대의 쿡 리마는 한국 요리를 매우 잘하였다. 오늘 아침 메뉴는 미역국이다. 국물맛이 집에서 먹는 미역국과 다를 바가 없다. 입맛이 당겨 한 그릇을 더 먹었다. 고산병을 예방하려면 무엇보다도 잘 먹고 오줌 잘 누고 잘 자야 한다. 약간의 목감기 기운만 빼면 아직까지는 컨디션이 매우 좋다. 목감기는 카트만두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생긴 것 같다. 객실 공기가 차가워 침낭 안에서 잘까 하다가 그냥 잤는데 자고 나니 몸이 개운하지가 않았었다. 방콕에서 카트만두로 몸이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하겠다.

 

 

[브림당 마을 입구에서 만난 귀여운 마을 어린이들_김영채 사진]

 

  한 시간 반쯤 산행을 하여 브림당 마을(2,848m)에 도착하였다. 브림당 마을 입구의 청보리밭 한가운데에 커다란 바위가 하나 놓여있는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년 소녀들 넷이서 바위 위에서 놀다 우리 탐사대를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그 중 제일 나이 어린 소년은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 그 모습들이 추워 보이면서도 너무나 귀여웠다. 거무스름하게 때가 낀 모습이지만 슬리퍼 속에 담긴 가지런한 발가락까지도 예쁘게 보였다. 장엄한 가네시 히말을 배경으로 햇볕을 쬐고 있는 네 명의 어린이들의 모습이 대자연과 너무나 잘 어울렸고 얼마나 평화롭게 보이던지 그 모습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곰파가 있고 곰파 주변에는 높은 장대에 매달린 타르초와 룽다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타르초는 티베트 계열의 주민이 주택이나 사원에서 경문 등을 써서 긴 장대에 매달아 놓은 깃발이고, 룽다는 만국기처럼 오색의 작은 깃발로 둘 다 경전을 적어 바람에 날리게 하여 바람을 타고 불경이 멀리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이 곳 곰파 안에는 사람 키보다 큰 대형 마니차가 있어 대원들이 차례로 마니차를 돌리면서 소원을 빌었다. 나 또한 마니차를 돌리면서 올 해 둘째딸 지혜의 임용고사 합격과 고3학년이 되는 막내 지송이의 대학 합격을 빌었다. 모든 사람들이 마니차를 돌려서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곰파 옆에 가네시 히말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어 사진찍기에 좋았다. 청명한 아침 햇살로 흰 눈에 덮인 가네시 히말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어제 골중고개에서 보았던 히말라야의 모습보다도 더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보여 지척에 있는 듯 금방이라도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곰파 건너편 산 능선에는 야생 원숭이들이 살고 있었다.

  따또파니를 출발한 지 4시간만에 나그탈리(Nagthali 3,165m)에 도착하였다. 나그탈리는 따망 헤리티지 트렉 중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그러므로 전망 또한 가장 좋아 나그탈리 전망대라고도 하는데, 여기에서는 왼쪽의 가네시히말에서부터 오른쪽의 랑탕리룽(7,227m)까지 모두 볼 수 있는 곳이다. 날씨가 쾌청하여 점심식사 후에 사진을 찍을까 생각하고 수제비로 점심식사부터 하였다. 그러나 내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나그탈리 롯지에 도착할 무렵부터 간간히 내리던 눈발이 점심을 먹고 나니 하늘이 컴컴해지더니 오후 내내 폭설로 변하고 말았다. 오후 4시에 눈이 잠깐 그친 틈을 내어 나그탈리 전망대로 가보았으나 히말라야는 구름과 안개로 뒤덮여 있어 보이지 않고 언덕 아래에 있는 우리의 롯지만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해발고도가 3천미터가 넘는 나그탈리에서 본격적인 고산병 환자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탐사대원 중에는 처음으로 3천미터를 경험한 젊은 대원들과 청소년대원 몇이 고산증이 심하여 저녁식사를 못하는 대원이 나왔다. 고산병을 예방하고 체력유지를 위해서는 무엇이던지 잘먹어야한다. 고산병 증세는 자신이 스스로 극복을 해야하는데 먹지 못하면 신체가 극복해 낼 수가 없는 것이다. 고산병은 자신의 의지로 조절되지 않는 신체현상이다. 고산병을 떨쳐내는 방법은 스스로 하산을 하여 고도를 낮추던지 약과 음식을 먹고 물을 많이 먹어 이겨내던지 방법은 딱 두 가지 뿐이다.

   오늘밤 해가 지면 어둠이 서서히 사방을 점령하듯이 나에게도 그 분(고산병)이 조용히 오셨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쉬고 있는데 심하지는 않으나 기분 나쁜 두통이 오기 시작하였다. 딱히 머리가 아프다는 느낌은 없으나 몇 분 간격으로 지끈거리다가 괜찮아지기를 반복하였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서서히 머리가 지끈거리는가 싶더니 화장실에 있는데 뒷머리가 땡기고 두통이 더 심해졌다.

  나는 3천미터의 고도에서 두통이 있는 적이 한 번 도 없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이었다. 기분 나쁜 두통이었다. 아마 목감기 기운이 있어 쉽게 고산병 증세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짐작을 하고 내 카고백에 있는 약상자에서 다이아목스(diamox, 약품명: 아세타졸 아마이드 acetazol amide)를 한 알 꺼내 먹었다. 그리고 잠자기 전까지 의식적으로 더 자주 따뜻한 물을 마셨다. 이럴 때에는 내가 이런 적이 없는데 이런 적이 없는데 하며 망설일 것이 아니라 신속하게 약을 먹고 신체가 적응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고산병 증세는 낮은 기압과 희박한 산소가 있는 곳에서는 누구나 올 수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고산에서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 것이 고산병을 예방하는 첫 번째 과제이다.

 

  대원 모두 식당에 모여 「설악가」 같은 산노래와 네팔 민요인 「레삼피리리」도 부르고 대원들이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면서 스텝들이 식당으로 잠자러 올 때까지 저녁시간을 보내다가 9시에 모두 숙소로 돌아갔다. 나는 노래부르고 노는 사이에 두통은 깜쪽같이 사라지고 컨디션은 다시 좋아졌다. 낮에 눈이 내리던 하늘이 맑게 개어있어 달이 보름달처럼 밝다. 달이 밝아 별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데도 남쪽 밤하늘에 오리온 별자리가 선명하게 보였다. 오리온자리는 북반구에서 겨울철 별자리의 대표 별자리가 아닌가! 이렇게 크고 가까이 보이는 오리온자리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달이 밝아 많은 별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숙소마당에서 청소년 대원들에게 오리온별자리에 대하여 설명해 주고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오늘이 만일 그믐이라면 얼마나 많은 별을 볼 수 있을까? 내일 모레 쯤이 보름이기에 이번 트레킹 기간중에는 별(☆) 볼일은 없을 것 같다.

  오늘은 4인실이 배정되어 광주에서 오신 원로 산악인인 장길문 선배님과 설상욱 대산련 청소년위원, 연철흠 선생님과 내가 한 방을 쓰게 되었다. 롯지의 나무벽은 구멍이 숭숭 뚫려 허술하고 고도가 높아 밤에 매우 추웠다. 날씨가 춥고 옆사람에게 피해를 주지않기 위해 다들 조용히 물티슈로 손발을 닦고는 바로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따또파니가 담긴 물통이 있어 침낭 안은 따뜻했으나, 오늘밤에 처음으로 핫팩을 준비해왔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년에는 핫팩도 꼭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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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1. 03.[]

 

  아침 6, 모닝콜이 배달되었다. 키친보이가 방문을 두드리며 따뜻한 홍차를 한 잔씩 주면서 아침을 깨웠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뜨거운 홍차를 한 잔 마시면 속이 훈훈해지면서 추위를 잊게 된다. 부지런한 연선생님은 벌써 침낭까지 정리를 하였다. 630분 아침식사, 730분이 출발시간이다. 오늘부터는 물로 하는 세수는 없고 물티슈 세수만 있다. 1층 식당으로 내려와 먼저 온 대원들에게 나마스테!하고 인사를 하였다. 네팔에서는 빨리 나마스테라는 말과 친숙해져야 한다. 나마스테는 당신 안에 있는 신께 경배합니다라는 뜻이며 네팔사람들이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하는 인사말이다. 아침식사 메뉴가 떡국이다. 히말라야 오지에 와서 떡국을 먹을 수 있다니 행복한 아침이다. 히말라야 트레킹이 시작되는 날이니 긴장도 되고 기대도 되었다.

 

 

[계곡아래 탐부체트 마을을 감싸고 있는, 아침 햇살로 눈부신 가네시 히말의 모습_골중고개에서 김영채 사진]

 

  정확히 730분에 버스가 출발하였다. 고개를 넘어 자동차도로가 끝나는 탐부체트까지는 버스로 가야했다. 굽이지고 급경사진 도로를 한 시간쯤 올라가서 골중(Goljung 1,946m) 고개에서 쉬었다. 날씨가 쾌청하여 서쪽에 있는 가네시 히말이 선명하게 보였다. 청명한 하늘 아래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하얀 설산 가네시 히말의 모습은 너무나 눈부시고 깨끗한 느낌이었다. 처음 보는 히말라야의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눈부신 설산의 모습을 대하니 내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청주에서 오신 최창원 선배님이 주위에서 왜 자꾸 히말라야를 가느냐는 질문에 네팔 사람들의 맑은 영혼을 담고 싶어서 간다라고 했다는 데…… 나도 그래야 할 것 같다.

 

 

 

[칠메하천(Chillme Khola)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를 건너는 탐사대_김영식 사진]

 

  0850, 탐부체트(Thambuchet 1,738m)에 도착하였다. 탐부체트는 가트랑에서 뚜만을 거쳐 보테코시 강(Bhote Koshi Nadi)을 따라 티벳 국경까지 이어지는 따망 헤리티지 트렉(The Tamang Heritage Trek)의 중간지점으로 상당히 큰 마을이었다. 보테코시 강은 둔체 근처에서부터는 트리슐리 강으로 이름이 바뀐다. 여기서부터는 본격적인 트레킹의 시작이다. 먼저 대원 모두가 둥그렇게 모여 최창원 자문위원님의 구령에 따라 체조를 한 다음, 스틱을 가운데로 모아 파이팅을 외치고 출발을 하였다. 선두는 가이드인 핀죠가 섰고 그 뒤를 청소년 대원들과 성인대원들 순으로 따랐으며 맨 후미에는 클라이밍 셀파인 리마와 박종익 부대장이 섰다. 마을 주민들이 담 너머로 쳐다보는 탐부체트 마을을 지나 칠메하천(Chillme Khola)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를 건넜다. 청보리밭 가운데 있는 초르텐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 산길로 접어들었다. 초르텐은 티베트 불교의 불탑을 말하며, 초르텐에는 불경을 새긴 마니석이 빙 둘러있었다. 이런 불탑이나 마니석의 옆을 지날 때는 그 왼쪽길을 걷도록 해 자신의 오른쪽 어깨가 불탑이나 마니석을 향하는 것이 존경의 표시라고 한다. 그럴려면 불탑을 참배할 때는 반드시 시계방향으로 돌아야 하는 것이다.

청보리밭을 지나고 산길을 두 시간 이상 걸어 올라가서 공강마을에 있는 작은 공강초등학교에서 휴식을 하였다. 박종웅 자문위원님이 한국에서 가져온 플라스틱 간이 피리를 네팔 어린이들에게 나누어 주니, 너댓 명이 삐익~ 삐익~’소리가 나는 피리를 불며 박 자문위원님을 졸졸 따라 다녔다. 어린이들이 불어대는 피리소리를 뒤로하고 산길을 올라 따또파니 마을이 멀리 보이는 양지바른 언덕 위에서 주먹밥으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오후 2시 경에 따또파니(Tatopani, 2,607m)에 도착하였다. 온천이 있는 마을이라서 따또(뜨거운)와 파니()이 결합한 말이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탐사 기간 내내 따또파니라는 말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단어가 되었다. 모든 롯지에는 난방시설이 없으므로 밤에 잘 때도 끓인 물인 따또파니를 각자의 수통에 한 통씩 담아서 침낭에 넣고 자면 밤새 침낭 안이 따뜻해서 좋았다.

 

 

[따또파니의 노천 온천에서 피로를 풀고 있는 탐사대원_김영식 사진]

 

  롯지의 방에 배낭을 풀고 노천 온천에서 온천욕을 하였다. 오늘 따또파니의 온천욕은 단순한 온천욕이 아니다. 반바지만 입으면 남탕·여탕의 구분이 없고, 백두산 정상 높이의 히말라야 오지에서 온천욕을 하는 호사를 누렸으니 그냥 온천욕이라고 간단히 말해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 호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의 온도는 한국 목욕탕의 42~43쯤 되는 고온탕 정도의 온도로 느껴졌고, 철분이 많아서인지 탕 안의 물은 황토색을 띠고 있었으며, 온천수가 흐르는 계곡의 암반은 붉은 황토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바람은 약간 차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온천욕을 하고 나니 피로가 확 풀린 느낌이다. 기분이 상쾌하였다.

저녁식사 전 식당에 모두 모여 윤석주 자문위원님의 제안으로 네팔 민요인 레삼피리리를 배우고 설악가를 부르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처음 불러보는 레삼피리리는 리듬이 쉬워 배우기가 어렵지 않았다. 탐사대 수첩에 있는 레삼피리리의 가사를 보며 경쾌한 리듬의 노래를 부르니 긴장도 풀리고 기분도 좋아졌다. 젊은 2명의 성인남자대원들이 가벼운 고소 증세로 힘들어 하고 있었으나 어린 청소년들은 비교적 적응을 잘하고 있어 대견스러웠다.

저녁식사 때는 히말라야에서 자란 염소를 한 마리 잡았다. 최창원 자문위원님을 중심으로 건강한 대원들은 술잔을 부딪히며, 고소 증세로 고생하는 대원들이 염소고기를 먹고 힘을 내, 고소증세를 빨리 떨쳐내기를 기원하며 건배를 하였다. 건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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