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1. 06.[]

 

  오늘은 새로운 루트로 트레킹을 가는 날이다. 둔체에서 순다리잘까지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가 고사인쿤드 트렉(The Gosain Kund Trek)인데 우리 탐사대는 샤브루베시에서 툴로샤브루로 가서 고사인쿤드 트렉으로 접어들게 된다.

  여느 때처럼 아침 6시 기상, 630분 아침식사, 730분 트레킹 출발이다. 잘 훈련된 군인들처럼 우리 탐사대는 예정 시간에 정확히 출발하였다. 이른 아침이라 마을은 조용하였다. 우리 탐사대는 찻길을 따라 걸어가다가 찻길에서 벗어나 오른쪽의 작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 강을 따라 있는 마을을 조용히 지나쳤다. 보테코시 강(Nadi)에 걸린 다리를 건너 오래된 샤브루벤시 마을을 통과할 때 주민들이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막 잠에서 깬 꼬마아이가 우리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마을이 끝날 때쯤 이번에는 랑탕 콜라(Khola, 하천)에 걸린 출렁다리를 건넜다. 랑탕 콜라를 따라 계곡 상류쪽으로 이어진 이 길이 랑탕 트렉(The Langtang Trek)이다. 영국의 탐험가 틸만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 중의 하나라고 소개한 그 랑탕 계곡으로 이어진 길이다.

 

  마을에서 30분쯤 걸으면 랑탕으로 가는 길과 툴로샤브루로 가는 길이 갈린다. 우리 탐사대는 계곡을 따라가는 평탄한 길을 버리고 오른쪽의 가파른 길로 접어들었다. 툴로샤브루로 가는 길이다. 샤브루베시와 툴로샤브루는 고도차가 약 800m 가량 나므로 앞으로 계속 고도를 높여야 할 것이다. 갈림길에서 한 시간 쯤 올라가서 물레방아가 돌리는 마니차를 만날 수 있었다. 사람 손으로 돌리지 않고 물레방아가 돌리는 마니차 옆만 지나가도 내가 마니차를 돌린 것이나 마찬가지라 하니 얼마나 경제적이고 합리적인가. 우리 탐사대에게 축복을 주는 마니차는 물레방아의 힘만으로도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말이 능숙한 가이드 핀죠의 설명에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 입구 능선 가까이에 올라서니 멀리 흰 눈에 덮여있는 가네시 히말이 보였다. 언제 보아도 하얀 설산 히말라야는 아름다웠다. 히말라야를 보는 것만으로도 피로감이 싹 가시는 것 같았다. 샤브루베시 마을을 출발한지 4시간이 조금 못 된 1120분에 툴로샤브루의 숙소 라마호텔(Lama Hotel)에 도착하였다.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 속에 있는 모든 숙소들이 호텔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으니 롯지로 이해하면 되겠다. 툴로샤브루는 따망족의 마을로서 상당히 큰 마을이었다. 네팔어로 툴로(Thulo)()의 의미를 갖는다고 하던데 역시 툴로샤브루는 샤브루라 이름을 붙인 마을 중에서는 큰 마을이었다. 마을의 집들도 벽을 돌로 지었고 오래된 것처럼 보였으며 대개 집들도 크게 지었다. 우리말로 하면 부촌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우리가 묶은 롯지의 옥상에서는 가네시 히말의 장관이 아주 잘 보였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조를 키질하는 일을 감독하는 지용희 선생님_김영채 사진]

 

  마을 안에 있는 곰파(사원)를 구경하였다. 곰파 관리인의 딸인 9살짜리 소녀가 열쇠를 가져와서 내부를 볼 수 있었다. 티벳불교의 곰파인데 정면 중앙에 불상이 있고 그 옆에 보살상과 벽화가 있는 모습이 우리나라 사찰의 내부와 비슷하였는데 내부에 타르초(Tarchog, 경문 등이 쓰여 있는 깃발)가 많이 있는 모습이 우리나라 사찰과는 달랐다. 곰파를 구경 한 후에 툴로사브루 마을을 구경하였다.

  청주에서 오신 지용희 선생님과 마을을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집 앞에서 대나무로 발을 엮는 아저씨를 만났는데 나마스테!”하고 인사를 하니 이 분도 두 손을 모아 가슴에 붙이고 나마스테인사를 하고나서 영어로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다가 안내를 받아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산골 마을에 사는 중년 남자로서는 영어를 매우 잘하였다. 집에는 부인과 젊은 여자가 멍석 위에서 키질을 하며 깨알보다 작은 조를 바람에 걸러내고 있었다. 옆에는 작은 쟁반에다가 쌀튀김을 넣어두고 간식으로 먹고 있었는데, 우리에게도 먹으라고 권하였다. 쌀튀김을 직접 만들었느냐고 물으니 카트만두에서 가져왔다고 했다. 잠시 후에 아저씨가 홍차를 대접해주었다. 홍차를 다 마실 때까지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많이 물어 보았다. 내가 부인 앞에 있는 사람이 딸이냐고 물으니 큰며느리라고 한다. 큰아들은 고사인쿤드의 롯지에서 일하고 있고 둘째 아들은 카트만두에 있는데 총각이라고 하였다. 자신은 22녀가 있는데, 두 딸은 모두 결혼을 하여 한 명은 툴로샤브루에, 한 명은 샤브루베시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시골이지만 편안하고 행복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살고 있는 네팔인의 모습이었다.

 

 

 

출처 : 충북등산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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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1. 05.[]

 

  어제의 눈발은 온데간데없고 날씨는 청명하게 개었다. 아침 햇살을 받은 롯지 주변은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눈세계로 변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부지런한 대원들은 이른 아침에 나그탈리전망대에 가서 가네시 히말의 사진을 찍고 왔다고 했다. 그 열정과 부지런함이 부러웠다. 오늘은 뚜만(Thuman 2,338m) 마을에 있는 뚜만초등학교에서 교육봉사활동을 하는 날이다. 나그탈리에서 뚜만까지는 약 1천미터 정도의 고도 차이가 나는데, 내리막길이라 한 시간 반 만에 뚜만 초등학교에 도착하였다. 오전 950분이었다. 작은 학교 앞 마당에서도 북동쪽으로 랑탕 히말의 하얀 설산이 멀리 보였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어디에서든지 약간만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히말라야의 설산을 볼 수 있으니 좋았다.

  작은 뚜만초등학교에는 젊은 남선생님 한 분과 전체 재학생 40명보다도 훨씬 많은 어린이들이 모여 있었다. 한국에서 후원회사인 영원에서 준비해 준 선물가방을 들고 학교로 들어섰다. 낱개로 되어있는 선물가방 속에는 어린이용 후드 자켓, 잠옷, 속옷, 학용품, 시장바구니 등이 들어 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방문인 뚜만초등학교에 봉사를 가면 선물을 받으려고 동네에 있는 모든 청소년들이 다 모여든다고 하더니 정말 그랬다. 먼저 수업봉사활동을 하기 전에 그 곳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재학생과 일반 어린이와 청소년을 분리시켰다. 방학이라서 그런지 선생님은 한 분만 있었다. 학교 건물 앞마당에서 가이드 핀죠의 통역으로 간단한 기념식을 하였다. 탐사대를 대표한 인사말은 김영식 대장님이 사양하여 윤석주 자문위원님이 하였고, 축구공 전달은 최창원 자문위원님이 하였으며, 뚜만초등학교의 선생님이 답례인사를 끝으로 기념식을 마치고 바로 수업활동을 시작하였다.

 

  수업봉사활동은 미술 수업과 체육 수업 그리고 우리말 수업이었다. 먼저 첫 수업은 미술 수업으로 오인숙 선생님의 지도로 재학생을 원형으로 둥그렇게 앉히고 청소년대원을 중심으로 전 대원들이 학생 사오 명 사이에 앉아 그룹을 지었다. 준비해 간 물감과 종이를 이용하여, 흰 도화지에 물감을 짜서 접은 후 펼쳐 대칭적인 그 문양이나 얼룩을 보는 데칼코마니(decalcomanie) 수업이었다. 수업에 참여하는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깨너머로 구경하는 동네 청소년들도 매우 재미있어하고 신기해하였다.

  이어서 체육 수업은 두 사람이 조를 짜 발목을 묶은 다음 2인 삼각 달리기 중간에 두 사람 사이에 풍선을 넣어 터트리고, 쌀가루에 덮인 사탕을 손을 대지 않고 입으로 먹는 게임이었다. 탐사대원 모두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게임이었는데 코에 하얀 쌀가루를 묻히면서도 모두 즐거워하였다. 우리 탐사대가 카트만두에 도착하자마자 김종민 선생님의 지도로 청소년 대원들이 게임 준비나 풍선 준비 등을 잘해두어 보람있는 봉사활동이 되었다.

 

 

[오인숙 선생님이 지도하는 미술 데칼코마니 수업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청소년들_김영채 사진]

 

  마지막 수업은 연철흠 선생님이 지도한 우리말 수업이었다. 우리말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딱 두 마디만 가지고도 아주 집중도가 높은 재미있는 수업을 하였다. ‘나마스테안녕하세요그리고 돈네밧감사합니다가 같은 말임을 가르치는 수업이었는데, 연 선생님의 티칭 노하우가 뛰어나 학생들 모두 처음 듣는 생소한 우리말을 배우려고 눈을 말똥거리며 수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잘하면 사탕을 하나씩 주니 사탕을 받으려고 어린이들이 더 열중하는 것 같았다. 학생들과 수업을 하는 사이에 한 시간 반의 수업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행사를 마치기 전에 탐사대원과 뚜만초등학교 학생들, 동네 청소년, 구경나온 주민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행사를 마쳤다.

 

 

[뚜만초등학교에서 우리말 수업 중인 연철흠 선생님_김영채 사진]

 

  오전 1130, 학생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뚜만 마을로 내려갔다. 학교가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15분쯤 내려가서 마을 한가운데 있는 롯지(Budda Hotel)에 도착하였다. 마을에 있는 주택은 벽을 돌로 쌓아 만들었는데, 집은 이층구조로 되어 있고 아래층은 헛간으로 마굿간이나 창고로 쓰이며 사람이 거주하는 곳은 이층이라고 한다. 이 주택들은 오백년 이상 된 집들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마을 전체가 인류가 보존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인 셈이다. 롯지에 도착하여 배낭을 벗고 홍차 한 잔 마시니 벌써 점심 먹으라고 한다. 조리팀이 벌써 라면을 끓여 놓았다. 언제나 부지런하고 우리들 입맛에 맞는 식사를 미리 준비해 주는 쿡 리마가 고맙다. 탐사대장님의 주도면밀한 탐사대 관리에 고마워해야 하겠다.

 

  1230분에 뚜만 마을을 출발하였다. 마을을 벗어나니 계단식 논이 나타났다. 산사면의 경사가 급하다보니 계단식 다랑이 논을 만들 수밖에 없겠다. 다랑이 논의 폭이라야 아파트 베란다만 한데 이를 경작지로 만든 네팔사람들의 생존본능이 놀랍다. 뚜만에서 한 시간 반쯤 걸어 달페디(2,317m) 마을 입구에서 쉬었다.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집 마당에서 수확한 옥수수를 말리거나 키질을 하여 옥수수에서 쭉정이를 걸러내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사오십 년 전 가을걷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정겨웠다. 다른 집에서는 아주머니가 절구통에서 곡물을 찧고 있었는데 남자는 없고 여자들만 있었다. 절구통은 돌로 된 것이 아니라 통나무 절구통이었고 절구공이는 원형이 아니라 손잡이 빼고는 사각으로 되어 있었다. 절구통은 옆이 쩍쩍 갈라져있어 매우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온 물건 같았다.

 

 

[달페디 마을에서 절구질에 열중하는 따망족 여인과 촬영에 열중하는 심 피디님_김영채 사진]

 

  뚜만 마을을 출발한지 2시간 만에 보테코시 강가에 있는 도로까지 내려왔다. 보테코시 강(Nadi)은 북쪽 티베트 히말라야에서 흘러온 강물인데 둔체를 지나면서 트리슐리 강으로 이름이 변하여 남쪽으로 흘러 인도로 흘러가는 강이다. 강가에 있는 포장도로를 따라 한 시간만 내려가면 샤브루베시 마을이다. 샤브루베시 마을 입구 검문소를 지나 숙소인 호텔(트레커 인)에 도착하였다. 오후 330분이라 아직 오후 햇살이 조금 남아 있다. 샤브루베시는 지도와 마을 안내판에는 Shyaphru Besi로 표기되었으나 여행안내서나 호텔 간판에는 샤브루벤시(Syabru Bensi)로 쓰여 있는데, 브이자(V) 계곡 속에 자리한 마을이라서 아침이 늦고 저녁이 일찍 온다고 여행안내서 나와 있다. 4층 건물인 우리 숙소는 이 마을에서는 가장 큰 건물이다. 오늘 트레킹은 8시간이 걸렸다.

 

  전기가 귀한 산 속 롯지에서만 지내다가 전등이 환하고 세면장에 물이 풍족한 여기만 와도 큰 도시에 온 것처럼 포근한 기분이 들었다. 모처럼 비누로 세수하고 발을 씻었고 양말도 빨아보았다. 온수가 많이 나오지 않아 머리는 감지 않았다. 그래도 참 개운하였다. 저녁식사시간까지 숙소에서 룸메이트 연 선생님과 편안하게 쉬었다. 식당에서 심 피디님으로부터 이곳 샤브루베시에서도 국제전화와 문자통신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에서 보내는 문자 한 통은 150원이고 받는 문자는 모두 무료라고 한다. 한가한 시간을 내어 휴대폰으로 집사람과 아이들, 가까운 분들에게 문자로 네팔 소식을 전했다. 전화통화는 1분에 1,500원이 넘어 굳이 전화를 할 필요는 없었다. 문자를 보냈더니 반가운 소식들이 날아왔다. 좋은 세상이란 것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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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1. 04.[수]

 

  밤에 두 번을 깨어 소변을 보았다. 5시 30분에 눈을 떠 모닝콜을 기다렸다. 6시에 따뜻한 홍차를 마시니 몸이 데워지는 것 같다. 우리 탐사대의 쿡 리마는 한국 요리를 매우 잘하였다. 오늘 아침 메뉴는 미역국이다. 국물맛이 집에서 먹는 미역국과 다를 바가 없다. 입맛이 당겨 한 그릇을 더 먹었다. 고산병을 예방하려면 무엇보다도 잘 먹고 오줌 잘 누고 잘 자야 한다. 약간의 목감기 기운만 빼면 아직까지는 컨디션이 매우 좋다. 목감기는 카트만두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생긴 것 같다. 객실 공기가 차가워 침낭 안에서 잘까 하다가 그냥 잤는데 자고 나니 몸이 개운하지가 않았었다. 방콕에서 카트만두로 몸이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하겠다.

 

 

[브림당 마을 입구에서 만난 귀여운 마을 어린이들_김영채 사진]

 

  한 시간 반쯤 산행을 하여 브림당 마을(2,848m)에 도착하였다. 브림당 마을 입구의 청보리밭 한가운데에 커다란 바위가 하나 놓여있는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년 소녀들 넷이서 바위 위에서 놀다 우리 탐사대를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그 중 제일 나이 어린 소년은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 그 모습들이 추워 보이면서도 너무나 귀여웠다. 거무스름하게 때가 낀 모습이지만 슬리퍼 속에 담긴 가지런한 발가락까지도 예쁘게 보였다. 장엄한 가네시 히말을 배경으로 햇볕을 쬐고 있는 네 명의 어린이들의 모습이 대자연과 너무나 잘 어울렸고 얼마나 평화롭게 보이던지 그 모습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곰파가 있고 곰파 주변에는 높은 장대에 매달린 타르초와 룽다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타르초는 티베트 계열의 주민이 주택이나 사원에서 경문 등을 써서 긴 장대에 매달아 놓은 깃발이고, 룽다는 만국기처럼 오색의 작은 깃발로 둘 다 경전을 적어 바람에 날리게 하여 바람을 타고 불경이 멀리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이 곳 곰파 안에는 사람 키보다 큰 대형 마니차가 있어 대원들이 차례로 마니차를 돌리면서 소원을 빌었다. 나 또한 마니차를 돌리면서 올 해 둘째딸 지혜의 임용고사 합격과 고3학년이 되는 막내 지송이의 대학 합격을 빌었다. 모든 사람들이 마니차를 돌려서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곰파 옆에 가네시 히말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어 사진찍기에 좋았다. 청명한 아침 햇살로 흰 눈에 덮인 가네시 히말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어제 골중고개에서 보았던 히말라야의 모습보다도 더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보여 지척에 있는 듯 금방이라도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곰파 건너편 산 능선에는 야생 원숭이들이 살고 있었다.

  따또파니를 출발한 지 4시간만에 나그탈리(Nagthali 3,165m)에 도착하였다. 나그탈리는 따망 헤리티지 트렉 중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그러므로 전망 또한 가장 좋아 나그탈리 전망대라고도 하는데, 여기에서는 왼쪽의 가네시히말에서부터 오른쪽의 랑탕리룽(7,227m)까지 모두 볼 수 있는 곳이다. 날씨가 쾌청하여 점심식사 후에 사진을 찍을까 생각하고 수제비로 점심식사부터 하였다. 그러나 내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나그탈리 롯지에 도착할 무렵부터 간간히 내리던 눈발이 점심을 먹고 나니 하늘이 컴컴해지더니 오후 내내 폭설로 변하고 말았다. 오후 4시에 눈이 잠깐 그친 틈을 내어 나그탈리 전망대로 가보았으나 히말라야는 구름과 안개로 뒤덮여 있어 보이지 않고 언덕 아래에 있는 우리의 롯지만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해발고도가 3천미터가 넘는 나그탈리에서 본격적인 고산병 환자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탐사대원 중에는 처음으로 3천미터를 경험한 젊은 대원들과 청소년대원 몇이 고산증이 심하여 저녁식사를 못하는 대원이 나왔다. 고산병을 예방하고 체력유지를 위해서는 무엇이던지 잘먹어야한다. 고산병 증세는 자신이 스스로 극복을 해야하는데 먹지 못하면 신체가 극복해 낼 수가 없는 것이다. 고산병은 자신의 의지로 조절되지 않는 신체현상이다. 고산병을 떨쳐내는 방법은 스스로 하산을 하여 고도를 낮추던지 약과 음식을 먹고 물을 많이 먹어 이겨내던지 방법은 딱 두 가지 뿐이다.

   오늘밤 해가 지면 어둠이 서서히 사방을 점령하듯이 나에게도 그 분(고산병)이 조용히 오셨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쉬고 있는데 심하지는 않으나 기분 나쁜 두통이 오기 시작하였다. 딱히 머리가 아프다는 느낌은 없으나 몇 분 간격으로 지끈거리다가 괜찮아지기를 반복하였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서서히 머리가 지끈거리는가 싶더니 화장실에 있는데 뒷머리가 땡기고 두통이 더 심해졌다.

  나는 3천미터의 고도에서 두통이 있는 적이 한 번 도 없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이었다. 기분 나쁜 두통이었다. 아마 목감기 기운이 있어 쉽게 고산병 증세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짐작을 하고 내 카고백에 있는 약상자에서 다이아목스(diamox, 약품명: 아세타졸 아마이드 acetazol amide)를 한 알 꺼내 먹었다. 그리고 잠자기 전까지 의식적으로 더 자주 따뜻한 물을 마셨다. 이럴 때에는 내가 이런 적이 없는데 이런 적이 없는데 하며 망설일 것이 아니라 신속하게 약을 먹고 신체가 적응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고산병 증세는 낮은 기압과 희박한 산소가 있는 곳에서는 누구나 올 수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고산에서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 것이 고산병을 예방하는 첫 번째 과제이다.

 

  대원 모두 식당에 모여 「설악가」 같은 산노래와 네팔 민요인 「레삼피리리」도 부르고 대원들이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면서 스텝들이 식당으로 잠자러 올 때까지 저녁시간을 보내다가 9시에 모두 숙소로 돌아갔다. 나는 노래부르고 노는 사이에 두통은 깜쪽같이 사라지고 컨디션은 다시 좋아졌다. 낮에 눈이 내리던 하늘이 맑게 개어있어 달이 보름달처럼 밝다. 달이 밝아 별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데도 남쪽 밤하늘에 오리온 별자리가 선명하게 보였다. 오리온자리는 북반구에서 겨울철 별자리의 대표 별자리가 아닌가! 이렇게 크고 가까이 보이는 오리온자리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달이 밝아 많은 별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숙소마당에서 청소년 대원들에게 오리온별자리에 대하여 설명해 주고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오늘이 만일 그믐이라면 얼마나 많은 별을 볼 수 있을까? 내일 모레 쯤이 보름이기에 이번 트레킹 기간중에는 별(☆) 볼일은 없을 것 같다.

  오늘은 4인실이 배정되어 광주에서 오신 원로 산악인인 장길문 선배님과 설상욱 대산련 청소년위원, 연철흠 선생님과 내가 한 방을 쓰게 되었다. 롯지의 나무벽은 구멍이 숭숭 뚫려 허술하고 고도가 높아 밤에 매우 추웠다. 날씨가 춥고 옆사람에게 피해를 주지않기 위해 다들 조용히 물티슈로 손발을 닦고는 바로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따또파니가 담긴 물통이 있어 침낭 안은 따뜻했으나, 오늘밤에 처음으로 핫팩을 준비해왔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년에는 핫팩도 꼭 준비해야겠다.

 

 

 

 

출처 : 충북등산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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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1. 03.[]

 

  아침 6, 모닝콜이 배달되었다. 키친보이가 방문을 두드리며 따뜻한 홍차를 한 잔씩 주면서 아침을 깨웠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뜨거운 홍차를 한 잔 마시면 속이 훈훈해지면서 추위를 잊게 된다. 부지런한 연선생님은 벌써 침낭까지 정리를 하였다. 630분 아침식사, 730분이 출발시간이다. 오늘부터는 물로 하는 세수는 없고 물티슈 세수만 있다. 1층 식당으로 내려와 먼저 온 대원들에게 나마스테!하고 인사를 하였다. 네팔에서는 빨리 나마스테라는 말과 친숙해져야 한다. 나마스테는 당신 안에 있는 신께 경배합니다라는 뜻이며 네팔사람들이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하는 인사말이다. 아침식사 메뉴가 떡국이다. 히말라야 오지에 와서 떡국을 먹을 수 있다니 행복한 아침이다. 히말라야 트레킹이 시작되는 날이니 긴장도 되고 기대도 되었다.

 

 

[계곡아래 탐부체트 마을을 감싸고 있는, 아침 햇살로 눈부신 가네시 히말의 모습_골중고개에서 김영채 사진]

 

  정확히 730분에 버스가 출발하였다. 고개를 넘어 자동차도로가 끝나는 탐부체트까지는 버스로 가야했다. 굽이지고 급경사진 도로를 한 시간쯤 올라가서 골중(Goljung 1,946m) 고개에서 쉬었다. 날씨가 쾌청하여 서쪽에 있는 가네시 히말이 선명하게 보였다. 청명한 하늘 아래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하얀 설산 가네시 히말의 모습은 너무나 눈부시고 깨끗한 느낌이었다. 처음 보는 히말라야의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눈부신 설산의 모습을 대하니 내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청주에서 오신 최창원 선배님이 주위에서 왜 자꾸 히말라야를 가느냐는 질문에 네팔 사람들의 맑은 영혼을 담고 싶어서 간다라고 했다는 데…… 나도 그래야 할 것 같다.

 

 

 

[칠메하천(Chillme Khola)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를 건너는 탐사대_김영식 사진]

 

  0850, 탐부체트(Thambuchet 1,738m)에 도착하였다. 탐부체트는 가트랑에서 뚜만을 거쳐 보테코시 강(Bhote Koshi Nadi)을 따라 티벳 국경까지 이어지는 따망 헤리티지 트렉(The Tamang Heritage Trek)의 중간지점으로 상당히 큰 마을이었다. 보테코시 강은 둔체 근처에서부터는 트리슐리 강으로 이름이 바뀐다. 여기서부터는 본격적인 트레킹의 시작이다. 먼저 대원 모두가 둥그렇게 모여 최창원 자문위원님의 구령에 따라 체조를 한 다음, 스틱을 가운데로 모아 파이팅을 외치고 출발을 하였다. 선두는 가이드인 핀죠가 섰고 그 뒤를 청소년 대원들과 성인대원들 순으로 따랐으며 맨 후미에는 클라이밍 셀파인 리마와 박종익 부대장이 섰다. 마을 주민들이 담 너머로 쳐다보는 탐부체트 마을을 지나 칠메하천(Chillme Khola)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를 건넜다. 청보리밭 가운데 있는 초르텐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 산길로 접어들었다. 초르텐은 티베트 불교의 불탑을 말하며, 초르텐에는 불경을 새긴 마니석이 빙 둘러있었다. 이런 불탑이나 마니석의 옆을 지날 때는 그 왼쪽길을 걷도록 해 자신의 오른쪽 어깨가 불탑이나 마니석을 향하는 것이 존경의 표시라고 한다. 그럴려면 불탑을 참배할 때는 반드시 시계방향으로 돌아야 하는 것이다.

청보리밭을 지나고 산길을 두 시간 이상 걸어 올라가서 공강마을에 있는 작은 공강초등학교에서 휴식을 하였다. 박종웅 자문위원님이 한국에서 가져온 플라스틱 간이 피리를 네팔 어린이들에게 나누어 주니, 너댓 명이 삐익~ 삐익~’소리가 나는 피리를 불며 박 자문위원님을 졸졸 따라 다녔다. 어린이들이 불어대는 피리소리를 뒤로하고 산길을 올라 따또파니 마을이 멀리 보이는 양지바른 언덕 위에서 주먹밥으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오후 2시 경에 따또파니(Tatopani, 2,607m)에 도착하였다. 온천이 있는 마을이라서 따또(뜨거운)와 파니()이 결합한 말이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탐사 기간 내내 따또파니라는 말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단어가 되었다. 모든 롯지에는 난방시설이 없으므로 밤에 잘 때도 끓인 물인 따또파니를 각자의 수통에 한 통씩 담아서 침낭에 넣고 자면 밤새 침낭 안이 따뜻해서 좋았다.

 

 

[따또파니의 노천 온천에서 피로를 풀고 있는 탐사대원_김영식 사진]

 

  롯지의 방에 배낭을 풀고 노천 온천에서 온천욕을 하였다. 오늘 따또파니의 온천욕은 단순한 온천욕이 아니다. 반바지만 입으면 남탕·여탕의 구분이 없고, 백두산 정상 높이의 히말라야 오지에서 온천욕을 하는 호사를 누렸으니 그냥 온천욕이라고 간단히 말해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 호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의 온도는 한국 목욕탕의 42~43쯤 되는 고온탕 정도의 온도로 느껴졌고, 철분이 많아서인지 탕 안의 물은 황토색을 띠고 있었으며, 온천수가 흐르는 계곡의 암반은 붉은 황토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바람은 약간 차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온천욕을 하고 나니 피로가 확 풀린 느낌이다. 기분이 상쾌하였다.

저녁식사 전 식당에 모두 모여 윤석주 자문위원님의 제안으로 네팔 민요인 레삼피리리를 배우고 설악가를 부르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처음 불러보는 레삼피리리는 리듬이 쉬워 배우기가 어렵지 않았다. 탐사대 수첩에 있는 레삼피리리의 가사를 보며 경쾌한 리듬의 노래를 부르니 긴장도 풀리고 기분도 좋아졌다. 젊은 2명의 성인남자대원들이 가벼운 고소 증세로 힘들어 하고 있었으나 어린 청소년들은 비교적 적응을 잘하고 있어 대견스러웠다.

저녁식사 때는 히말라야에서 자란 염소를 한 마리 잡았다. 최창원 자문위원님을 중심으로 건강한 대원들은 술잔을 부딪히며, 고소 증세로 고생하는 대원들이 염소고기를 먹고 힘을 내, 고소증세를 빨리 떨쳐내기를 기원하며 건배를 하였다. 건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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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1. 02.[월]

 

나마스테~ 흰 눈 덮힌 장엄한 히말라야에로의 새로운 시작, 그 출발일이다. 카트만두에서의 첫 아침을 6시 모닝콜이 울리기 전에 미리 일어나 준비를 하였다. 내가 일어났을 때 부지런한 연 선생님은 이미 샤워까지 마쳤다. 모든 대원이 시간을 잘 지켜 우리 탐사대 29명과 현지인 가이드, 쿡, 포터 등 스텝을 태운 2대의 버스가 7시 40분에 호텔을 출발하였다. 보행자와 오토바이와 미니버스들로 복잡한 거리를 지나 쓰레기가 넘쳐나는 카트만두의 아침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는데, 사오십 미터는 될 것 같은 긴 차량과 오토바이 행렬이 길가에 멈춰서 있는 광경이 보였다. 주유소에서 차와 오토바이에 기름을 넣으려는 긴 줄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시내에 드문드문 있는 주유소 주변은 모두 긴 줄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내수용 기름이 부족하고 주유소가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란다.

 

 

[탄코트 고개에서 스낵을 팔러 온 네팔 소녀_김영채 사진]

 

 

  카트만두를 동서로 가르고 탄코트(Thankot)고개를 넘어 인도까지 이어지는 최초의 자동차도로를 트리부반하이웨이라고 하는데, 하이웨이라고 해봐야 포장한 지 오래되어 군데군데가 움푹움푹 패인 왕복 2차선 도로일 뿐이다. 트리부반하이웨이를 따라 시내를 한 시간 가량 달려 산 능선의 고갯마루에 있는 검문소에 도착하였다. 이곳 탄코트(Thankot)고개가 수도인 카트만두와 지방의 경계라고 한다. 마치 화산 분화구의 외륜산처럼 카트만두가 이런 다섯 개의 야트막한 산으로 삥 둘러싸이고 그 가운데 도시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분지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버스가 멈춰선 사이에 스낵을 파는 어린 소녀가 탔다. 감자칩 한 개가 50루피(700원), 네팔에 와본 경험이 많은 대원 중 누군가가 몇 개를 사서 네팔의 스낵을 맛 볼 수 있었다. 차창 밖에는 오륙 명의 소년, 소녀들이 눈망울을 굴리면서 스낵을 높이 들고 서로 자기 것을 사달라는 간절한 외침이 들리는 것 같았다.

  고개를 넘자마자 계곡 아래로 구불구불한 비탈길이 까마득하게 이어지고 있어 카트만두 분지가 상당히 높은 곳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고개 너머로는 험한 비탈길이지만 인도와 포카라로 가는 고속도로이므로 인도에서 오는 많은 화물차와 교행을 하였다. 고속도로라고는 하지만 급커브의 좁은 2차선 도로라서 마주 오는 차량들이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갔다. 인도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니 포카라 방향으로 가는 길에는 왕래하는 차가 현저히 줄었다. 호텔을 떠난 지 2시간이 조금 넘어서 트리슐리 강(Trisuli Nadi)을 만났고, 여기서 다시 포카라와 트리슐리로 길이 갈렸다. 남쪽으로 흘러 인도를 지난다는 트리슐리 강은 강폭이 상당히 넓었다. 우리는 강을 왼쪽에 끼고 강의 상류를 향해 달렸다. 간간히 강 건너편의 외딴섬처럼 보이는 마을로 이어지는 출렁다리가 보였다.

 

 

[트리슐리의 과일가게에서 열심히 촬영 중인 김영식 대장님_김영채 사진]

 

  카트만두의 호텔에서 트리슐리까지 약 100km가 좀 넘는다고 하는데 여기까지 오는데 세 시간이 걸렸다. 소변도 마렵고 다리도 쉴 겸 트리슐리의 과일가게 앞에서 잠시 쉬었다. 우리 대원 누군가 과일을 샀다. 큰 참외크기의 「밥부」라는 과일인데 두꺼운 껍질 속에 빨간 색의 과육이 오렌지처럼 부드러우며 달고 신맛이 강한 과일이었다. 과일가게 근처의 트리슐리 시내 한가운데에 삼거리 갈림길이 있고, 그 삼거리에 힌두교의 링가를 모신 작은 힌두교 사당이 있는 그 옆에 거리 원점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트리슐리에서 둔체까지의 거리가 48km라고 적혀 있는데, 아쉽게도 카트만두까지의 거리 표시는 없었다. 트리슐리에서 한 시간 쯤 더 가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고도가 점점 높아지니 기온이 낮아지고 차창 밖에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산비탈 길을 구불구불 올라가다 정상 근처의 깔리카스탄(Kalikasthan)이라는 작은 마을의 식당에서 김밥과 오렌지, 바나나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마을은 설악산 정상 높이에 근접한 해발고도가 1,717m라고 하는데 비가 내리니 더 춥게 느껴졌다.

 

 

[트리슐리 갈림길 삼거리에 있는 둔체와의 거리 표지석_이상호 사진]

 

  둔체(Dhunche 1,960m)에 도착하기 전에 랑탕국립공원의 첵크 포스트에서 트레킹에 필요한 퍼밋을 받느라 30분 정도 지체하였다. 둔체는 트리슐리보다도 훨씬 큰 마을이며 교통의 중심지로서 둔체에서 샤브루베시와 신곰파로 가는 길이 나뉘어진다. 둔체를 지나고 큰 고개를 넘어 현기증이 날 정도의 아슬아슬한 길을 내려가면 계곡 아래에 있는 따망족의 마을 샤브루베시(Syaphru Besi 1,460m)가 나온다. 오후 4시 50분에 샤브루베시의 롯지(호텔 트레커스)에 도착하였으니, 아침 일찍 호텔을 떠났는데도 9시간이나 걸렸다. 여행 안내서에는 하루에 3편이 있는 로컬버스가 약 8시간 걸린다고 하는데~~

  약 200km 가 채되지 않은 거리를 9시간이 걸린 이유가 있다. 왕복 2차선 도로에서 길 가운데 고장난 트럭이 있으면 그 트럭의 수리가 끝날 때까지 우리가 탄 버스도 멈춰서야 했다. 이런 일이 두 세 차례나 있었다. 또한 가파른 비포장 언덕길을 오르는 트럭이 조금 내린 비로 길이 미끄러워 오르지 못하면 그 트럭이 언덕을 올라 챌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트럭이 언덕 아래쪽으로 멀리 후진 한 다음 기속력을 얻어서 빠르게 달려와 고갯길을 넘어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대여섯 번을 시도 했으나 그래도 안되니 그제서야 우리 차에 길을 양보해 주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 차의 현지인 기사는 불평 한 마디 없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네팔다운 기다림의 미학이었다. 이렇게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서 네팔 사람들의 눈망울은 선하게 보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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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1. 01.[일] 


  새해 아침을 외국 호텔에서 맞는 긴장감으로 모닝콜이 울리기 전에 일어났다. 심 피디님과 준비된 빵과 오렌지, 바나나, 오렌지쥬스로 아침을 먹으면서 텔레비젼을 켜니 미국 CNN방송이 나왔다. CNN의 「토크 아시아(TALK ASIA)」 프로그램에 한국의 글로벌 패션기업인인 MCM의 김성주 대표가 나와서 여성 사회자와 대담을 하고 있었다. 한국의 여성 사업가(Korean Businesswoman)로 소개된 김 대표는 유창한 영어와 세련된 모습으로 대담에 응하고 있었다. 지난 가을인가 KBS방송의 글로벌 성공시대 프로에서 보았던 분이라 채널을 바꾸지 않고 관심 깊게 보았다. 영어방송의 내용을 다 알아듣는 것은 아니지만 채널을 다른 데로 돌려봐야 어차피 태국말은 더 못 알아들을 테니까 …. 티비(TV)를 보면서 미래의 한국의 여성상을 앞당겨 보는 듯 하여 자랑스러웠다. 우리의 제자들도 저렇게 성장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담 프로가 끝나고 잠시 후 오전 07시(서울 시간은 2시간이 늦은 09시), 뉴스시간에 세계 각국의 새해 표정이 화면에 떴다. 런던은 자정이라서 새해맞이 불꽃놀이가 화려했고, 뉴욕은 12월 31일 19시에 맨해튼 거리의 송년(New Year's Eve) 모습이 비쳐졌다. 우리는 티비 속의 송년과 새해맞이 모습을 보면서 방콕 공항으로 가기위해 배낭을 쌌다. 심 피디님은 방을 나서기 전에 자신의 배낭보다도 방송용 캠코더를 먼저 챙겼다. 무거워 보이는 커다란 캠코더를 둘러메고 나가는 프로작가의 모습에서 좋은 방송영상물이 나오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아침 7시 30분에 호텔 미니버스를 이용하여 공항으로 출발하였다.


  새해의 이른 아침, 방콕공항은 매우 한산하였다. 단체 입국은 우리 탐사대뿐이다. 간단한 입국심사 후 대원 모두 네팔 가는 비행기의 탑승구 게이트 앞에 모였다. 서둘러 온 탓에 탑승시간 09시 50분까지 2시간이나 여유시간이 생겼다. 나 혼자 한산한 상가 구경에 나섰다. 면세점 상가들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가 많았으나 음식점과 커피숍만은 문이 열려있었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커피 생각이 나서 한 카페(Cafe NERO)에 들어갔다. 역시 여기도 손님은 한 사람도 없어 내가 새해 들어 마수걸이 손님인 셈이다. 커피를 주문하였다. 카푸치노 한 잔이 110바트(Baht), 1달러에 30.46바트이므로 약 4달러(약 4,600원) 정도 하는 셈이다. 태국 국민소득을 생각하면 방콕 공항의 커피값은 매우 비싼 편이었다.

  타이항공 비행기가 방콕공항을 출발한 시간은 10시 50분, 카트만두 도착시간은 현지시간으로 12시 45분이다. 방콕에서 카트만두까지 3시간 10분 걸렸다. 네팔은 우리보다 약 3시간 15분이 늦으므로 서울은 지금 오후 4시이다. 어젯밤 9시25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방콕을 경유하여 오다보니 네팔까지 오는데 비행시간 만 약 9시간에다, 방콕에서의 환승시간을 10시간으로 계산하면 약 19시간이 지났나 보다. 이동하는데 긴 시간을 보냈으나 나는 이 시간이 결코 낭비의 시간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보고 듣고 체험 해보는 과정 모두를 경험으라고 볼 수 있으므로 이 모든 과정도 여행의 새로운 경험인 셈이다. 우리 오지학교탐사대의 대원들도 이를 즐기면서 경험하면 이 모든 일들이 여행의 노하우를 쌓는 방법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네팔 카트만두 트리부번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주차장에서 버스 승차 준비_김영채 사진]


  처음 와보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해발고도 1,300m)의 날씨가 청명하면 좋았으련만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오후 1시경인데도 늦은 오후 같은 회색빛의 어두운 날씨였다.  카트만두의 트리부반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트리부반은 네팔의 사허 왕조 8대 국왕의 이름으로 트리부반의 이름을 붙인 도로도 있어 카트만두를 가로지르는 큰 길의 이름도 트리부반 대로이다. 트리부반국제공항은 한 나라 수도의 관문이지만 소박하고 작은 공항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대합실로 들어서는 복도 입구에는 『당신이 네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s You to Nepal)』라고 네팔 도착을 환영하는 글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김영식 대장님이 당부한 대로 우리 탐사대는 신속하게 움직여 도착비자 받는 줄에 섰다. 우리 팀 외에도 일반 승객까지 합하여 순식간에 도착비자를 받기위한 긴 두 줄이 만들어졌다. 비자신청 서류에 사진을 직접 붙이지 않고 사진을 스캔하여 넣었는데 그냥 통과되었다. 비자 발급 비용은 15일 기준으로 25달러(USD)이다. 네팔의 국가 수입원 중의 중요한 산업이 관광산업이므로 외국인으로부터 이 정도는 받아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한 지 1시간 30분만에 비자 발급을 받고 짐까지 찾아 나왔다. 우리 탐사대의 현지 여행사인 코리안 트렉의 장정모대표가 나와 있었다. 우리를 환영하는 현지인 스텝들로부터 진한 노란색에 자주색이 섞인 환영꽃을 목에 걸고 버스를 탔다. 카트만두의 트리부반국제공항에서 시내 중심지 로얄싱기호텔(Royal Shingi Hotel)까지는 30분 거리였다. 오후 2시 50분경에 호텔에 도착하여 객실 배정을 받았다. 청주에서 오신 연철흠 선생님과 한 룸을 쓰게 되었다. 낯선 사람과의 새로운 인연, 울트라마라톤의 달인 연철흠 선생님과의 새로운 인간관계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각자 방으로 흩어져 카트만두에 두고 갈 짐과 트레킹에 필요한 짐으로 짐을 분리한 후 저녁식사를 하기 위하여 18시에 로비에 모였다. 한식당 <빌라 에베레스트>까지는 걸어서 15분 거리인데 벌써 밤거리는 컴컴하였다. 울퉁불퉁한 보도블럭과 가로등이 없는 낯설고 어두운 카트만두의 밤은 낮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 같았다. 많은 보행자와 잡상인,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경적 소리, 지독한 먼지와 매연이 카트만두에서 느낀 첫 인상이었다. 새해 첫날이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마치 퇴근시간의 러시아워처럼 붐볐다. 먼지와 매연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는데 다행히 출국하기 전에 한국에서 썼던 마스크가 호주머니에 있어 코와 입을 가렸다. 길거리 전광판에는 현재 기온이 10℃를 나타내고 있어 겨울이지만 그리 춥지 않은 날씨였으나, 호텔은 객실의 난방이 되지 않아 약간 추운 느낌이 들었다. 밤새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되겠다. 


[트레킹 기간 내내 한 룸을 쓰게 된 울트라맨 연철흠 선생님과 함께 로얄싱기호텔 로비에서/ 탐사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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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2. 31.[]

 

  청소년과 선생님들의 아름다운 도전이 주제인 제8차 히말라야오지학교탐사대 탐사수첩의 첫 장을 넘기면 고은 시인의 시 아직 가지 않은 길이 있다. 시인의 말처럼 정말 그동안 걸어 온 길보다 더 멀리 가야 할 길이 있는 것처럼 이번 겨울방학 때 아직 가지 않은 길을 위하여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네팔 히말라야를 가게 된 것이다. 탐사대 윤석주 자문위원님이 직접 제작한 탐사수첩은 휴대하고 수시로 메모하기 좋게 잘 만들어져 있다. 또한 대원명단 외에 네팔 민요인 레쌈 피리리의 우리말 가사가 있고, 히말라야 8천 미터 14좌를 쉽게 외울 수 있는 독특한 노하우가 들어있다. 수첩에는 14개 봉우리를 이렇게 쉽게 외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어떡하나, 로마에 처음 왔는데~ 다마낭에 안 가보셨죠? 가시죠.(에투칸, 로마쵸~ 다마낭 안가12)이렇게 쉽게 히말라야 14좌를 외우는 방법을 듣고 나는 무릎을 쳤다. 수첩을 직접 만드신 윤 자문위원님의 깊은 생각이 오롯이 담겨있는 것 같다. 수첩을 만지작거리다가 시를 읽었다.

 

  낮 12, 인천공항에서 만나야 할 시간 오후 6시를 지키려면 순천에서 인천공항 가는 버스가 하루에 3편밖에 없는 탓에 이 시간에 출발하는 버스 밖에 없다. 연말연시를 해외에서 보내려는 사람들이 많아 2011년의 마지막 날의 인천공항은 매우 붐볐다. 탐사대 홈페이지에서 정리한 탐사대 계획서와 예약자 명단을 따로 인쇄해와 일행을 기다리며 계획서와 우리 탐사대원의 이름을 한 사람씩 읽었다. 여러 차례 읽은 계획서라 탐사일정은 훤히 다 그려지지만 대원의 이름은 낯선 이름이 많아 읽고 또 읽어도 누가 누군지 헷갈린다. 만나면 금방 익숙하게 느껴지겠지만 아무래도 궁금하고 기대된다.

  약속시간이 되니 모든 대원이 다 모였다. 중학교 일학년부터 고등학교 삼학년까지 청소년 대원이 8명이고 성인 대원이 21명으로 전체 인원은 29, 많은 인원이다. 김영식 탐사대장님이 보딩패스를 일괄해서 받아온 다음에 모두 모여 개인 카고백과 공동 카고백을 수하물로 부치는 일을 먼저 하였다. 공동 짐의 양이 많은 점을 고려하여 개인 짐의 무게를 18kg이하로 최소화 해달라는 김 탐사대장님의 당부를 모든 대원들이 잘 지킨 덕분에 수하물 짐에 대한 오버차지는 다행히 없었다. 탐사대의 출발이 순조롭다. 이제 히말라야를 향하여 출발이다.

  19시경에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하니 42번 탑승구로 가는 길목의 신라면세점 화장품, 향수 매장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풍긴다. 향기로운 냄새에 취해 오지탐사가 아니라 편안하게 휴양하러 외국여행 가는 느낌이다. 히말라야 롯지가 아닌 열대 바다의 리조트로 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방콕행 탑승구에서 노랑색 배낭을 줄지어 세워놓으니 그 모습이 이색적이다. 2125분에 출발하는 타이항공에 탑승하면서 조선일보 한 부와 태국신문에 실린 사진이나 보려고 영자신문인 <더 내이션 온 선데이>를 한 부씩 들었다. 두 종류의 201211일 자 신문이면 5시간 반의 비행시간을 잠들지 않을 수 있겠다. 2012년 임진년은 용의 해라 우리 신문에는 용에 관한 기사가 많아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가 이신조의 용을 말하다와 김미리 기자의 우리 속담 속의 용을 꼼꼼히 읽었다. 조선일보의 기사 내용을 귀국하여 스크랩을 하려고 수첩에 메모를 많이 해 두었다. 태국신문 <더 내이션>에는 70회 생일을 맞은 국왕의 태국국민에게 행복과 성공을 기원하는 신년인사말이 있었다.(King wishs happiness and success to all Thais)

 

 

 

[인천공항에서 태국 방콕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탐사대원과 배낭들_김영식 사진]

 

  태국 시간으로 11050분에 방콕 공항에 도착하였다. 카트만두로 출발하는 항공편이 10시간 후인 오전 1050분에 있으므로 예약된 공항 근처의 호텔(컨비니언 리조트)로 갔다. 공항에서 가깝고 깨끗한 호텔이다. 공항에서 차로 10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지금은 현지시간으로 새벽 두 시가 다 되었다. 새해들어 첫 밤을 태국 방콕에서 보내게 되었다. 처음 뵙는 K방송국 심웅섭 피디님과 한 방을 쓰게 되었다. 새해 첫 날의 덕담으로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침대에서 잠들 수 있어 심야의 긴 여행의 피로를 풀 수가 있어서 좋았다. 지난 일 년에 대한 상념과 새해에 대한 기대감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아듀 2011~.

 

 

 

출처 : 충북등산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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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집으로 출발하는 날 여유 있게 일어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짐을 정리했다. 9시 넘어 숙소 앞 슈퍼에서 부족했던 치약을 더 구입하여 짐을 챙기니 카고의 무게가 처음보다 더 무거워졌다. 10시 30분 드디어 공항 들어가기 전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이동 이른 점심을 먹고 비행기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두르는데, 다행이 차가 밀리지 않아 제 시간에 도착하고 출국을 위한 수속을 밟았다. 다행이 입국할 때 보다는 쉽게 통과되었지만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3번을 온 몸을 더듬는 검사가 진행되었다. 예정보다 30분이 더 지나 태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제공되는 기내식을 먹고 속이 부딪혀 고생하고 19:00 방콕 돈무앙 공항에 도착 출발까지 3시간여를 공항에서 보내기 위해 여기 저기 구경하다 박종웅 선생님, 연철흠 선생님과 일본식 음식점에 들어가 맥주를 안주 삼아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나와 공항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다 10시 50분 탑승시작 또 제공된 기내식을 먹고 또 거북해 하고 움직임도 불편한 공간에서 다들 고생했다. 드디어 16일 6시 40분 인천 공항에 도착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소식이 없다. 1시간여를 기다려 7시 40분 짐을 챙긴 후 오지학교 탐사대를 지원했던 영원무역에서 담당자 분이 나와 환영해 주었다. 잠시의 기념사진 촬영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 성남의 영원무역 본사에 들러 회사에 대한 소개와 질의 응답시간을 마친 후 점심식사까지 마치고 드디어 청주로 출발 13시 30분 체육관 앞에 도착 17일간의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5년 전 고소증세로 토롱라를 포기했던 기억으로 걱정이 앞섰던 이번 여행은 비스타리비스타리(천천히)라는 원칙에 충실한 덕분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풍경을 간직하며 마무리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여행 내내 보였던 설산과 달빛, 파노라마로 펼쳐지던 네팔의 거대한 산군, 일출과 일몰, 일정 내내 즐거운 이야기와 노래로 분위기를 이끌어 주셨던 선생님들 덕분에 정말 행복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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