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기상, 6시 30분 아침식사, 7시 30분 출발

 

김대장님이 치료를 위해 7시 20분쯤 지역버스를 타고 나가고 오늘부터 코사인쿤드를 향한 일정이 시작되었다. 다시 전날 통과했던 검문소를 지나 철로 만들어진 출렁다리를 건너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6차때 랑탕계곡 들어가는 길과 함께 진행하다 중간에서 나누어진다는 설명을 6차에 참여하셨던 선생님들이 해 주셨다.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을 선택하여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데 청소년 대원들이 많이 힘들어하여 천천히 진행하며 핀죠씨의 재미있는 설명도 들어가며 오르고 있는데 위쪽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내려오시다 우리를 위해 길을 내어주시느라 기다리고 계셨다. 볼일을 위해 샤브르베시에 나가시는 길이란다. 그냥 걷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산길을 짐을 지고 여유 있게 다니는 이곳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사람의 적응력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해 졌다.  12시가 조금 넘어 오늘의 목적지인 툴루샤브르의 라마호텔에(툴루가 이곳 말로 큰이라는 뜻이라는데 왜 샤브르베시보다 큰 곳이라 했는지 이해는 할 수 없었지만) 도착하니 곳곳이 공사로 분주했다. 이곳은 그래도 시멘트로 기본 골조를 올리고 나머지 공사도 콘크리트 미장으로 하고 있었다. 공사에 필요한 흙을 위쪽에서 여자들이 이마에 끈을 대고 포대에 져 나르는 모습이 계속 보였다. 국수로 점심을 해결하고 코사인쿤드 쪽에 눈이 많이 와 운동화와 고글을 사주지 않으면 안가겠다는 포터들의 요구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늦게 출발한 짐오기를 기다리며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데 우리가 올라올 때 내려가시던 할머님이 벌써 샤브르베시에서 일을 보시고 짐을 잔뜩 진채 올라오셨다.  롯지마다 털실로 짠 양말, 머플러, 모자 등을 팔고 있었는데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영어로 하고 있었다. 관광객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연세 드신 어른들도 대부분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는 영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곳은 TV도 볼 수 있었는데 우리나라 드라마도 방송된다고 했다. 숙소 주인의 작은 딸은 이민호를 좋아하여 어른 선생님들이 물어보니 자기 남편이라 칭하며 좋아 하더라는 말을 전해 주셨다. 짐이 도착하여 정리를 마친 후 동네를 둘러보기 위해 위쪽으로 올라가니 곰파가 보여 관심을 보이니 10살 남짓한 여자아이가 나와 문을 열어주며 절을 하라고 한다. 불전을 놓고 3배를 올린 후 나오니 신기한지 계속 따라다니며 우리말을 곧잘 따라한다. 위쪽을 더 둘러보기 위해 올라가니 군인이 지키고 있는 초소가 있고 다음날 올라갈 길 쪽으로 흰 탑과 건물이 보이기에 꼬마에게 물었더니 보건소인데 의사가 없단다. 지용희 선생님께서 한참을 꼬마들에게 말을 가르쳐주니 발음도 정확하게 잘 따라한다. 덕분에 꼬마 숙녀들에게 언니라는 소리도 들어가며 여유 있는 시간을 가졌다. 카레로 저녁을 해결하고 난방이 되지 않는 방에 들어가기 싫어 따뜻한 곳을 찾았더니 3층 식당에 불을 피워준다 하여 올라가니 다들 같은 마음으로 삼삼오오 모여들어 노래와 끝도 없이 이어지는 어른 선생님들의 이야기로 정말 오랜만에 노래와 이야기로 실컷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함께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이 참 좋은 일 이란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남편은 심 피디님, 이상호 선생님과 동네 3대가 함께 사는 집을 방문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왔단다. 이런 일들이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닌가 싶다.

6시 기상, 6시 30분 아침식사, 7시 30분 출발

 

새벽부터 별 사진을 찍는다고 시간마다 깨어 밖에 나가는 바람에 덩달아 잠들지 못하고 결국 3시 넘어 별을 보러 나가니 달이 완전히 지지 않아 별 사진은 얻지 못했지만 여전히 달빛을 받은 설산의 모습을 다시 가슴에 담았다. 6시 넘어 일출을 보자는 말에 일어나 작은 언덕을 오르는데도 숨이 차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언덕을 올라가니 왜 나그탈리가 전망대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가네쉬 히말과 코사인쿤드 쪽 설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 서서히 일출을 알리는 붉은 기운이 올라와 탄성을 지르며 기다리는데 출발시간이 다 되도록 해가 뜨지 않아 결국 직전에 포기하고 내려와 짐을 챙기고 나오니 그 사이 해가 설산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결국 아침도 먹지 못했지만 해뜨기를 기다리며 보았던 풍경들 역시 이번 여행의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이다. 7시 30분 전화기를 잃어버린 청소년 대원의 핸드폰을 찾기 위해 잠시 주변을 둘러본 후 점심 장소인 뚜만을 향해 가파른 언덕길을 2시간여 내려가 오늘의 봉사 장소인 뚜만 프라이머리 스쿨에 도착하니 유치원생과 1, 2학년 학생 39명이 올라와 오인숙 선생님께서 데칼코마니와 인형 만들기를 진행한 후 연철흠 선생님의 2인3각으로 사탕 먹기를 진행하는데 정말 열심히 하신다. 수업이 끝난 후 학용품과 옷이 들어 있는 선물 주머니를 나누어 주는데 대상자가 아닌 곁에서 구경하던 상급생들이 나머지 선물을 놓고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순박한 선생님의 난감한 표정이 걱정되었다. 잠시 후 선물 보따리를 하나씩 들고 돌아서는 상급생들의 환한 표정에서 난감한 상황이 끝났음을 확인하고 점심 장소인 붓다 게스트하우스로 내려가니 떡라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네팔 산 중에서 먹는 떡라면의 맛 또한 잊기 어려운 기억이다. 점심을 먹은 후 잠시 시간이 있어 마을 위쪽에 있는 곰파를 둘러보기 위해 올라가니 아주 오래된 벚나무 한 그루가 바람에 꽃잎을 떨구고 오색 깃발을 몸에 두르고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곰파를 관리하는 노인 한 분이 잠겨 있던 곰파의 문을 열어주어 들어가니 불상과 여러 가지 그림들이 모셔져 있었다. 지용희 선생님과 3배를 하고 불전을 함에 넣으려고 하니까 그냥 촛불 켜놓은 곳에 놓으라고 한다. 밖으로 나오니 여자아이들 대여섯 명이 양지쪽에 둘러 앉아 콩을 튕겨 따먹기 놀이를 하고 있는데 우리의 공기놀이와 비슷해 한참을 구경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집을 짓기 위한 조각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이쪽 지역이 따망족이 살고 있는 곳이라 그런지 대부분 돌로 벽을 세우고 중심이 되는 곳에 정교한 조각으로 길상문을 새겨 넣은 창으로 집을 꾸미는 풍습이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휴식 후 다시 하산을 시작하는데 곳곳에 돌탑(초르텐)을 세우고 불경을 새겨 넣은 돌판이 있는데 왼쪽으로 지나가면 불경을 읽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곳곳에 세워 놓은 오색 깃발(룽다, 타르쵸)은 모두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불경을  새겨 넣어 돌탑과 마찬가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다락 논 사이를 정신없이 내려가며 건너편으로 넓은 도로가 보이기에 물었더니 중국 쪽에서 물자 수송을 위해 뜷고 있는 도로란다. 티벳 쪽에서 넘어오는 도로로 한나절이면 중국 국경에 닿는 지역이라 산 아래를 깍아 내며 왕복 이차선 도로를 내고 있었는데 비가 한번 내리면 산사태가 나지 않을 까, 또 도로가 완성되어 중국에서 물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것에 종속되어질 이곳의 삶도 함께 걱정을 하며 넓은 길로 내려오니 길을 넓혀 놓은 곳 옆 산 사면에서는 네팔 사람들이 나머지 낙석과 큰 돌을 망치와 정만을 가지고 깨어가며 축대를 쌓아가며 정리를 하고 있었다. 먼지 날리는 길을 한참 걸어 샤브르베시라 쓰인 곳에 도착하니 군인들이 차단기를 내리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가이드가 행정 처리를 하고 나니 통과하라는 사인이 떨어진다. 3시 조금 넘어 첫날 묵었던 숙소에 도착 오랜만에 씻고 휴식을 가진 후 식당에 내려가니 내려오며 넘어져 팔을 다쳤던 김대장이 둔체의 병원에 다녀온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한 숨밖에 나오지 않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보건소에 도착하니 엑스레이 기사가 없어 1시간을 기다리다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팔뼈에 금이 간 것으로 나와 기브스를 해달라고 했더니 거기선 못한다 하여 진통제만 받아 왔다며 다음날 카투만두로 나가야 한단다. 함께 걱정하며 오랜만에 편한 잠을 청했다.   

6시 기상, 6시 30분 아침식사, 7시 30분 출발

 

오늘의 목적지는 나그탈리, 아득한 산길을 지그재그로 올라 중간 동네인 브린당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곰파를 둘러보는데 건너편 언덕에 원숭이 무리들이 보인다. 산에서 원숭이를 보기는 처음이다. 사선으로 능선을 향해 올라가는데 3000m가 넘어서인지 고소증세가 나타났다. 거의 정상부에 도착하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더니 점심을 먹고 난 후 숙소에 들어가 쉬는데 양철지붕 위로 빗소리가 들려 걱정을 하며 밖으로 나오니 비가 아니라 싸락눈이 쌓였다. 작은 언덕을 올라도 숨이 차다. 식당에 난로 피웠다고 내려오라기에 식당에 들어가니 모두들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다 저녁을 먹고 이후 여흥까지 이어져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다 식당이 스텝들의 잠자리로 이용된다고 하여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오니 구름이 걷히고 별이 가득한 하늘, 김영채 선생님의 오리온자리에 대한 설명을 듣고 달빛을 받은 설산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번 여행에서 잊지 못할 풍경을 가슴에 담는다. 숙소 역시 벽만 세운 곳이라 옆 방(?)의 불빛이 세어 들어 올 정도다.

6시 기상, 6시 30분 아침식사, 7시 30분 출발

 

드디어 가네쉬 히말을 향해 출발한다. 일단 차로 탐부체트까지 가기로 하고 출발했는데 길이 아슬아슬 가슴을 졸이게 한다. 두 시간여를 달려 언덕 정상부에 도착하는 순간 나타난 가네쉬 히말의 설산, 모두들 차에서 내려 풍경을 감탄하고 기념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다시 시작되는 내리막길 역시 아슬아슬, 놀이기구보다 더 스릴이 있다. 9시 50분 6차 때 텐트를 쳤다던 자리에 도착 먼저 참석했던 선생님들은 감회에 젖어 한 말씀씩 하신다. 준비를 마치고 준비운동을 한 후 10시 오늘의 목적지인 따또바니를 향해 출발, 계속되는 오르막이지만 고도가 높지 않아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올라가니 중턱에 공강프라이머리 스쿨이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 왔다. 방학이라 그런지 학생은 보이지 않고 건물만 덩그러니 나그네를 맞는다. 잠시 쉬고 있는데 옥수수 튀기는 구수한 냄새가 유혹한다. 잠시 기다리니 핀죠씨가 잘 볶은 옥수수와 콩을 얻어 나와 한 줌씩 나누어 먹었다. 조금 더 올라가 점심으로 나누어준 주먹밥을 먹고 눈앞에 보이는 따또바니를 향해 다시 걸음을 옮기는데 발걸음이 천근의 무게로 느껴지며, 속은 매슥거리고 머리는 지끈지끈, 자꾸 하품만 나온다. 결국 목적지 바로 아래서 왼쪽 다리에 쥐가 나 여러 선생님의 도움으로 겨우 풀려 다시 걸음을 옮기나 역시 무겁다. 3시경 온천이 있는 목적지에 도착 다른 분들은 온천을 하러 갔는데 고소증세가 걱정되어 머리도 감지 못하고 다리만 담그는 것으로 만족하고 나오니 철분 때문인지 자욱이 지워지지 않는다. 조금 전까지 환하던 하늘에 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이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욱해 졌다. 고소증세로 저녁을 먹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으나 나무판으로 막아놓은 숙소의 발걸음 소리가 천둥소리로 들려 잠을 설치고, 새벽에 일어나 밖에 나가니 별이 가득하다. (시차 적응이 안 되어 자꾸 새벽에 일어남)

 

 

 

 

 

 

6시 기상, 6시 30분 아침식사, 7시 20 출발 

밤새 물내려가는 소리로 생각했는데 밖엘 나가보니 비가 내렸다. 비가 계속되었으면 힘들었을 출발이었는데 덕분에 깨끗해진 공기로 상쾌한 출발을 하게 되었다. 카투만두에서 포카라 가는 길로 가다 새로 만들어졌다는 길을 따라 수력발전으로 유명한 트리슐리 쪽으로 방향을 잡아 이동 1시간여를 더 달려 허름한 지역 식당에서 김밥과 오렌지로 점심식사를 해결하고 다시 둔체를 향해 출발, 네팔 최초의 국립공원인 랑탕으로 들어가는 허가서를 받기 위해 잠시 멈추었는데 멀리 가네쉬히말의 설산이 눈에 들어왔다. 여행자의 이름, 국적, 나이를 모두 손으로 작성을 하는 관계로 시간이 오래 걸려 동네를 둘러보기로 하고 걸어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자치기와 글렁쇠 같은 아이들의 놀이가 우리의 옛날 놀이와 같아 신기하게 구경을 하고 차에 올랐는데 일행 2명(설상욱, 이준희)이 보이지 않아 중간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찾았으나 행방이 오리무중, 짧은 시간에 멀리 갔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하고 40여분을 기다렸으나 찾질 못하여 걱정하던 중 이상호 선생님께서 건너편 오르막길에 서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한참을 서로 의견이 분분하여 결정하지 못하다 그냥 가보기로 하고 출발, 다소 짜증스러울 수 있는 상황을 유쾌한 농담으로 내내 이어가시던 선생님들 덕분에 웃음으로 마무리하고 그곳에 도착하니 두 분이 서 계셔 환호성을 지르며 한바탕 해프닝을 마무리하고 비로 무너져 내린 길을 아슬아슬하게 지나 17시 30분 오늘의 목적지인 샤브르베시에 도착 (트레커 인 호텔) - 거의 대부분 포장이 되어 편안한 길이라고 했는데 곳곳이 비로 인한 낙석으로 아슬아슬한 길, 진흙탕으로 미끌어지던  길, 까마득한 낭떠러지, 자욱한 구름 사이로 들던 햇살, 가파른 비탈의 다랭이 논, 비닐 천막으로 하늘만 가린 집(?),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카투만두에서 샤브루베시까지 10시간의 여행을 마무리했다.

 

로얄싱기호텔 

 

 

드라이버와 조수 사이인 부자 

 

우리나라보다 2시간 늦은 태국의 돈무앙 공항에 현지시각 1월 1일 오전 0시 30분 도착 10시 30분 출발하는 네팔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 공항 밖에 숙소를 잡아 쉬기로 하고 공항을 나가려니 공항세를 내라 한다. 그전에는 없었던 일이었나 보다. 공항 밖으로 나가니 숨이 막힐 듯한 날씨, 저위도 지방임을 확인한다. 숙소에 도착하니 1시50분 억지로 잠을 청하고 7시 기상, 빵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8시 조금 넘어 숙소 밖으로 나가니 바나나 나무, 부겐베리아, 파피루스, .... 화원에서나 볼 수 있었던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공항을 향해 출발하며 보이는 주변 풍경은 대부분 습지 식물, 몇 달 전의 물난리가 지형적 특성 때문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9시경 다시 돈무앙 공항에 도착 입국수속을 마치고 C3게이트에서 다시 기다림을 시작, 새로 지은 공항이라 시설도 잘 되어 있고 내부 이용하기에도 좋은 환경이다. 9시 50분 보딩이 시작되어 10시 45분 이륙 네팔을 향해 출발, 다시 태국보다 1시간 15분이 늦은 네팔의 튜리뷰반 공항에 14시 40분 도착했다. 늘 그렇듯 급할 것 하나 없는 일처리로 입국심사를 받는데만 1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밖으로 나와 여행을 함께할 스텝들을 만나니 다른 비행기들은 기상상황이 좋지 않아 돌아가거나 아예 취소가 되어 많이 걱정했다는 말을 전하며 운이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전날까지 가을 날씨였는데 갑자기 추워졌다는 말까지 함께 전해주었다. 숙소를 향해 이동하는데 거리의 풍경은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쓰레기는 거리 곳곳 아무데나 널려있고 시궁창물 같은 도랑물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 여전히 상팔자인 개들. 오후 4시, 5년 전 묵었던 로얄싱기호텔에 도착, 방을 배정받고 쉬다 6시 30분 저녁식사를 위해 출발, 식당에 도착하니 미리 준비한 감자전과 파전이 나왔는데 너무 식어 먹기가 힘들어 주저하고 있었는데 연선생님의 아이디어로 김치찌개를 끓여 식은 파전과 감자전, 절편을 넣어 먹으니 별미였다. 무엇이든 먹기 전 건배를 외치는 연철흠 선생님 덕분에 유쾌한 여행이 될듯하다.

 

 

 

 

 

 

 한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날이라 차가 많이 밀릴듯하여 일찍 약속을 잡고 2시 40분 KBS앞에 도착하여 잠시 기다리니 이번 여행을 함께 할 지용희 선생님과 연철흠 선생님이 먼저 오시고 심웅섭 PD님과 오인숙 선생님이 오셔서 3시에 출발, 아이들을 두고 떠나는 마음만큼이나 하늘의 상태가 심난하다. 연말에 주말이라 차는 많았지만 전용차로를 이용하는 덕분에 생각보단 수월하게 5시 40분 인천공항에 도착.  여행이 늘 그렇듯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한참을 여기저기 구경을 하며 다니다 보니 충주에서 함께할 일행들이 도착하였고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다시 긴 기다림. 7시 30분 넘어 전체 일행의 총중량으로 짐을 부치고 학교에 전해줄 책들은 기내에 반입되는 배낭에 넣어 묵직해진 배낭을 메고 자동출입국심사를 신청하여 편하게 심사를 마치고 비행기가 출발하는 곳으로 이동, 다시 보딩을 위한 기다림, 8시 50분이 되니 탑승 안내 방송이 나오고 드디어 비행기에 올랐다. 9시 20분 이륙을 위해 이동을 시작 40분이 넘어 이륙, 드디어 여행이 시작 되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