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로운 졸업을 앞둔 누나 

 누나와 함께

 담임선생님과 함께

 큰형수와 누나

 

누님 부부 

 

 

금산사 일주문 

김경숙/유현이/박만수/홍선경/이재영/김두경/조정현/김선욱/이미영/서명원 

 

서명원/박만수/김선욱/김두경 

조정현/홍선경/이미영 

 

 

 

 

 

 

 

 

 

 

 

 

 

전동성당에서 

 

 

 

 

전주 경기전 

 

 

전주 한옥마을에서 

 

 

 

 

 

백두대간 10구간 출발에 앞서 용추계곡에서 기념촬영

동업령을 오르고 있는 금강산

 

 

 

 

 

 

 

 

백암봉에서 궁노루

 

 

 

 

 

릉운/금강산/초록

 

 

 

 

 

 

 

 

 

 

 

 

 

 

박포수/인아지아 

 

 

 

까망/참솔/망치/산장지기

              금강산

 

 

 롱

까망/하얀민들레/?/달구비 

 

 

 

박포수 

 

 

 

 

빼봉에서 바랑 

빼재에서 실크 

 

2012. 01. 02.[월]

 

나마스테~ 흰 눈 덮힌 장엄한 히말라야에로의 새로운 시작, 그 출발일이다. 카트만두에서의 첫 아침을 6시 모닝콜이 울리기 전에 미리 일어나 준비를 하였다. 내가 일어났을 때 부지런한 연 선생님은 이미 샤워까지 마쳤다. 모든 대원이 시간을 잘 지켜 우리 탐사대 29명과 현지인 가이드, 쿡, 포터 등 스텝을 태운 2대의 버스가 7시 40분에 호텔을 출발하였다. 보행자와 오토바이와 미니버스들로 복잡한 거리를 지나 쓰레기가 넘쳐나는 카트만두의 아침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는데, 사오십 미터는 될 것 같은 긴 차량과 오토바이 행렬이 길가에 멈춰서 있는 광경이 보였다. 주유소에서 차와 오토바이에 기름을 넣으려는 긴 줄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시내에 드문드문 있는 주유소 주변은 모두 긴 줄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내수용 기름이 부족하고 주유소가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란다.

 

 

[탄코트 고개에서 스낵을 팔러 온 네팔 소녀_김영채 사진]

 

 

  카트만두를 동서로 가르고 탄코트(Thankot)고개를 넘어 인도까지 이어지는 최초의 자동차도로를 트리부반하이웨이라고 하는데, 하이웨이라고 해봐야 포장한 지 오래되어 군데군데가 움푹움푹 패인 왕복 2차선 도로일 뿐이다. 트리부반하이웨이를 따라 시내를 한 시간 가량 달려 산 능선의 고갯마루에 있는 검문소에 도착하였다. 이곳 탄코트(Thankot)고개가 수도인 카트만두와 지방의 경계라고 한다. 마치 화산 분화구의 외륜산처럼 카트만두가 이런 다섯 개의 야트막한 산으로 삥 둘러싸이고 그 가운데 도시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분지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버스가 멈춰선 사이에 스낵을 파는 어린 소녀가 탔다. 감자칩 한 개가 50루피(700원), 네팔에 와본 경험이 많은 대원 중 누군가가 몇 개를 사서 네팔의 스낵을 맛 볼 수 있었다. 차창 밖에는 오륙 명의 소년, 소녀들이 눈망울을 굴리면서 스낵을 높이 들고 서로 자기 것을 사달라는 간절한 외침이 들리는 것 같았다.

  고개를 넘자마자 계곡 아래로 구불구불한 비탈길이 까마득하게 이어지고 있어 카트만두 분지가 상당히 높은 곳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고개 너머로는 험한 비탈길이지만 인도와 포카라로 가는 고속도로이므로 인도에서 오는 많은 화물차와 교행을 하였다. 고속도로라고는 하지만 급커브의 좁은 2차선 도로라서 마주 오는 차량들이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갔다. 인도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니 포카라 방향으로 가는 길에는 왕래하는 차가 현저히 줄었다. 호텔을 떠난 지 2시간이 조금 넘어서 트리슐리 강(Trisuli Nadi)을 만났고, 여기서 다시 포카라와 트리슐리로 길이 갈렸다. 남쪽으로 흘러 인도를 지난다는 트리슐리 강은 강폭이 상당히 넓었다. 우리는 강을 왼쪽에 끼고 강의 상류를 향해 달렸다. 간간히 강 건너편의 외딴섬처럼 보이는 마을로 이어지는 출렁다리가 보였다.

 

 

[트리슐리의 과일가게에서 열심히 촬영 중인 김영식 대장님_김영채 사진]

 

  카트만두의 호텔에서 트리슐리까지 약 100km가 좀 넘는다고 하는데 여기까지 오는데 세 시간이 걸렸다. 소변도 마렵고 다리도 쉴 겸 트리슐리의 과일가게 앞에서 잠시 쉬었다. 우리 대원 누군가 과일을 샀다. 큰 참외크기의 「밥부」라는 과일인데 두꺼운 껍질 속에 빨간 색의 과육이 오렌지처럼 부드러우며 달고 신맛이 강한 과일이었다. 과일가게 근처의 트리슐리 시내 한가운데에 삼거리 갈림길이 있고, 그 삼거리에 힌두교의 링가를 모신 작은 힌두교 사당이 있는 그 옆에 거리 원점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트리슐리에서 둔체까지의 거리가 48km라고 적혀 있는데, 아쉽게도 카트만두까지의 거리 표시는 없었다. 트리슐리에서 한 시간 쯤 더 가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고도가 점점 높아지니 기온이 낮아지고 차창 밖에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산비탈 길을 구불구불 올라가다 정상 근처의 깔리카스탄(Kalikasthan)이라는 작은 마을의 식당에서 김밥과 오렌지, 바나나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마을은 설악산 정상 높이에 근접한 해발고도가 1,717m라고 하는데 비가 내리니 더 춥게 느껴졌다.

 

 

[트리슐리 갈림길 삼거리에 있는 둔체와의 거리 표지석_이상호 사진]

 

  둔체(Dhunche 1,960m)에 도착하기 전에 랑탕국립공원의 첵크 포스트에서 트레킹에 필요한 퍼밋을 받느라 30분 정도 지체하였다. 둔체는 트리슐리보다도 훨씬 큰 마을이며 교통의 중심지로서 둔체에서 샤브루베시와 신곰파로 가는 길이 나뉘어진다. 둔체를 지나고 큰 고개를 넘어 현기증이 날 정도의 아슬아슬한 길을 내려가면 계곡 아래에 있는 따망족의 마을 샤브루베시(Syaphru Besi 1,460m)가 나온다. 오후 4시 50분에 샤브루베시의 롯지(호텔 트레커스)에 도착하였으니, 아침 일찍 호텔을 떠났는데도 9시간이나 걸렸다. 여행 안내서에는 하루에 3편이 있는 로컬버스가 약 8시간 걸린다고 하는데~~

  약 200km 가 채되지 않은 거리를 9시간이 걸린 이유가 있다. 왕복 2차선 도로에서 길 가운데 고장난 트럭이 있으면 그 트럭의 수리가 끝날 때까지 우리가 탄 버스도 멈춰서야 했다. 이런 일이 두 세 차례나 있었다. 또한 가파른 비포장 언덕길을 오르는 트럭이 조금 내린 비로 길이 미끄러워 오르지 못하면 그 트럭이 언덕을 올라 챌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트럭이 언덕 아래쪽으로 멀리 후진 한 다음 기속력을 얻어서 빠르게 달려와 고갯길을 넘어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대여섯 번을 시도 했으나 그래도 안되니 그제서야 우리 차에 길을 양보해 주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 차의 현지인 기사는 불평 한 마디 없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네팔다운 기다림의 미학이었다. 이렇게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서 네팔 사람들의 눈망울은 선하게 보이는 것일까?

 

 

출처 : 충북등산학교
글쓴이 : youngcha 원글보기
메모 :

 

2012. 01. 01.[일] 


  새해 아침을 외국 호텔에서 맞는 긴장감으로 모닝콜이 울리기 전에 일어났다. 심 피디님과 준비된 빵과 오렌지, 바나나, 오렌지쥬스로 아침을 먹으면서 텔레비젼을 켜니 미국 CNN방송이 나왔다. CNN의 「토크 아시아(TALK ASIA)」 프로그램에 한국의 글로벌 패션기업인인 MCM의 김성주 대표가 나와서 여성 사회자와 대담을 하고 있었다. 한국의 여성 사업가(Korean Businesswoman)로 소개된 김 대표는 유창한 영어와 세련된 모습으로 대담에 응하고 있었다. 지난 가을인가 KBS방송의 글로벌 성공시대 프로에서 보았던 분이라 채널을 바꾸지 않고 관심 깊게 보았다. 영어방송의 내용을 다 알아듣는 것은 아니지만 채널을 다른 데로 돌려봐야 어차피 태국말은 더 못 알아들을 테니까 …. 티비(TV)를 보면서 미래의 한국의 여성상을 앞당겨 보는 듯 하여 자랑스러웠다. 우리의 제자들도 저렇게 성장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담 프로가 끝나고 잠시 후 오전 07시(서울 시간은 2시간이 늦은 09시), 뉴스시간에 세계 각국의 새해 표정이 화면에 떴다. 런던은 자정이라서 새해맞이 불꽃놀이가 화려했고, 뉴욕은 12월 31일 19시에 맨해튼 거리의 송년(New Year's Eve) 모습이 비쳐졌다. 우리는 티비 속의 송년과 새해맞이 모습을 보면서 방콕 공항으로 가기위해 배낭을 쌌다. 심 피디님은 방을 나서기 전에 자신의 배낭보다도 방송용 캠코더를 먼저 챙겼다. 무거워 보이는 커다란 캠코더를 둘러메고 나가는 프로작가의 모습에서 좋은 방송영상물이 나오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아침 7시 30분에 호텔 미니버스를 이용하여 공항으로 출발하였다.


  새해의 이른 아침, 방콕공항은 매우 한산하였다. 단체 입국은 우리 탐사대뿐이다. 간단한 입국심사 후 대원 모두 네팔 가는 비행기의 탑승구 게이트 앞에 모였다. 서둘러 온 탓에 탑승시간 09시 50분까지 2시간이나 여유시간이 생겼다. 나 혼자 한산한 상가 구경에 나섰다. 면세점 상가들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가 많았으나 음식점과 커피숍만은 문이 열려있었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커피 생각이 나서 한 카페(Cafe NERO)에 들어갔다. 역시 여기도 손님은 한 사람도 없어 내가 새해 들어 마수걸이 손님인 셈이다. 커피를 주문하였다. 카푸치노 한 잔이 110바트(Baht), 1달러에 30.46바트이므로 약 4달러(약 4,600원) 정도 하는 셈이다. 태국 국민소득을 생각하면 방콕 공항의 커피값은 매우 비싼 편이었다.

  타이항공 비행기가 방콕공항을 출발한 시간은 10시 50분, 카트만두 도착시간은 현지시간으로 12시 45분이다. 방콕에서 카트만두까지 3시간 10분 걸렸다. 네팔은 우리보다 약 3시간 15분이 늦으므로 서울은 지금 오후 4시이다. 어젯밤 9시25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방콕을 경유하여 오다보니 네팔까지 오는데 비행시간 만 약 9시간에다, 방콕에서의 환승시간을 10시간으로 계산하면 약 19시간이 지났나 보다. 이동하는데 긴 시간을 보냈으나 나는 이 시간이 결코 낭비의 시간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보고 듣고 체험 해보는 과정 모두를 경험으라고 볼 수 있으므로 이 모든 과정도 여행의 새로운 경험인 셈이다. 우리 오지학교탐사대의 대원들도 이를 즐기면서 경험하면 이 모든 일들이 여행의 노하우를 쌓는 방법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네팔 카트만두 트리부번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주차장에서 버스 승차 준비_김영채 사진]


  처음 와보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해발고도 1,300m)의 날씨가 청명하면 좋았으련만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오후 1시경인데도 늦은 오후 같은 회색빛의 어두운 날씨였다.  카트만두의 트리부반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트리부반은 네팔의 사허 왕조 8대 국왕의 이름으로 트리부반의 이름을 붙인 도로도 있어 카트만두를 가로지르는 큰 길의 이름도 트리부반 대로이다. 트리부반국제공항은 한 나라 수도의 관문이지만 소박하고 작은 공항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대합실로 들어서는 복도 입구에는 『당신이 네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s You to Nepal)』라고 네팔 도착을 환영하는 글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김영식 대장님이 당부한 대로 우리 탐사대는 신속하게 움직여 도착비자 받는 줄에 섰다. 우리 팀 외에도 일반 승객까지 합하여 순식간에 도착비자를 받기위한 긴 두 줄이 만들어졌다. 비자신청 서류에 사진을 직접 붙이지 않고 사진을 스캔하여 넣었는데 그냥 통과되었다. 비자 발급 비용은 15일 기준으로 25달러(USD)이다. 네팔의 국가 수입원 중의 중요한 산업이 관광산업이므로 외국인으로부터 이 정도는 받아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한 지 1시간 30분만에 비자 발급을 받고 짐까지 찾아 나왔다. 우리 탐사대의 현지 여행사인 코리안 트렉의 장정모대표가 나와 있었다. 우리를 환영하는 현지인 스텝들로부터 진한 노란색에 자주색이 섞인 환영꽃을 목에 걸고 버스를 탔다. 카트만두의 트리부반국제공항에서 시내 중심지 로얄싱기호텔(Royal Shingi Hotel)까지는 30분 거리였다. 오후 2시 50분경에 호텔에 도착하여 객실 배정을 받았다. 청주에서 오신 연철흠 선생님과 한 룸을 쓰게 되었다. 낯선 사람과의 새로운 인연, 울트라마라톤의 달인 연철흠 선생님과의 새로운 인간관계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각자 방으로 흩어져 카트만두에 두고 갈 짐과 트레킹에 필요한 짐으로 짐을 분리한 후 저녁식사를 하기 위하여 18시에 로비에 모였다. 한식당 <빌라 에베레스트>까지는 걸어서 15분 거리인데 벌써 밤거리는 컴컴하였다. 울퉁불퉁한 보도블럭과 가로등이 없는 낯설고 어두운 카트만두의 밤은 낮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 같았다. 많은 보행자와 잡상인,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경적 소리, 지독한 먼지와 매연이 카트만두에서 느낀 첫 인상이었다. 새해 첫날이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마치 퇴근시간의 러시아워처럼 붐볐다. 먼지와 매연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는데 다행히 출국하기 전에 한국에서 썼던 마스크가 호주머니에 있어 코와 입을 가렸다. 길거리 전광판에는 현재 기온이 10℃를 나타내고 있어 겨울이지만 그리 춥지 않은 날씨였으나, 호텔은 객실의 난방이 되지 않아 약간 추운 느낌이 들었다. 밤새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되겠다. 


[트레킹 기간 내내 한 룸을 쓰게 된 울트라맨 연철흠 선생님과 함께 로얄싱기호텔 로비에서/ 탐사대 사진]


출처 : 충북등산학교
글쓴이 : youngcha 원글보기
메모 :

 

2011. 12. 31.[]

 

  청소년과 선생님들의 아름다운 도전이 주제인 제8차 히말라야오지학교탐사대 탐사수첩의 첫 장을 넘기면 고은 시인의 시 아직 가지 않은 길이 있다. 시인의 말처럼 정말 그동안 걸어 온 길보다 더 멀리 가야 할 길이 있는 것처럼 이번 겨울방학 때 아직 가지 않은 길을 위하여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네팔 히말라야를 가게 된 것이다. 탐사대 윤석주 자문위원님이 직접 제작한 탐사수첩은 휴대하고 수시로 메모하기 좋게 잘 만들어져 있다. 또한 대원명단 외에 네팔 민요인 레쌈 피리리의 우리말 가사가 있고, 히말라야 8천 미터 14좌를 쉽게 외울 수 있는 독특한 노하우가 들어있다. 수첩에는 14개 봉우리를 이렇게 쉽게 외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어떡하나, 로마에 처음 왔는데~ 다마낭에 안 가보셨죠? 가시죠.(에투칸, 로마쵸~ 다마낭 안가12)이렇게 쉽게 히말라야 14좌를 외우는 방법을 듣고 나는 무릎을 쳤다. 수첩을 직접 만드신 윤 자문위원님의 깊은 생각이 오롯이 담겨있는 것 같다. 수첩을 만지작거리다가 시를 읽었다.

 

  낮 12, 인천공항에서 만나야 할 시간 오후 6시를 지키려면 순천에서 인천공항 가는 버스가 하루에 3편밖에 없는 탓에 이 시간에 출발하는 버스 밖에 없다. 연말연시를 해외에서 보내려는 사람들이 많아 2011년의 마지막 날의 인천공항은 매우 붐볐다. 탐사대 홈페이지에서 정리한 탐사대 계획서와 예약자 명단을 따로 인쇄해와 일행을 기다리며 계획서와 우리 탐사대원의 이름을 한 사람씩 읽었다. 여러 차례 읽은 계획서라 탐사일정은 훤히 다 그려지지만 대원의 이름은 낯선 이름이 많아 읽고 또 읽어도 누가 누군지 헷갈린다. 만나면 금방 익숙하게 느껴지겠지만 아무래도 궁금하고 기대된다.

  약속시간이 되니 모든 대원이 다 모였다. 중학교 일학년부터 고등학교 삼학년까지 청소년 대원이 8명이고 성인 대원이 21명으로 전체 인원은 29, 많은 인원이다. 김영식 탐사대장님이 보딩패스를 일괄해서 받아온 다음에 모두 모여 개인 카고백과 공동 카고백을 수하물로 부치는 일을 먼저 하였다. 공동 짐의 양이 많은 점을 고려하여 개인 짐의 무게를 18kg이하로 최소화 해달라는 김 탐사대장님의 당부를 모든 대원들이 잘 지킨 덕분에 수하물 짐에 대한 오버차지는 다행히 없었다. 탐사대의 출발이 순조롭다. 이제 히말라야를 향하여 출발이다.

  19시경에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하니 42번 탑승구로 가는 길목의 신라면세점 화장품, 향수 매장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풍긴다. 향기로운 냄새에 취해 오지탐사가 아니라 편안하게 휴양하러 외국여행 가는 느낌이다. 히말라야 롯지가 아닌 열대 바다의 리조트로 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방콕행 탑승구에서 노랑색 배낭을 줄지어 세워놓으니 그 모습이 이색적이다. 2125분에 출발하는 타이항공에 탑승하면서 조선일보 한 부와 태국신문에 실린 사진이나 보려고 영자신문인 <더 내이션 온 선데이>를 한 부씩 들었다. 두 종류의 201211일 자 신문이면 5시간 반의 비행시간을 잠들지 않을 수 있겠다. 2012년 임진년은 용의 해라 우리 신문에는 용에 관한 기사가 많아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가 이신조의 용을 말하다와 김미리 기자의 우리 속담 속의 용을 꼼꼼히 읽었다. 조선일보의 기사 내용을 귀국하여 스크랩을 하려고 수첩에 메모를 많이 해 두었다. 태국신문 <더 내이션>에는 70회 생일을 맞은 국왕의 태국국민에게 행복과 성공을 기원하는 신년인사말이 있었다.(King wishs happiness and success to all Thais)

 

 

 

[인천공항에서 태국 방콕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탐사대원과 배낭들_김영식 사진]

 

  태국 시간으로 11050분에 방콕 공항에 도착하였다. 카트만두로 출발하는 항공편이 10시간 후인 오전 1050분에 있으므로 예약된 공항 근처의 호텔(컨비니언 리조트)로 갔다. 공항에서 가깝고 깨끗한 호텔이다. 공항에서 차로 10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지금은 현지시간으로 새벽 두 시가 다 되었다. 새해들어 첫 밤을 태국 방콕에서 보내게 되었다. 처음 뵙는 K방송국 심웅섭 피디님과 한 방을 쓰게 되었다. 새해 첫 날의 덕담으로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침대에서 잠들 수 있어 심야의 긴 여행의 피로를 풀 수가 있어서 좋았다. 지난 일 년에 대한 상념과 새해에 대한 기대감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아듀 2011~.

 

 

 

출처 : 충북등산학교
글쓴이 : youngcha 원글보기
메모 :

드디어 집으로 출발하는 날 여유 있게 일어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짐을 정리했다. 9시 넘어 숙소 앞 슈퍼에서 부족했던 치약을 더 구입하여 짐을 챙기니 카고의 무게가 처음보다 더 무거워졌다. 10시 30분 드디어 공항 들어가기 전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이동 이른 점심을 먹고 비행기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두르는데, 다행이 차가 밀리지 않아 제 시간에 도착하고 출국을 위한 수속을 밟았다. 다행이 입국할 때 보다는 쉽게 통과되었지만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3번을 온 몸을 더듬는 검사가 진행되었다. 예정보다 30분이 더 지나 태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제공되는 기내식을 먹고 속이 부딪혀 고생하고 19:00 방콕 돈무앙 공항에 도착 출발까지 3시간여를 공항에서 보내기 위해 여기 저기 구경하다 박종웅 선생님, 연철흠 선생님과 일본식 음식점에 들어가 맥주를 안주 삼아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나와 공항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다 10시 50분 탑승시작 또 제공된 기내식을 먹고 또 거북해 하고 움직임도 불편한 공간에서 다들 고생했다. 드디어 16일 6시 40분 인천 공항에 도착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소식이 없다. 1시간여를 기다려 7시 40분 짐을 챙긴 후 오지학교 탐사대를 지원했던 영원무역에서 담당자 분이 나와 환영해 주었다. 잠시의 기념사진 촬영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 성남의 영원무역 본사에 들러 회사에 대한 소개와 질의 응답시간을 마친 후 점심식사까지 마치고 드디어 청주로 출발 13시 30분 체육관 앞에 도착 17일간의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5년 전 고소증세로 토롱라를 포기했던 기억으로 걱정이 앞섰던 이번 여행은 비스타리비스타리(천천히)라는 원칙에 충실한 덕분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풍경을 간직하며 마무리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여행 내내 보였던 설산과 달빛, 파노라마로 펼쳐지던 네팔의 거대한 산군, 일출과 일몰, 일정 내내 즐거운 이야기와 노래로 분위기를 이끌어 주셨던 선생님들 덕분에 정말 행복한 여행이었다.

7시 기상, 8:30 출발

 

오늘은 자유일정으로 청주에서 함께 간 선생님들과 차를 빌려 박타풀과 파탄 왕궁을 보러 가기로 했다. 박타풀 입장료가 15불이라 하여, 잠시 망설이다 1인당 50불씩 내기로 하고 승합차를 빌려 출발하려는데 차바퀴에 큰 못이 박혀 걱정을 했더니 기사가 문제없다며 그냥 출발한다. 여전히 분주하고 안개가 자욱한 날씨가 걱정이 되었는데 갑자기 큰소리가 나며 펑크가 나 버렸다. 다행이 가까운 곳에 수리하는 곳이 있어 바퀴를 빼서 굴려갔는데 자전거 펑크 수리하듯 표면을 깨끗이 한 후 고무에 본드를 붙여 펑크 난 자리에 붙이고 다시 망치로 때려 붙이기를 30분, 겨우 수리가 끝나 다시 끼우고 박타풀로 출발 입구에 도착하여 주변 풍경을 보니 벽돌로 잘 쌓아 잘 지은 4층 건물이 있어 어떤 곳인가 궁금해 하고 있었는데 닭소리가 들인다. 양계장인데 사람 사는 곳 보다 더 좋아 보인다. 입구의 조각상과 붉은 칠을 확인하며 입구에 도착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고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정교한 조각에 모두들 탄성을 지른다. 건물하나하나가 문화재일 텐데 곳곳이 상점과 식당으로 쓰이고 있으며 아무 통제 없이 마음대로 출입하고 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당시 왕조의 세력을 가늠하며 골목, 골목을 다녔다. 마침 사원에서 죽은 이를 위로하는 행사가 진행되어 잠시 구경하고 다른 곳을 둘러보는데 음악소리가 들린다. 좀 전(前) 제를 지내던 사람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궁 곳곳을 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생활 현장이 되어버린 박타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정부차원의 보존대책에 세워지지 않아 계속 경고가 내려온다는 설명을 해준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음 행선지인 파탄왕궁으로 향했다. 중국 총서기의 방문으로 차가 많이 밀려, 1시간여 걸려 파탄왕궁에 도착하니 입장료가 200루피, 외국인에게 받는 입장료가 훨씬 비싸다. 그래도 박타풀보다는 싸기에 왠일인가 했더니 규모가 훨씬 작다. 건물들은 박타풀과 비슷했으나 파탄은 돌도 정교하게 조각하여 건물을 지었는데 수리하는 곳도 많이 보였고 곳곳이 상점과 식당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늦은 점심을 박물관 식당에서 해결하려고 들어갔더니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이다. 치킨시즌리커리를 시켜 놓고 한참을 기다리니 20여분이 넘게 걸려 음식을 받았는데 그 중 2개는 그릇이 모자란다고 일반 접시에 준다. 남편이 농담을 하느라 그릇이 잘못되었으니 값을 깎아 달라했더니 특별한 그릇이라 더 내야한다며 농담으로 받는다. 유쾌한 농담으로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는데 봉사료 10%, 세금 13%, 전체 음식 값의 1/4이 세금으로 더 붙는다. 그렇게 점심을 마치고 이곳저곳 골목을 구경하는데 역시 정교한 나무 조각이 감탄사를 연발하게 했다. 두 곳을 서너 시간 둘러보고 나니 산길을 걷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다며 모두들 지쳐있다. 구경을 끝내고 숙소에 들어와 한숨 낮잠으로 피로를 푼 후 중국음식점으로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우리나라의 중국식당과는 다른 끝없이 나오는 튀긴 음식, 얼마 먹질 못하고 뒤로 물러앉는다. 여행 내내 술과 친구했던 남편이 모처럼 분위기 낸다고 양식집을 예약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그냥 먹자고 하는 바람에 화가 나 있다. 미리 이야기를 해 주면 좋았을 것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