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용/구자일/김미숙/김범준/정옥량/키친바리

홍광일/김경현/김현옥/김형준/정지회/쿡 덴징

박종웅/유경수/민지원/박병훈/정진호/쿡 찬드라

변상규/윤병희/윤기영/정현수/지용희/셀파 파샹

양문석/윤석주/임종용/설세영/최창원/가이드 핀조

연철흠/이상호/장길문/윤서영/         /셀파 밍마

탐사기간 동안 룸메이터로 동고동락하였으며 감기몸살로 고생하던 나를 위해 열심히 뒷바라지 해주었던 중앙여고의 구자일 선생님 

김경현 충북산악연맹의 이사 

 김기훈 청소년 대원

 사랑하는 친구(설상욱)의 아내 김미숙 대원

 김범준 청소년 대원

 김영식 대장

 김현옥 대원

 김형준 청소년(초6/김범준 동생) 대원

 민지원 대원(간호사)

 박병훈 청소년 대원

 박종웅 자문위원님

 박혜식 대원

 변상규 청소년 지도위원

 친구의 딸 설세영 청소년 대원

 신영섭 선생님

 양문석 선생님

 송절중 양창목 교감선생님

연철흠 선생님 

 유경수 대원(숲해설가)

 충일중 윤기영 선생님

 윤병희 대원

 윤기영의 외동딸 윤서영(초6) 청소년 대원

 윤석주 자문위원님

 이상호 선생님

 앙성중 임종용 선생님

 장길문 선생님

 정옥량 선생님

 정지회 대원

 정진호 청소년 대원

 정현수 청소년 대원

 중앙여고 지용희 선생님

 최창원 자문위원님

 신흥고 하이용 선생님

 홍광일 대원

 가이드 핀조라마

가이드 겔루 

 클라이밍 셀파 파샹

 클라이밍 셀파 밍마

 쿡 덴징

 쿡 찬드라

 키친바리

 

2012 히말라야오지학교탐사대 여행기

(가네쉬히말에서 고사인쿤드까지)

(2011.12.31~2012.1.16)


글 : 영원한 자유인 설상욱


누구나 꿈꾸지만 쉽게 갈 수 없는 곳, 그러나 막상 가보면 어지럽고 혼란스럽고 불편한 나라, 다녀와서는 그 불편이 그립고 아이들의 눈망울과 산의 향기 때문에 다시 가고 싶은 희말라야....... 한 해가 끝나는 날 나는 희말로 가기위해 비행기 안에 있다.


12. 31(토)

광주에서 카고백(등산갈 때 짐을 많이 넣기 위해 만든 커다란 가방)과 배낭을 짊어지고 아들 설창환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인천공항에는 같이 갈 청소년들과 지도교사들 30명이 합류해서 수속을 밟고 있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인천공항은 정말 크고 어수선하다. 세계속의 한국이 실감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에 취해있을 시간에 우리는 비행기 안에서 새로운 해를 맞이하고 있다. 기분이 참으로 묘하다


1월 1일

오전 7시경에 도착한 카투만두(해발1400M) 국제공항은 우리 광주공항보다 적어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도착한 것에 비해 컴퓨터하나 없이 모두 수작업으로 입국절차를 하는 탓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카고백 50여개를 찾아 트럭에 싫고 버스에 타니 우리를 안내할 포터들이 작은 꽃송이로 만든 목걸이를 환영한다며 걸어준다. 향기가 좋고 비행기에서 답답했던 맘이 조금은 편해진다.

카투만두 시내에 있는 로얄싱기호텔로 가는 길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심한 먼지, 매연, 약 7M정도의 도로를 버스, 화물차, 경운기, 오토바이, 자전거, 릭샤(소형택시) 등등이 동시에 이용을 한다. 시속 30KM를 넘지 못하고 도로 포장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먼지가 심하고, 경제난으로 불량 저질 중국산 휘발유, 경유를 쓰는 탓에 매연이 심해 눈이 따가울 지경이다. 더 심각한 것은 주유소마다 적게는 5KM 많게는 10KM씩 기름을 배급받기 위해 줄을 서서 최소 6시간 이상 기다린단다. 차량의 경우 10L 오토바이의 경우 3L 이상은 팔지 않는다. 그래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어수선한 도심을 통과해 도착한 호텔에서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 전력사정으로 오후 6시만 되면 정전에 단수로 시내 모든 호텔과 상점에서는 자가 발전기와 살수차로 물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인구 200만을 기준으로 설계된 도시에 약 450만명이 살고 있으니 당연한 것임에도, 현 공산당 정부는 중국만 쳐다보고 있었고 매일 1명의 장관이 새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임명되고 있다고 한다. 참 신기한 것은 이렇게 불편하고 힘들텐데 정작 국민들은 정부에 대해 불평불만이 없다.

이런 원인은 전 국민의 90%가 힌두교도이고 이들의 신은 정말 다양하다. 소, 코끼리, 원숭이, 비둘기 등등 거의 모든 짐승이 다 신이다. 가난하지만 신을 숭배하고 현재 자신의 어려움은 전생의 업이고 현재의 불편을 잘 견디고 수행하면 내세에는 정말 좋은 곳에서 태어난다는 확신??을 믿고 살기 때문이란다.


1월 2일

카투만두-트리슐리-둔체-샤브르벤시


고소적응을 위해 카투만두를 벗어나 트리슐리로가는 길은 하나의 여정이었다. 내륙에 위치한 탓에 인접국과 국경이 겹쳐있기 때문에 검문소마다 군인들이 실탄이 들어있는 총을 들고 검문을 하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기름을 확보하기 위해 수KM씩 줄을 서 있는 오토바이와 트럭, 버스 등을 보며 우리나라가 생각났다. 이런나라에서 50년 6.25전쟁때 파병과 물자를 보내주었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시내를 벗어난 길은 보통 폭이 5M를 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앞차가 마주치면 마치 곡예를 하듯 피하거나 기다렸다 지나간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만약 앞에 가던 트럭이나 버스가 고장나면 그 차를 수리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다시 부속을 구하려 카투만두로 왕복하면 몇시간이고 기다려야하고 심지어 날을 새는 경우도 허다하다. 길이 외길이고 좁다보니 방법이 없다. 우리가 가는 길도 마찬가지다 2번이나 고장난 차가 있어서 5시간 정도면 도착할 길이 8시간 이상 걸려 사브르벤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는 길이 비포장 길은 기본이고 거의 절벽을 곡예하듯 아슬아슬하게 통과할 때마다 손에서 땀이 난다. 희말에서 이런 절차는 필수라는 말을 들을 무렵에야 도착했다.


1월 3일

샤브르베시(1,647M)- 골중(1946M)- 탐브체트(1,768M)- 칠리매- 따또바니(2,607M)


새해 첫날은 아니지만 안전산행을 기원하는 차원에서 쿡이 떡국을 끓여 아침을 대접해 주었다. 오늘은 고소적을을 위해 2박 3일 산행을 시작하는 날이다. 길고 긴 여정의 시작으로 모두 각오가 비장하다. 어제 타고 온 버스를 이용해 샤브르베시에서 탐브체트까지 이동한다. 어제 온 길도 천길 낭떠러지로 힘들었는데 오는 가는 길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간이 크다는 나도 오줌을 절일 정도로 길이 험하고 어떻게 이런 산에 길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길이 험하다.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터진다.

공중에서 바라본 가네쉬(코끼리)희말의 전경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탐브체트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0시경 드디어 문명과 작별을 하고 산으로 들어가는 시간이다. 가볍게 몸을 풀고 시작하는 산에서 처음 마주치는 네팔 여인들이 전하는 말은 나마스테(안녕하세요) 네팔인들은 남녀노소가리지 않고 누구를 만나든 반갑게 인사한다. 아주 밝고 맑은 웃음과 눈빛으로...

약 3시간을 걷고 난 후 칠리메 언덕에서 미리 준비한 주먹밥으로 점심을 먹고 다시 이동하는데 2천미터가 넘어가니 평소 체력이 약한 중학생이 고소가 오기 시작해 고생을 한다. 배낭을 들어주고 물을 마시게 하니 힘이 나서 다시 열심히 걷는다. 역시 젊다는 것은 좋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오후 5시경에 도착한 따도바니(2,600M)는 놀랍게도 자연온천이 있었다. 시설은 어설프지만 온천수는 세계 어디에도 빠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린 여기서 정말 즐겁게 온천을 했다. 남성들은 팬티만 입고 여성분들은 반바지에 티를 입고 즐기는 온천에 하루의 피로고 모두 날라갔다.

해발 2600M에서 풀을 먹고 자란 염소(1마리 30만원)로 저녁을 먹었다. 보통 염소는 요리를 하면 묘한 냄새가 나서 잘 먹지 못하는데 여기 염소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전력사정은 카투만두나 여기나 좋지 않다. 솔라이트로 저장한 희미한 불빛은 곧 꺼지고 우리는 해드렌턴을 이용해서 저녁을 먹고 산노래로 하루를 마감했다.


1월4일

따또바니- 브림당 곰파(2,848M)- 나그탈리 기양(3,100M)


아침을 먹고 난후 잠시 소란이 있었다. 우린 따또바니에서 숙박을 하니까 온천이 당연히 공짜?인줄 알았는데 마을에서는 1인당 우리돈으로 5천원씩 내라고 한다. 참 고약하다. 수입이 없으니까 이해는 가는데 미리 말하지 않고 끝나고 가는 길에 돈을 달라고 하니까 참 야속하다.

희말라야 겨울 날씨는 낮에는 무척 덥고 밤에는 몹시 춥다. 낮에는 반팔을 입어도 되지만 저녁에는 두터운 침낭속에 있어도 많이 춥다.

곰파를 지나 나그탈리로 향하는 길은 정말 볼 것이 많았다. 3천미터를 넘어서자 눈발이 날리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었다. 저지대에서는 볼 수 없는 다른 식물들과 야생화,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코사인군도의 장관 등등

나그탈리에 도착하자 미리 도착한 쿡이 팝콘을 커다란 바구니 하나 가득 내 놓는다. 이렇게 팝콘이 맛있었나?? 팝콘에 홍차를 몆잔 마시고 네팔 민요(우리나라의 아리랑) 레쌈피리리를 배웠다. 노랫말이 부르는 사람에 따라 흥겹기도하고 우울하기도 한 곡이다.

5시경 저녁을 먹고 있는데 밖에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네팔에와서 처음 맞는 눈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내리는 눈에 즐거워하고 청소년들은 눈싸움에 열심이다. 항상 입시에 찌든 아이들이 이렇게 자연속에서 즐겁게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상념에 빠져본다.

눈이 그치고 새벽녘에 화장실을 가기위해 밖에 나섰다, 바라본 하늘에서는 별이 마치 눈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손으로 잡으면 잡힐 것 같은 수천수만의 별들이 맑고 투명하게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경이로운 체험 앞에 시간가는 줄도 추운 줄도 모르고 내내 서 있었다.


1월 5일

나그탈리(3,165M)- 뚜만(2,338M)- 샤브르베시


고소 적응을 마치고 하산하는 날이다. 하산 도중 오전3시간 동안 뚜만 초등학교에서 봉사활동과 체험학습을 하고 우리가 모금한 돈과 노스페이스에서 기증한 학용품, 옷가지 등을 전달하기로 했다. 지도 교사들 다수가 교사들로 미술과 체육 수업을 했다. 네팔의 학교는 대부분 산 꼭대기에 있다. 여기 초등학교도 2,300여미터 산자락에 있어 학생들이 학교 오기가 힘들텐데도 학구열일 대단하단다. 네팔 초등학교 학생들의 맑은 눈과 꾸밈없는 표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덩달아 맑아지는 것을 체험했다. 네팔의 매력은 이런 것이다.

하루종일 걸어서 다시 도착한 샤브르베시는 어둠에 싸여 있었고 우린 충분히 지쳐있었다. 물이 귀해 3일동안 씻지 못해 답답했던 몸을 찬물에 씻고 나서 저녁을 먹고 편안하게 잤다.


1월 6일

샤브르베시(12,467M)- 툴루샤브르(2,250M)


고소 적응을 끝냈다 해도 고산에서의 산행은 힘이든다. 오늘부터는 많이 걷지 않고 고소 적응을 위한 기나긴 시간의 여정이다. 오늘은 5시간 정도만 걷고 툴루샤브르에 쉰다. 이미 고소적응을 했지만 산행경력이 짧은 청소년들은 힘들어한다. 툴루샤브르에서 점심으로 먹은 볶음밥은 정말 맛있었다.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 빨래도 하고, 사진도 정리하고 지친 몸도 쉬는 하루였다.

네팔사람들은 롯지(우리 민박)를 운영해서 먹고 사는 경우가 많다.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의 꿈은 건물을 지어 롯지를 운영하는 것이고 롯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들이다. 네팔 사람들은 고산지대여서 농사를 짓는 것 이외에는 따로 벌이가 없다. 특히 겨울에는 남자들이 대부분 그냥 놀고먹는다. 그래서 궁핍하다. 특히 여성들의 삶이 고달프고 팍팍하다.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가축을 기르거나 살림을 하는 모든 것이 힘들고 어렵다. 그래서 남자들이 모두 수도인 카트만두로 떠나, 마을에는 여성들만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수년에 한번씩 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3일정 머물다 다시 떠난다. 아이들이 아빠 얼굴을 다 커서 알 수 있다. 학교를 가보면 정말 궁핍이 실감난다. 학교에 교사가 1명이고 책상이 없고, 나무 의자와 칠판만 있다. 산 중턱이나 정상에 있기 때문에 운동장도 없다. 그런 곳에서 공부를 하고 꿈을 키운다. 땅 바닥에 글을 쓰면서....


1월 7일

툴루사브르(2,250M)- 두르사강(2,650M)- 포프랑단다(3,250M)- 싱곰파(3,350M)


오늘은 하루 종일 걷는 날이다. 그것도 계속 오르막길을 걸어서 싱곰파까지 가야한다. 깊어지는 랑탕계곡을 뒤로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걷고 걸었다. 실컷 걷고 나니 어느새 포프랑단다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볶음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가네쉬히말을 바라보며 먹는 점심은 정말 각별했다. 지금까지 본 경치중 최고였고 점심도 최고였다.

다시 걷는다. 걸으면서 상념에 빠져든다. 나는 누구인가? 왜 여기와 있는가? 왜 여기에서 이런 힘든 여정을 보내는가? 나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곁에서 말없이 걷고 있는 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등등등

걷다가 갑자기 나타난 커다란 나무를 보며 상념에서 벗어난다. 전나무과로 이름이 랄리글라스다. 높이만 해고 100M 이상에 둘레가 어른 세명이 보둠어야 할 정도로 큰 나무다. 네팔의 1호 국립공원이란다.

싱곰파 롯지에서 시원한 맥주를 한 병 마시고 바라본 경치는 참으로 신비롭고, 지는 석양은 길 떠난 여행자를 우수에 젖게 한다. 산 정상에서 노을은 참으로 오랬 동안 이어진다.


1월 8일

싱곰파(3,350M)- 촐랑파티(3,654M)- 라우리비나야크(3.910M)- 고사인쿤드(4,380M)


날짜의 개념이나 요일의 개념이 없어진지 오래다. 오늘이 무슨요일이고 몇 시인지도 사실 의미가 없다. 전화도 되지 않고 시간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들은 이렇게 수천년을 살아왔을 것이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다가 후손에게 이 장소를 물려주고 사라질 것인데!!!

목욕을 하지 않고 2일을 버티면 그 뒤부터는 서서히 감각이 없어지고 가렵지도 않는다. 물이 귀하니까 양치만 하고 얼굴을 물티슈로 해결한다. 사람이 신기한 것이 이런 상황이 되면 거기에 맞게 적응을 한다. 그것도 아주 쉽게.....

오늘은 고사인쿤드까지 기나긴 여정이다. 하루에 약 1,000미터를 넘어가는 강행군으로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아직까지 아들이나 나는 고소로 고생은 하지 않았는데 체력이 약한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걱정이다.

수목한계선을 지나고 3,900미터에 자리한 라우비나야크호텔에 도착했다. 벌써 여러명이 고소로 고생을 한다. 비라그라를 먹게하고 따뜻한 물을 계속 먹어도 힘들어한다. 그래서 평소 운동을 해야 한다. 호텔에서 판매하는 고소모를 개당 4달러에 단체로 구입했다.

점심 후 고사인쿤드를 향해 출발하는 우리 모두는 힘들었다. 4천미터를 넘어서면서 기압이 650이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숨쉬기가 많이 힘들었다. 몇 발 걷고 나면 쉬어야 했다. 한 참 숨을 고르고 다시 오르고 쉬었다 다시 오르고 우린 계속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바라본 하늘과 고사인쿤드 산자락은 위용 그 자체였다. 거대한 산이 내 곁에서 나와 함께 걷고 있었다. 경이였고 신비로웠다. 우리가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든 산행을 하는지 그 해답이 여기에 있었다.

한 참을 걷다보니 커다란 호수가 보였다. 큰 산이 양쪽에서 무너져 생긴 것으로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여기에서 8월 보름에 열리는 ‘자나이 푸르네마’ 고사인쿤다 페스티발은 힌두인들의 최대 축제로 이날 여기에서 목욕을 하면 모든 죄업이 사라진고 한다.

다운이나 자켓을 입고 걷고 있는데도 몹시 춥다. 높이가 실감난다. 물을 많이 마셔도 화장실을 갈 일이 없다. 워낙 건조해서 피부를 통해 수분이 증발하기 때문이다. 워낙 고산이라 나무가 없다. 그래서 난방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정말 춥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 롯지에 들어가 누웠는데 추워서 참이 오지 않는다. 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오리털파카를 입고 침낭에 들어가 있어도 춥다. 이런 저런 상념에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얼굴이 추워 잠이 깼다. 물을 먹기 위해 저녁에 배낭에 넣어두었던 따뜻한 물이 꽁꽁 얼어있었다. 영하 25도 이상이다.


1월 9일

고사인쿤드(4,380M)- 라우리비나야크(4,610M)-페디(3,730M)- 곱테(3,430M)

이제 이번 여행의 최고의 높이를 체험하는 날이다. 몸과 맘이 최고로 긴장하고 있다. 아직까지 고소가 심하지는 않고 약간 어지럽고 머리가 멍하다 그쳤다를 반복한다. 아들의 상태를 보니 전혀 이상이 없다. 역시 평소에 산행을 많이 한 덕을 보고 있다. 어린 학생들과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힘들어하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다.

쿡들이 어렵게 준비한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다시 출발, 고사인쿤드의 새벽은 정말 춥다. 고소 장갑을 끼고, 두툼한 파카를 입었음에도 추위가 장난이 아니다. 정말 춥다. 눈보라가 무섭게 몰아친다. 햇빛에 반사되는 눈부심 현상은 시야를 가리고 숨은 턱 밑까지 올라선다. 기압이 거의 550정도로 지상의 절반 수준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다시 걷다 다시 쉬고를 수없이 반복하니 어느새 정상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그리고 곧 정상에 올랐다. 이런 것이 삶이다. 힘들고 어려움을 극복해야 정상이 보이고 정상의 가치를 안다. 누가 업어주던지 헬리콥터를 타고 왔다면 이런 감격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증거요, 내려가서 더 열심히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을 확신한다. 같이 온 청소년들도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긍심과 내부로부터 무한한 에너지가 넘쳐남을 말이다.


1월 10~12일

곱테(3,430M)- 타레파티(3,690M)- 마긴고트(3,420M)- 구트상(2,470M) 1박

쿠트상(2,470M)- 치풀링(2,170)- 파티반장(1,830M)- 치소바니(2,160M) 1박

치소바니(2,160M)- 보르랑반장(2,451M)- 물카라(1,855M)- 순다리잘(1,460M)- 카트만두


곱테를 지나 하산하는 날 오후 내내 눈이 내렸다. 희말라야에서 눈을 맞으며 산행을 한다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고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아이젠을 착용해도 미끄러운 구간이 많아 긴장하고 조심스럽게 구트상까지 내려왔고 이어지는 하신길은 마냥 즐겁고 신나는 경험이었다. 만나는 네팔인들도 정말 반가웠고 길에서 놀고 있는 네팔 어린이들과 기념 촬영도 수줍어하며 카메라를 피하는 여학생들의 미소도 싱그럽고 상큼했다.

12일 도착한 카트만두는 역시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다. 사람과 오토바이를 포함 움직일 수 있는 기계류와 이동가능한 모든 짐승들이 한데 어루러져 카트만두를 욺직이고 있다. 정말 신기하다.

나는 네팔에서 많은 것을 보고 체험했다. 인간의 순수성, 어린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 어렵지만 참고 견디는 지혜, 여인들의 한없는 가족 봉사, 수행자들의 고행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 문명을 떠나 세계 오지 중 오지인 네팔에서의 산행은 참으로 인간의 본성과 내면의 세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 점이다. 현재 살아있음을 감사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신에게 끊임없이 반성하고 매래를 위해 기도하는 그런 시간을 다시 만들고 싶다.


1월 16일

아쉬움을 뒤로하고 카트만두를 떠나 인천으로 가는 길이다. 나는 다시 올 것이다. 열심히 살 것이고 부족한 체력이나 헤이해진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서도 다시 올 것이고, 네팔 아이들의 맑고 고운 눈을 보기 위해서 다시 올 것이다. 긴 여행 동안 말없이 견뎌준 아들에게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힘들어 가기 싫다던 아들이 내년에 다시 오자고 했을 때 정말 기뻤다. 그래 우리가 뭔가 잃어버린 중요한 것을 생각하지 못하거나 가슴속 저 안에서 소리치고 싶을 땐 정말 좋은 곳이다. 이번 여행을 준비해준 노스페이스 성기학 회장님과 청소년위원장이신 김영식대장님 등 모두에게 감합니다. 나마스테

이즈마일로보(IZMAILOVO 알파) 호텔에서

 붉은광장

 

 

 

크래몰린 궁 

 

굼 백화점 

 

 

 

 

여기가 모스크바 정중앙이라고

가운데 원에 서서 행운을 빌며 동전을 던지면 주위에 모여있는 노인들이 그 동전을 줍는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희생한 무명용사 추모비 

 

 

 

 

성바실리 성당 

 

 

 

 

 

베낭여행을 왔다는 한국분들을 만나서

참으로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종

물론 황제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한 전시용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대포

그런데 앞에 진열된 포탄이 포신의 구경보다도 크다.

역시 황제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한 전시용 

 

 

 

모스크바 대학

이렇게 건축된 건축양식을 스탈린식 건물이라고 한다.

러시아에는 7개의 스탈린식 건물이 있다.

 

 

 

전승기념탑 

 

모스크바 지하철

지하 200 m 지점까지 하나의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 

 

 

세계 지하철 박람회에서 2위의 입상을 하였다고 

벽면에는 이런 그림들이 즐비하다. 

 

 아르바트 거리(우리나라의 인사동 거리에 비견된다고...)

러시아에는 40-40-40 이라는게 있다고

-40도 이하는 추위라고 얘기하지 말며

여자 나이 40이 넘어서 허리사이즈가 40이하이면 여자가 아니라나...

그 추위를 버티러면 이정도 모자는 필수겠지요.

우리나라 사람들만 저런 깃발을 따라 관광을 하는줄 알았었지만

여기에 보이는 단체관광객들은 모두가 이런 모습 

 

 6시 기상, 7시 체겥 출발

교통체증이 심하여 약 세시간 반의 지루한 시간동안 차량으로 이동 민보디 공항 도착

민보디 공항으로 이동중 수박을 먹고 싶다는 태수형의 말씀으로 가로변 과일점에 들려

누군가 자기 건물의 담벼락에 XX를 했다고 잔뜩 화가난 주인 아주머니 

내려서 저 멋있는 풍경을 담아보고 싶지만

교통이 얼마나 막힐지 몰라 걱정하는 가이드의 마음을 헤아려 그냥 지날칠 수 밖에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

캐리어가 없어 짐을 들어 옮기는 고생을 감내해야 

7일째 : 8월 6일

- 날씨 : 흐리고 비
- 운행: 10:00 리프트 출발 ->11:30 아자우 도착 ->12:30 볼프람호텔 도착 -> 이후 자유 시간

 

오늘은 날씨가 어제보다도 안좋다.

새벽녘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비록 정상 등정은 이루지 못했지만 미지의 땅에 대한 모험으로 만족하며 각자 가져온 산악기를 들고

 

  

여행기간 내내 고소증으로 고생한 윤석완 대원

참으로 비싼 고생을 하셨습니다. 

 

백두클라이밍 회원과 함께 

 

 

 

 

 

 

트레킹클럽 최승원CEO

마음고생 넘 많으셨습니다. 

 

 

 

 

 

 

 

하산길엔 케이블카를 이용 

 

 

 

 

 

 

 

 

 

 아자우시장

 

 

 

 

 

 

체겥 한모퉁이 숲에 위치한 송어잡이 연못

송어를 잡아 주인에게 주면 구이를 해준다

비용은 800루블(약 32,000원)/kg 

송어 낚시터에서

 

6일째 : 8월 5일

- 날씨 : 흐림
- 운행 : 3:00 기상 및 아침식사(숭늉) -> 4:00 설상차 출발 ->4:50 파트코트락(고도 4,700m) 도착
           -> 4:50 산행시작 ->8:40 새들 도착 ->9:32 하산 시작 ->11:45 파트코트락 도착
           ->12:00 설상차 출발 ->12:15 숙소 도착 ->18:20 저녁식사

 

2010년 1월 킬리만자로, 2010년 8월 몽블랑 등정은 나에게 조그만 꿈을 자라게 했다. 다름아닌 7대륙 최고봉 등정에 대한 욕심이었다. 이런 꿈을 실현하기 위해 유럽 최고봉인 엘브루즈로 나는 향하게 되었다. 더 크고 감동적인 자연의 위대함을 추억으로 남기기 위하여...

5642 m 그곳에서 인간은 고소를 느낀다. 약 3,000 m 를 넘어가면 두통을 동반한 식욕부진, 무기력증 등에 빠진다고 한다. 이유인즉 그곳에서는 산소가 일반 평지보다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면 산행은 그야말로 고통 그 자체이다. 고소를 치유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내려가는 것이라고 한다. 고소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활동과 긍정적인 생각, 충분한 양의 수분섭취가 필수적이라고 한다.

 

정상등정의 부담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고 있는데, 이윽고 새벽 3시. 막사에 불이 켜지고 '일어나' 라는 가이드 사샤의 목소리가 들린다.
숭늉으로 아침식사를 하였다. 입맛은 없었지만, 행여 허기질까 꾸역꾸역 먹어 둔다. 화장실을 다녀온 후 본격적으로 정상 등정에 필요한 복장과 장비를 챙긴다. 어제 마지막 고소적응 산행 때와 달라진 것은 아이젠,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상의 자켓속에 파일자켓을 하나 더 입는 정도이다. 가이드 사샤가 준비를 제촉한다. 4시까지 준비하지 못하는 대원들 기다려주지 않고 출발하겠다고 얼음장을 놓는다. 모두들 정신없이 준비한다. 온수를 보온병과 수통에 가득 채우고,  미리 준비된 행동식 한 팩을 넣고 비상용 여분의 장갑을 배낭에 넣고 막사를 나서니 비장한 마음이 든다. 막사 근처 설상차 탑승하는 곳에 와서 다른 대원의 모습을 확인하고 설상차에 오르니 4시가 조금 넘었다. 마치 대원들의 모습은 특수작전에 투입되는 특공대원 같은 느낌이 들었고, 여태 어려운 산행 때는 늘 그러하였듯이 대체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려 하는지 회의도 동시에 느껴진다.
설상차에 탑승 완료하니 이내 굉음을 내며 설상차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확히 45분 후 산행기점인 고도 4,700 m 지점인 파트코트락에 도착,  그러나 하느님도 야속하시지 그동안 약 3주간 날씨가 화창하여 거의 대부분의 정상 공격 팀들이 대부분 성공하였다고 들었는데, 오늘은 기운이 좋지 않다. 세차게 부는 바람의 세기와 온도는 배럴산장에서의 바람과 판이하게 다르다. 산행은 시작되었다. 나는 비교적 약하다고 생각되는 대원을 가이드 사샤 바로 뒤에 세우고, 후미엔 태수형님이 맡기로 하고 전대원이 사샤의 걸음에 보조를 맞추면서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옮긴다. 아직 태양이 떠오르지 않아 날씨가 어떨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음력으로 18일이니 만월에 가까운 달빛으로 어느 정도 밝은 기운을 느낄 수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해 마음이 무겁다. 한치앞을 분간할 수 없는 화이트 아웃사항, 이렇게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여명이 지나고 날씨도 좋아지길 바라며 오르길 계속한다. 차차 태양이 떠오르고 따스한 햇살이 내리면 따스한 햇살에 의해 조금씩조금씩 우리 앞길을 가로 막았던 안개가 벗겨지리라 믿으며 발걸음을 옮긴다.

한 참을 오르자 기압 차 때문인지 목구멍의 수분이 말라 목이 따갑다. 계속 침을 삼켜 가며 오른다. 이제 어둠은 서서히 물러나고 있으나 안개는 여전히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자욱하다.

타 들어 가는 목에 침 삼킴의 횟수는 점점 늘어가고 손가락 끝이 시려오기 시작한다. 장갑안에 미리 준비한 핫팩 덕분에 그런데로 참을만 하다. 손가락 끝을 스틱 손잡이에 계속 마찰시키면서 오르니 괜찮아진다. 점점 고도는 높아지고 이제 어둠이 거의 걷혔으나 날씨는 점점 나빠진다.
세시간 반 정도의 산행을 할 즈음 이제는 5 m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더더욱 안개가 짙어지고, 급경사 구간을 어렵게 돌파하자 트레바스 구간이 어어 지고 이곳이 동봉과 서봉 사이의 안부인 새들이 아닐까 생각할 즈음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팀 보다 2시간 앞서 출발한 일본 원정팀이 등정을 포기하고 발길을 돌려 하산하고 있있다. 우리팀도 긴급 회의를 열어 더이상 정상 공격은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무거운 발걸음을 돌리기로 하였다.

10~20분을 하산하는데 갑자기 파란하늘이 보였다  다시 한치앞을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안개가 몰려 오기를 반복한다. 여기서 포기할 순 없다는 마음으로 대원들의 발길을 정상으로 돌리기로 하였다.

등반을 시작한지 4시간여 드디어 서봉과 동봉의 안부인 새들 5,416 m 지점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바람의 세기가 장난이 아니다. 여러팀이 속속 모여들었지만 가이드들이 정상공격을 허락하지 않는다. 대원들의 상태를 점검하여 고소증세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한 3분, 준비가 너무 소홀한 2분은 하산하도록 결정하고, 나머지 대원은 새들에 머물며 기상상태를 체크해 정상 공격을 결정하기로 하였다.

30여분을 기다렸지만 기상이 좋아질 기운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태풍에 가까운 강풍과 개스로 동,서봉은 바라 볼 수 조차 없다. 일본 원정팀을 비롯한 많은 원정팀들이 발걸음을 돌리는 가운데 우리에게도 이제는 무거운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는 순간이 다가왔다.

다음 기회로 등정을 미루기로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잠깐 화이트 아웃이 풀리고

 

 

 

새들(5,416 m)에서 기상이 좋아지길 기다리는 대원들

 

 

 

 

 

하산을 결정하고 새들에서 마지막으로 한 컷

신철기/김태수/이대영

 

정상 부근에는 다시 먹구름이 몰려오고

 

 

 

 

 

 

 

5일째 : 8월 4일

- 날씨 : 맑음
- 운행 : 7:30 아침식사(현지식) -> 8:30 산행 시작 ->12:30 고도 4,500 m 도착
             ->12:40 하산 시작 ->14:30 배럴산장 도착

 

 

어제도 오늘도 잠을 잔건지 깨어있었던건지 분간할 수가 없다. 
오늘은 마지막 고소적응 훈련, 배럴산장에서 고도 4,700m 파트코트락까지 갔다 오는 일정이다.
아침식사를 하고 보온병에 온수를 담고, 간식을 챙겨 배낭에 넣고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도 날씨는 너무 쾌청하다. 최근 3주가 이렇게 날씨가 좋았다고 한다. 이대영 대원은 날씨가 너무 좋다고 내일은 나빠지라고 연실 떠들어댄다. 제발 저 입방정이 실제가 되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고도 4,400 m까지는 어제 다녀온 터라 가볍게 도착하였으나, 오를수록 경사가 급해지고, 고도가 높아지니 숨이 차고 힘이 많이 든다. 내일 정상등정을 위하여는 오늘 오후에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한다. 파트코트락’까지는 아직도 200 m 정도의 고도를 높여야 하지만 내일 정상 도전을 위한 충분한 휴식을 위하여 4,500 m 지점에서 잠시 머무르며 고소 적응을 하고 하산하기로 결정하였다.
하산 후 내일 정상등정 시도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고, 내일 정상등정 성공을 다짐하며 일찍 취침에 들어갔다.

 

드디어 카메라 날짜를 제대로 세팅하다.

 

오늘 날씨는 화창하기 그지 없습니다. 

등반일에도 제발 날씨가 도와주길...

 

 

 

외국 등반객과 함께

베낭이 장난이 아니죠?

 

 

 

 

 

 

 

 

 

 

 

힘드신 표정이 역력하죠?

 

 

 

 

 

 

 

시간날때마다 기념촬영을 원했던 이대영 대원

이런걸 자꾸 찍으면 정상에 못 올라간다는 속설이 있던데...

 

 

 

 

 

 

설상차가 상행, 하행 등반객을 태우기 위해 수시로 운행하고 있다.

상행시 파스트쵸브 바위 밑인 4,600 m 지점까지 이용시 400유로

          파스트쵸브 바위 윗부분인 4,700 m 지점까지 이용시 추가로 200유로를 더 지불해야 한다.

하행시 파스트쵸브 밑부분부터 Barrel Hut까지 300유로를 지불해야 한다.

하행시 설상차는 5,000 m 지점까지 운행한다고 한다.

 

 

 비닐봉지를 이용해 눈썰매를 타고 있는 이대영 대원

정상에서 패러글라이더를 이용해 하산하는 이도 

 

 

 

 

스노우 모빌을 이용하는 관광객도

이용료는 500달러

인상적으로 보였던 두 어른과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등반객 

밑에서 바라보면 참 완만한 오르기 쉬워보이는 산이죠?

하지만 막상 올라가보면 경사가 장난이 아니랍니다.

 

 

 

 한여름에 나타난 스키객

 상행시에는 보이지 않던 급류로 인해 바렐 산장 근처에 도착하면 이리저리 발길을 돌려야 한다.

 다시 베이스 캠프인 바렐로

4일째 : 8월 3일

- 날씨 : 맑음
- 운행: 7:30 아침식사 -> 8:30 호텔 출발 -> 9:15 하단 케이블카 탑승 ->9:45 하단 케이블카 하차 

          (고도 : 3000m) ->9:53 상단 케이블카 하차(고도 : 3500m) ->11:10 리프트 탑승

          ->11:25 리프트 하차(고도 : 3800m) ->11:50 배럴 산장도착(숙소용 컨테이너)

          ->14:25 고소 적응훈련 시작->16:40 4,400 m 도착 ->17:00 하산 시작->18:30 산장 도착

 

오늘부터 정상등정을 위한 등반이 시작된다. 우선 모든 장비와 짐을 고도 3800m인 배럴산장까지 가져가야 한다. 먼저 호텔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아자우 마을(2200m)로 가서 케이블카 탑승을 기다린다.
배럴산장까지는 두 차례의 케이블카와 한번의 리프트를 이용해 오른다. 1차 케이블카를 타고 내리니  고도는 3000 m로 제법 차가운 바람이 기를 죽인다. 2차 케이블카를 타고 내린 지점은 고도 3500m. 더 차가워진 바람에 윈드자켓을 급히 꺼내 입는다. 마지막으로 1인승 리프트를 탑승해야 하는데 이곳 또한 여러 외국 등반 팀들로 인해 상당한 대기시간이 필요하다. 설상가상으로 이곳 리프트는 아직 운행하지 않는다. 지루한 기다림이지만 모두들 산행에 대한 들뜬 마음과 눈앞에 펼처진 코카서스 산맥의 설산 파노라마를 감상하고 사진 촬영을 하느냐 지루함을 느끼지 못한다.
마지막 리프트를 베낭을 끌어안고 타서 한참을 올라가 내리니 배럴산장이 보인다.(고도 3800m)
여기서 숙소용 컨테이너까지 무거운 카고백을 몇 차례에 걸쳐서 나르고 짐을 정리한다.
점심은 식당용 컨테이너 막사에서 현지식으로 가볍게 하고는 본격적인 설상에서의 고소적응 훈련을 준비한다.
처음으로 이중화를 착용하고 등반에 나선다.
4시간 정도 등반하여 고도4200m의 퓨리엇 산장을 지나 고도 4,400 m 지점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한다.눈앞에는 코카서스 산맥의 파노라마가 가히 장관이다. 나는 이중화에 짧은 양말을 신어서 발목 위쪽으로 이중화의 가죽부위와 마찰로 인해 쓰린 통증이 나타난다. 다행스럽게 이곳 4,400 m까지는 고소증산이 없는 것 같다.
간단히 기념촬영하고 하산한다. 막사에 도착하니 이제 고소가 오는 모양이다. 한 동안 두통이 오더니 다행이도 이내 잠잠해 진다.
 

Cheget 마을에 위치한 숙소

직경이 1 m 정도는 되어 보이는 듯한 소나무가 건물앞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 이색적이며 이곳 건물의 특징은 크게 외장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체스콜을 지나 아자우에 도착

곤드라를 두번, 마지막으로 리프트를 이용하여 가르바쉬(바렐산장)까지 이동

 

 

 

곤드라에서 내려 리프트를 이용하기 위하여 짐을 나르는 대원들 

2차 대전시 엘브루즈에서 전사한 병사들을 위한 추모비

왼쪽의 케이블카는 구소련 시절에 만들어졌다고

오른쪽에는 우리가 상행이 이용하였던 곤드라가 위치해 있다. 

 

 

 

리프트를 이용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등산객 

15분정도 리프트를 이용해야 하는데 떨어질까봐 마음이 조마조마 했었다.

 

엘브루즈 정상에서 부터 흘러내리고 있는 빙하

리프트를 이용하여 올라가는 중에 보이는 캠프 족

저렇게 고소 적응하며 산행하는 것이 좋을 듯 

 

드디어 가르바쉬(3,700 m)에 도착

우리가 이용할 Barrel Hut

어디서 사용하던 깡통을 주어다 놓고 숙소로 개조한 것인지 궁금하다.

너무나도 환경이 열악한 깡통의 내부

침대인지 아닌지 바닥이 너무 울퉁불퉁해 잠을 청하기가 어렵다.

한 숙소에 6명이 투숙한다.

안쪽에 4명, 입구쪽에 약간의 칸막이가 있고 2명

3분 선배님들의 배려로 후배 6명이 함께 숙소를 이용하였고, 선배님들은 일본 등반객과 함께 묶었다.

 

고소적응을 위해 점심식사 후 퓨리웃 산장(4,160 m)를 지나 4,400지점까지 산행하였다.

상행 4시간, 하행 2시간

이대영/정창호/신철기/최승원/민양식/김태수/윤석완/이범훈/가이드 사샤 

강한 복사열로 이렇게 등반하는 사람도 간혹 보인다.

정신 나간건 아니겠지?

 

왼쪽 앞으로 조그만하게 보이는 곳이 퓨리웃 산장이다.

 

가라바쉬(3,700)부터는 빙하위를 걸어 등산을 시작한다.

특히 퓨리웃 구간까지는 간혹 크레바스가 있어 가이드가 바짝 긴장을 하고 안내 산행을 한다.

밤새 얼어 있던 빙하 표면이 한 낮에는 곳곳에 개울을 방불케하는 물줄기가 형성되어 흘러 내려가고 있다. 

 최승원/윤석완/민양식/정창호/김태수/신철기/이대영/이범훈

 

 

 

등반기간 내내 저렇게 많은 먹구름이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4,400 m 지점에 도착하여 

산행기간 내내 고소병으로 X고생을 한 윤석완 대원 

 

곳곳에 야영을 하는 등반객들이 눈에 들어오네요.

다음 원정 기회가 주어진다면 반드시 야영을 하며 등반을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오른쪽 뒤 낡은 건물위에 보이는 하얀박스 두동이 수십명의 등반객들이 이용해야하는 유일한 화장실

생각만해도 구XX이...

  

 

 

 

저멀리 엘브루즈 서봉(5,642 m)과 동봉(5,621 m)이 오랜만에 모습을 보여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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