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일기 제4일] (1) 블랙워터 래프팅

8월 13일


5시 30분 쯤 잠을 깼다. 늦게까지 수다를 떤 덕분으로 잘 못 일어나고 있는 아이들을 두드려 깨우고는 다른조 차량을 돌며 문을 두드리며 아이들을 깨워주고 세면을 하였다.(이후로는 이런 일이 나의 하루 일과의 시작이 되었다)


새벽 분위기의 나무 사진을 찍었다. 삼각대 없이 노출을 길게 주니 떨림이 심하다. 블랙워터 래프팅은 하루 인원이 한정돼 있다 사전 예약제라고 하여 서둘러 아침을 먹고 출발했다. 김 사장은 동굴 속의 체험이 매우 스릴 있고, 글로우 웜(우리의 반딧불이와 비슷)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도 있어 매우 환상적이라고 했다. 다만 엄청(?) 추운 것이 단점이라고 했다.


3조의 김지은의 말로는 작년 탐사대 활동 중에 이 블랙워터 래프팅이 제일 재미있었다고 한다. 지은이 아빠의 표현을 빌자면 지은이는 순전히 블랙워터 래프팅을 위해 이번 활동에 참가했다고 한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탐사대를 3개 팀으로 나누었다. 1조(송혜진, 유단비, 오정인, 김자연). 4조(유재준, 박건호, 이석희, 김민상)를 A팀으로, 3조(한윤미, 우진주, 김지은, 김선정), 5조(유재준, 민경록, 이형탁, 김진상)를 B팀으로, 2조(송태리, 이슬기, 이의정, 양예진)와 본부조를 C팀으로 하여 래프팅을 하기로 하였다.


애초 C조와 함께 래프팅을 하기로 되어 있던 이 피디가 촬영을 이유로 극구 참여를 하지 않겠다고 하여 슬기가 함께 하면 촬영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회유하였으나 아이들 표현대로 완전 A형(혈액형)의 결과로 끝내 참가하지 않겠다고 하여 다른 외국인 2명으로 대체되었다.


간단한 조서(건강 체크 및 서약서가 맞을 듯)를 작성하고 아래로 내려가 옷을 갈아입었다. 먼저 신발을 신고, 바지, 상의, 장화, 헬멧 순으로 옷을 입는데, 처음에는 내의를 준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내의를 주지 않아 문의하니 내의가 충분하지 않아 지급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한기가 몰려와 더욱 추워졌다. 나와 날씬한 지 사장은 옷을 잘 입는데, 통통한 한 기자와 임 선생은 옷 속에 몸을 구겨 넣느라고 고생 꽤나 한 모양이다.


옷을 갈아입고 나니 태리가 입술이 파래져서 추위에 떨고 있다. 제자리뛰기를 좀 시키려니 학교에서 운동(매트에서 구르기 정도가 전부라고 함)은 별로 배운 것이 없어 방법을 잘 모른다고 했다. 교민 예진이가 통역 겸 태리의 도우미를 하도록 편성하였는데 동굴속의 환경이 여의치 않아 내가 태리를 도맡아야 했다.


차에서 내려 준비 단계로 튜브를 가지고 다이빙 시 자세와, 단체 래프팅 시 자세, 방법 등에 대한 안내를 받고, 동굴속에서 뛰어내리는 방법을 계곡에서 먼저 실습을 하였다. 겨울의 동굴속에서 흘러나온 계곡물에 뛰어드니 잠수복 사이로 스며드는 차가운 물에 든든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추위를 참으러 해도 몸이 와들와들 떨려와 어쩔 수가 없다.


실습을 마치고 동굴로 출발하려니 A팀이 래프팅을 마치고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추워 보이기는 하나 얼굴 표정은 모두들 환하다. 가이드를 따라 동굴 입구에 다다르니 입구부터 가파른 길이다. 인위적인 조성을 최소화하고 환경을 보존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튜브를 어깨에 메고 걷기도 하고, 엉덩이에 끼고 뒤로 점프하기도 하고, 기차놀이처럼 다리를 앞사람 튜브 위에 올리고, 뒷사람의 다리를 잡아 주기도 하며 동굴을 따라 내려간다. 한참을 들어가니 밖으로부터 한줄기 빛과 함께 폭포수가 떨어진다. 동굴 높이는 약 65미터. 아파트 2~30층 높이이다. 동굴밖에서 들어오는 빛은 너무 눈이 부셔 보기가 어렵다. 누구라고는 말 못하겠고, 모 기자가 균형을 잡지 못해 자주 전복 위기를 겪고 있다.


한참을 내려가다 가이드가 헬멧의 헤드 랜턴을 모두 끄라고 하였다. 그리고 엉덩이를 튜브에 끼우고 발은 앞사람 튜브에 얹어 기차처럼 엮어서 내려가다 가이드가 위를 보라고 하였다. 아, 동굴 위에는 초록의 별들이 떠 있었다. 영롱하게 반짝거리며 빛을 발하는 글로우 웜!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저번 네팔에 갔을 때 쏟아지는 새벽별을 보고 감탄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 동굴속의 별은 나에게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얼마를 더 갔을까? 막상 물 속에 들어 있으니 추운 줄도 모르겠다. 다만 물 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느라 배가 고파오는 것이 문제였다. 가이드가 지고 온 배낭 속에서 초콜릿 한 조각씩을 나누어 준다. 참, 꿀맛이다. 아마 피난가다 백성이 진상한 '묵'을 드셨던 임금의 입맛이 이러했으리라.


동굴 속이 차차 환해지며 바깥에서 빛이 들어온다. 이제 끝이다. 아쉽다. 이 피디가 카메라를 겨누고 있다. 흠, 아주 즐거운 표정을 지어야지, 암.


차를 타고 사무실로 돌아와 옷을 반납하고, 샤워를 마친 후 올라오니, 맏며느리 진주가 빵을 굽고 있다. 빵 한 조각에 수프 한 컵이 온몸을 따뜻하게 녹여준다.


거대한 자연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모험 정신을 기른 날인 것 같다. 차 속에서 아이들은 또 곤히 잠들었다. 아이들의 잠든 모습에 노곤함이 묻어 있다.


차는 이제 화카파파(뉴질랜드는 영국식으로 발음하므로 와카파파보다는 화카파파가 맞는 발음이다.) 빌리지 홀리데이 파크로 향하고 있다. 고도가 점점 높아짐에 따라 기후도 달라진다. 도로를 기준으로 화산 지대와 일반 지대의 구분이 너무도 뚜렷하다. 지형, 식생이 한눈에 구별이 될 정도로 차이가 많다.


김 사장의 말에 의하면 화카파파 지역은 5~6년을 주기로 폭발하는 활화산인데, 1996년 폭발한 이후로 잠잠한 상태여서 언제 다시 폭발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한다. 화산이 폭발할 것을 대비해 지도를 상세하게 작성해 놓았는데, 화산이 폭발하면 우리가 묵을 홀리데이파크에서 무조건 길 건너편 쪽으로 달려야 한다고 했다. 10년이면 조만간 크게 터질 것 같은데, 이거 자는 애들한테 얘기를 해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날씨가 눈에 띄게 변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였는데, 이곳은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다. 맞은 편 길에는 폭설을 뚫고 나온 듯한 차량이 서 있고, 눈을 싣고 달리는 차들이 제법 보인다.


이곳에서는 OPC 모험학교 활동, 통가리로 크로싱, 루아페후 산 등반이 계획되어 있는데, 이제부터 아이들 고생길이 훤하다.


 

[탐사일기 제3일] (2) 와이토모의 잠 못 이루는 밤

와이토모 홀리데이파크에 도착하였다. 입구에 들어서자 커다란 밤나무가 앞에서 위용을 부리고 있었다. 홀리데이 파크에 가면 이 시설이 가족과 함께 하는 시설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라글란과 비교해 이곳에는 특별히 수영장과 미니 온천이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식사 후에 시간을 주기로 하고 지도자들이 먼저 온천을 하기로 하였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가니 조그만 탕에 김 대장과 박 부대장이 먼저 들어와 있다. 온탕 속에 들어가 앉아 있으니 몸이 스르르 풀린다. 조금 있으니 한 기자, 소 선생 그리고 여자 외국인 한 명, 아들로 보이는 아이 둘이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임 선생이 들어오는데 박 부대장이 큰 탕을 가리키며 따뜻한 물에 몸 족 녹이고 오라고 한 마디 한다. 한 눈에 보기에도 그곳은 한기가 느껴지는 찬 물이다.

임선생은 "아이, 젊은 사람이 온천은 무슨...." 너스레를 떨며 온탕으로 들어오다 그만 중심을 잃고 박 부대장의 어깨를 짚으며 곤두박질하고 만다. 그저 우리나라 목욕탕 계단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계단은 저만치 아래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박 부대장이 연약한 몸을 어쩌지 못하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고, 주위는 웃음바다가 되었다.


외국인의 큰 아이가 냉탕 속에 들어갔다 나온다. 다음으로 동생으로 보이는 작은 아이에게 용기를 북돋워 권하니 냉탕 속으로 들어가나 그 추워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너무 안쓰러워 괜한 짓을 한건 아닌지 집에 있는 작은 놈 생각에 맘이 아프다.  한덕동 기자가 그 아이들에게 제안을 한다. "Can you try once again?" 주위에서 one more!"라고 하며 박수로 권한다. 아이들이 다시 한번 우리를 위해 팬 서비스를 해 주었다. 모두들 좋아하며 박수를 쳐 주었다. 그러기를 몇 차례. 이제 내가 팬 서비스를 해 주리라.


냉탕으로 들어섰다. 찬물에 몸을 푹 담그고 저편을 향해 서툰 헤엄을 쳐 갔다. 물이 참 시원하다(?). 대충 마무리를 짓고 다시 온탕으로 돌아오니 멍석이 제대로 깔렸나 보다. 빨간 수영 모자를 쓴 한 기자가 냉탕으로 들어선다.


한 참을 재미있게 온천욕을 즐기는데 3조에서 임 선생을 밥 먹으라고 찾아왔다. 순간 지도자 동지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오늘도 우리조는... 부럽다 부러워. 아니나 다를까 오늘 저녁도 예외없이 우리조는 제일 늦고 밥인지 죽인지 모르겠다. 언제나 제대로 된 밥을 먹어 볼 수 있을는지. 다른 조의 지도자들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우리는 식당에서 간단한 협의회를 가졌다. 김 부장이 와인을 가져왔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김 부장이 충주에 오면 톡톡히 이 원수를 갚아야 할 게다. 와인이 한 순배 도는 동안 밖에서는 아이들 소리로 난리가 났다. 송태리(장애우)는 알아서 잘 챙겼겠지.


10시가 넘고 수영장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 아이들이 밖으로 나오고 그 후부터는 아이들이 샤워를 한다, 세탁을 한다 하며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그런 중에 맏며느리감 우진주, 오서방 등이 돌아다니며 2달러 코인이 없냐고 코인 구걸을 다녔고, 사무실에 가서 바꾸라고 해도 영어가 딸려서 헤매고 있었다. 교민 아이들은 뒀다 어디에 쓰려고 그러는지. 결국 이 아이들을 데리고 가더니만 그만 문을 닫았다고 울상이었다. 그래 결국 부대장의 심부름으로 코인을 바꾸었던 이석희가 돈을 주었던 것 같다.


임 선생님과 함께 밤나무 사진을 찍어보자고 비가 내리는 가운데 삼각대 들고 나와서 포인트를 잡으려는데 그만 조명이 꺼지고 말았다. 낙담하여 결국 각자 차량으로 돌아왔다. 식당에서는 골목대장 석희가 아이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하고 있었다.


차 안으로 들어와 보니 태리 혼자 곤하게 쓰러져 자고 있었다. 안쓰러운 생각을 하며 이층으로 올라와 자리를 펴고 일기를 쓰려고 부스럭거리고 있는데, 12시가 조금 넘었나 싶은데 두 녀석이 들어왔다. 모르는 체 누워있으니 잠시 후에 출연자들이 늘었다. 진상이 목소리도 들려온다. 두런두런, 이들은 각자의 학교 환경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학교생활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자기 관심사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이야기가 끝이 없었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이미 두 시가 넘었다. 이 녀석들이 정말! 참다못해 "얘들아, 이제 그만하고 가서 자거라." 하고 아주 엄하게(?) 지시했다. 순간 아이들의 소리가 멎어들고 아이들은 정체를 밝히지 않으려고 소리없이 사라졌다.


이렇게 아이들이 돌아가고 와이토모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새벽을 맞이하고 있었다.


 

[탐사일기 제3일] (1) 카라무 농원의 승마 체험

2006년 8월 12일.


아침 6시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주섬주섬'이란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이층이라고는 하지만 일어나면 바로 머리가 닿는 통에 몸을 바로 세울 수도 없어 누워서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가만 생각해 보면 이건 감옥 생활이나 다름없다. '처음이니까 이러지, 앞으로는 당당하게 아이들을 내좇고 난 다음에 옷을 갈아입어야겠다.(이 결심은 한번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음)


세면기 마개가 없는 바람에 뜨거운 물과 찬 물 사이를 오가며 세수를 마치고 나오니 잠시 후 일출이 시작되려고 한다. 어제의 일몰에 이어 또 다시 일출을 보게 되다니. 충주에선들 왜 일출을 못 보았겠는가. 하지만 이 곳에서의 일출은 남달랐다. 가로등 위에 앉아 있는 갈매기, 그 사이로 지나가는 갈매기가 그 느낌을 더해 주었다. 참 아름다운 일출이었다.


아이들이 밥이 다 되었다고 부르러 온다. 식탁 위에는 밥과 미역국이 기다리고 있었다. 밥하는 것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모든 것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탐사대 지침에 따라 그냥 두고 보기로 했다. 덕분에 대원들(아마도 우리조는 예외 이었던 것 같다)의 취사 과정에 많은 진척이 있었다.


차를 타고 카라무 농장으로 향한다. 이곳은 관광상품이라기 보다는 실제 농장으로 이곳에서는 승마와 카누 체험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가는 길에 하늘에서 비를 뿌리고 있어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한다. 농장에 도착하니 주인 내외가 나와 안내를 한다.


부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데이비드와 조이스 부부가 말을 탈 때 유의해야 할 점을 설명하고 두 조로 나누었다. 30여 명의 인원이 한번에 말을 타기는 어려워 A조는 승마를, B조는 카누를 먼저 하고, 오후에는 일정을 바꾸어서 하기로 하였다.


부부는 체격과 상황에 따라 적당한 말을 골라 주었다. 송혜진과 유재준 대원(시각 장애우)에게는 특별히 더 순한 말을 골라 주었다. 처음에는 다른 아이들처럼 고비를 쥐게 하였다가 고삐가 오히려 장애가 될 것 같아 고비에서 손을 놓도록 하였다. 말 위에 오른 탐사대원들의 모습은 늠름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COSMO SNF에서 지급해 준 피닉스 자켓을 갖추어 입은 모습이 훨씬 잘 어울렸다.


재준이를 선두로 하여 길게 말의 행렬이 이어지는 것을 보며 우리는 20여분을 이동하여 카누 체험장에 도착하니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자그마한 연못에 배(카누) 몇 척 띄워놓았다. 그래도 아들 건호와 함께하는 활동이니 위안이 되었다. 구명조끼를 입고 4명씩 2개조로 나누었다. 처음엔 사진을 몇 장 찍다가 카메라를 현지 안내인에게 넘기고 김 부대장과 함께 카누에 올랐다.


우리는 별 재미없이 카누를 즐기는 아이들에게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경기에서 꼴찌하는 조에서 점심 준비를 위해 장작불을 지피는 것을 하기로 제의하였다.(물론 농장에서 준비해 주지만) 처음에는 지사장과 건호조가 앞섰지만 결국 결승선은 우리조가 먼저 들어왔다. 카누 체험하는 것도 잠깐 아이들을 뒤로 한 채 드넓은 초원의 풍경에 심취해 있을 즈음 승마체험조가 저 멀리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림이 너무 아름다워 한 컷 찍어보려고 달려보지만 나의 걸음으론 말을 이동을 따라 잡을 수 없어 좋은 그림은 머릿속에만 담아둘 수밖에 없었다.


그럭저럭 몇 컷의 사진을 찍고 되돌아오니 목동들이 점심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불을 피우고 있다. 불 위로 철판을 놓고 자기들 점심으로 가져온 두툼한 고기 덩어리를 몇 조각 올려놓는다. 당연 쇠고기 인줄로 알았지만 양고기란다. 김 사장이 양고기는 특유의 냄새 때문에 먹기가 힘들다고 귀뜸을 해 준다. 그런 와중에도 고기 주인 몰래 양고기를 입에 가져간 사람이 목격되었으나 경찰의 증인 요청이 없었으므로 그냥 넘어가련다.


우리는 불판 위에 준비해 온 소시지와 양파를 올려놓고 소시지가 익는 대로 양파와 소시지를 식빵에 싸서 케첩을 뿌려 먹는 소시지 시즐링(현지 카우보이식)을 즐겼다. 막바지에는 양파가 많이 남아 사람들의 외면을 받았지만 지사장의 지혜와 먹는 것에 든든한 위안을 삼는 식신 오서방(정인)의 도움으로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


오후에는 역할이 바뀌어 우리가 승마체험을 하게 되었다. 처음하는 승마인지라 두려움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와중에 말에 오르니 염려했던 것 보다 안정감이 든다. 아들 녀석은 경험이 있어서 말에게 몸을 맏긴 것인지 의도한 대로 가는 것인지 이곳저곳으로 다닌다. 김대장은 오전에 승마체험을 했지만 우리들의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분주하게 촬영을 한다. 말은 연신 푸푸거리며 오르기도 하고 에돌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며 등에 올라탄 낯선 주인들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말을 처음 타보는 지라 긴장이 되어 처음에는 양 손으로 꽉 움켜쥐고 있던 고삐를 한 손에 쥐고 눈에 들어오는 풍경과 인물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움직이는 말 위에서 정확하게 초점이 맞는 흔들림이 없는 사진을 얻기 위하여 ISO를 400에 맞추어 셔터 속도를 빠르게 찍기로 하였다.

진흙길, 웅덩이, 계곡, 능선을 지나 2시간여를 가니 저만치 아침에 출발하였던 농장이 보인다. 카누 체험활동을 한 다른조가 먼저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준다.

민상이를 등에서 떨어뜨린 예의없는(?) 말에 대한 성토와 뛰어다니며 말을 촬영한 김영식 대장의 무용담, 말을 무서워하여 걸어서 촬영하다 전동차를 타고 나타난 이상렬 피디를 이야기하며 기념 촬영을 마친 후 와이토모로 이동하였다.



 

[탐사일기 제2일] (3) 아, 라글란의 일몰!

오후 3~4시 경이 되어서 라글란 홀리데이 파크에 도착하였다. 홀리데이 파크는 캠퍼밴, 혹은 승용차 등을 이용하여 여행하는 경우 전기, 식수를 공급함은 물론 취사장, 세탁소, 화장실, 바비큐 장소 등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그 급에 따라 비용도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한다. 파크 앞 넓은 초지에는 경비행기도 여럿 있고 해서(자체적으로 제작하는 사람도 있단다.) 레저 천국임을 다시금 실감하게 한다.


캠퍼밴을 세우고, 각 차량별로 캠퍼밴 내부 정리를 하도록 한 후(개인적으로 수납장을 지정해 주고 식재료와 짐가방 등을 정리하게 하였다.) 지도자들은 협의회를 가졌다. 가장 큰 문제는 지도자들이 모두 남자들인 관계로 남학생 차량은 관계가 없지만, 여학생 차량의 경우는 세 명의 지도자가 각각 여학생들과 함께 잠을 자야하는 상황이어서 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것이었다.


두 가지 안이 나왔는데, 하나는 3개 조의 여학생을 두 개 조로 통합하여 두 차량에서 자게 하고, 한 차량을 지도자 숙소로 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학생 4명을 캠퍼밴 아래쪽에 재우고 지도자는 위층 침실을 이용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첫째 안은 각자의 짐이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불편함이 많이 따른다는 점이 지적되어 아이들과 논의를 거쳐 둘째 안으로 결론을 지었다.


한데 아들만 둘을 키우는 나로서는 여간 불편한 심정이 아니다. 어쩌라 이미 주사위는 던져지고 말았으니 불편하더라도 감수하고 지내는 수밖에...


잠시 시간 여유가 있어 카메라를 들고 나와 만지작거리며 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에 외국인 하나가 다가와 말을 건다. 그리고 바닷가로 가는 길을 안내하며 따라오란다. 눈앞에 펼쳐지는 드넓은 바닷가. 그가 아니었으면 이 멋진 광경을 놓칠 뻔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그는 씩 웃으며 온 길로 되돌아간다.


구름이 많아 완연한 일몰을 보기는 어려웠으나, 눈앞에 펼쳐지는 장엄한 모습에 그만 숙연해졌다. 셔터를 몇 번 누르고 바닷가를 거닐다가 숙소로 돌아오니, 아이들이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 요리는 스테이크라고 했다. 나름대로는 모두들 열심히 하는 모습이지만 영 서툴고 폼이 나지 않는다. 더욱이 우리조는 모든게 어설퍼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조는 저녁준비가 다되어 지도 선생님을 모시고 식사를 하는데도 감감이다. 걱정했던데로 스테이크는 타고 밥은 물을 얼마나 부었는지 밥인지 죽인지 모르겠다. 그럭저럭 늦은 저녁을 먹고, 아이들은 남은 짐 정리를 하러 밴으로 돌아가고, 지도자들은 본부 차량에 모여 분임토의를 하였다.


후일담으로는 그 날 본부 차량에서 이른 새벽까지 논의가 이어졌다고 하는데, 그 장소에 없었던 나에게는 논의 내용을 끝내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CEO인 지경복 사장이 자리 제공에 난색을 표하는 것으로 그 날 본부 차량에서 있었던 행사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탐사일기 제2일] (1) 오클랜드, 그를 만나다

8월 11일.

밖이 훤해지기 시작하였다. 날이 밝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시계를 현지 시간으로 바꾸어야겠다. 뉴질랜드는 우리나라보다 세 시간 빠르다.


시간을 바꾸어 놓고 잠시 앉아 있으니 창 밖으로 불이 붙기 시작한다. 아래쪽에 깔린 구름들이 붉게 타오르고 태양은 솟아오르려 하고, 먼 하늘은 푸른빛을 더하고 참으로 장엄한 광경이었다.


잠시 후, 착륙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비행기는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하였다. 짐을 챙겨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수속을 하는데, 직원이 한국임을 알고 "음식?"하며 짐 중에 반입한 음식물이 있는지 물어본다. 한국 음식을 세계 만방에 알리여(?) '한국식 음식'을 바리바리 실어왔던 먼저 다녀간 선배들로 인해 각인된 말일 것이다.


이 때 시간이 7시 45분 쯤 되었던 것 같다. 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빠져나오니 갑자기 한기가 느껴진다. 이곳은 겨울이라 입고 있는 여름옷이 어설퍼 보인다. 서둘러 자켓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배낭 속에 넣어 두었던 카메라를 꺼냈다.


잠시 후, (주)INL 대표인 김태훈 사장과 현지 청소년 김진상, 김민상, 김자연, 양예진, 김선정 학생을 만날 수 있었다. 원래는 교민 학생과 뉴질랜드 현지 학생이 함께 활동을 할 예정이었으나, 이곳 학생들은 개학을 한 후여서 교민 학생들만 모아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들이 입은 두툼한 털옷과 우리가 입고 있는 얇은 여름옷이 참 대조적이었다.


밖에는 간간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탐사일기 제1일] (2) 외로운 비행기 안 숙박기

이제부터 지루디지루한 항공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어떻게 해서 11시간 정도의 여정을 견더내야 할지 걱정이다. 아마도 기내식으로 제공되는 맥주나 와인으로 건아하게 취해야만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탑승하기 전 여독에 휩싸여 막 잠이 오기 시작했는데 이륙하는 굉음과 불안감 때문에 잠이 달아나 버렸다. 늘 이륙할 때면 공포감이 엄습해온다. 이 공포감으로부터는 언제쯤 해방될는지? 비행기가 이륙할 때는 해가 지려고 하고 있었다. 오른쪽에서 사그라드는 햇빛이 붉은 빛으로 변하며 기내로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행여 일몰 사진을 담을 수 있을까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다시 얌전하게 앉았다. 이코노미 좌석을 이용하는 자의 한이랄까 우리가 앉아 있는 곳은 날개 위였다. 가운데 자리에서 창쪽으로 가기도 어려운 일인데 창쪽도 날개 위여서 사진에 담기에는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일어섰다가 그냥 다소곳이 앉아야 하는 심정은 겪어본 사람만 아는 것이다.


헤드셋을 끼고 이리저리 검색을 해 보았다. 영화도 있고, 음악도 있고.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익숙한 영화들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영화도 있었다. 하지만 영어는 문맹수준이 나로서는 그림의 떡 보아도 이해가 안가니 재미가 없었다. 나에게는 오히려 비행기의 고도와 실외 온도, 남은 거리 등을 날려주는 안내 화면이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에는 더 제격인 것이다.


그러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 눈을 떠 보면 아직도 한밤중이다. 또 잠이 들다 하며 외로운 숙박 투쟁을 하였다. 아마 이번 여행 중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 아닌가 싶다.

 

[탐사일기 제1일] (1) 뉴질랜드를 향하여

8월 10일

도봉산 숲속마을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 버스에 올랐다. 세 차례의 사전교육과 어제 있었던 2006 청소년 희망찾기 탐사대 발대식을 마치고 드디어 우리의 탐사 활동지인 뉴질랜드로 향하는 순간이다. 모두들 빠진 것이 없나 최종 점검을 마치고 7시 30분 드디어 버스에 올라 인천 공항을 항해 출발하니 모두들 가슴이 설레는지 여기저기 주고받는 말들이 떠돌아다닌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보니 9시가 조금 안 되었다. 빠뜨린 짐이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보라는 박연수 부대장의 말이 쩌렁쩌렁 울린다. 카트에 짐을 한가득씩 싣고 공항 안에서 대기하던 중 출국 수속을 위해 여권을 걷는데, 슬기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김종민 팀장을 찾는다. 차 안에 여권 세 개를 놓고 내렸다는 것이다. 부랴부랴 김종민 팀장이 전화를 걸어가던 차를 되돌려 여권을 찾아온다. 시작부터 정신 못 차린다고 다시한번 부대장은 전 대원에게 정신 무장을 시킨다.


김영식 대장은 또 그대로 바쁘다. 3명의 탐사대원이 여권과 영어 이름이 일치하지 않는데다, 시각장애 학생과 함께 하는 활동이니 만큼 이들을 도와줄 도우미 학생들의 좌석이 나란히 배치되지 않아 이를 처리하느라고 분주하다. 김대장의 스팬틱 등반으로 탐사대 준비에 관여한 시간이 짧은 후유증인 듯, 시작부터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뭔가 미흡한 것 같다. 김대장과 김종민 팀장 및 이름이 잘못된 3명의 대원들을 남긴채 우선 발권이 완료된 대원들부터 보딩을 하기로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남아 있던 3명의 발권이 완료되어 모두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탑승 직전 아내에게 잘 다녀오겠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휴대전화의 메뉴를 열어 자동로밍으로 전환한 다음 전원을 껐다.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는 직항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환승을 해야 한다. 가난한 우리 주머니 사정으로는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다. 감히 직항노선에 비지니스 클래스는 엄두고 못 낸다.


아이들은 무척 들떠 있었다. 특히 첫 해외여행을 하는 성모학교 학생들은 더 그랬다. 난 그들에게도 세상을 보는 눈이 있음을 안다. 그래서 표현을 하지 않아도 그들 얼굴에 피어오르는 기대감과 설렘을 읽어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이런 속마음을 굳이 감추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감출 필요가 없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기내식이 나오고 하는 가운데 비행기는 일본 나리타 공항에 착륙하여 우리를 내려놓는다. 환승을 위하여 제2여객 터미널로 이동을 위하여 버스를 이용하는 데에도 이 구역에 있는 이들은 모두 환승을 위한 고객일 터인데도 혹시라도 안전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서인지 탑승권을 확인한다. 환승 수속을 마친 후 전동차를 타고 반대편 터미널로 들어간다. 탑승시간까지는 앞으로 3시간의 여유 시간이 있다. 우리가 타야 할 게이트를 확인하고 자유시간을 보낸다. 사진을 찰칵대는 사람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사람들, 열심히 시식활동을 하는 사람들, 그냥 앉아서 이야기하는 사람들.


여기저기 상점들을 구경하고 다녔다. 일본 책을 파는 서점에 들려서 말로만 듣던 일본 잡지의 야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예쁘장한 여인이 표지모델로 장식된 잡지를 슬쩍 열어보니 정말로 민망한 그림들이 많다. 익숙치 않은 나로서는 눈치를 보면서 얼른 닫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그리로 자꾸 눈이 쏠리는 이유는 뭘까? 서점을 뒤로 한 채 이곳저곳을 다녀보니 면세주류점에 일본 매실주와 발렌타인 17년산 시음코너가 보였다. 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안통하는 말로 몇마디 대화를 건네 한잔씩 시음을 하였다. 이후 이곳은 비행기에 탑승하기까지 몇 번이고 애용하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


그러는 가운데 시간은 흐르고, 뉴질랜드행 비행기에 탑승하게 되었다. 오클랜드 공항까지는 장장 11시간이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어떻게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제 내일 아침이나 되어야 땅바닥에 발을 내려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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