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아페후를 오르는 탐사대원들

 

 루아페후 등산 중 큰아들 건호와 함께

 

 

 

승마 트래킹을 즐기는 대원들

 

 

에베레스트 초등자인 힐러리경이 세운 모험활동장에서...

 

 

제 13일(방콕 전일 관광)
  휘발류 1리터에 400원 하는 나라다. 생각보다 교통 체증이 엄청난 나라다. 오늘 오전에 우리를 안내할 사람은 태국 현지인 가이드이다. 그는 자신의 한국 이름을 만득이라고 했다. 충분히 나온 배와 넉넉한 얼굴에 유머가 넘치는 가이드였다. 한국에는 한번도 안 가 보았다는 그인데 그래도 한국에 대한 지식이 상당하다. 한강, 서울대, 연대, 고대, 강원도, 부산 영도 다리 등등 한참을 이야기 하다가 소양강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능청스레 노래를 한 자락 한다.

  옛 왕궁 관광
  태국인들의 심장부와도 같은 이곳은 환상적이고 이국적인 정취가 있다. 높이 솟은 궁전과 누각, 사원들은 모두 금박 잎새, 자기, 유리로 찬란하게 장식되어 눈이 부시다.

현재 이 왕궁에 실제로 왕은 살지 않지만, 현 태국의 국왕(King Bhumibol Adulyadej)은 살아있는 사람으로 가장 고액권 화폐에 실릴 정도이며 민중의 아버지로서 "살아있는 신"으로 태국인들의 존경을 독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왕궁에서 짧은 치마나 반바지, 슬리퍼 차림은 피해야 하고 왕의 사진이나 왕을 모욕하는 행위를 하면 안된다. 만약 반바지를 입었을 경우 왕궁 앞에서 치마처럼 둘러서 가릴수 있는 천조각을 빌려서 입장할 수 있다. 특히 이곳은 한국인 가이드가 동반할 수 없는 지역이라 혼자서 들어가거나 아니면 태국인 왕궁 가이드를 동반해야 한다.

  어느 누구든 최고 지도자가 살고 있는 곳을 가보고 싶어한다. 외국인들이 경복궁이나 청와대를 가보고 싶은 것처럼 한나라의 왕궁은 신성하고 흥미로운 곳이다. 사원과 왕궁을 중심으로한 관광 단지는 매일 오전 8시 30분에서 12시까지, 오후 1시에서 3시 30분까지 개장된다

 에머랄드 사원 관광
  왓프라케오, 또는 온통 에머랄드와 같은 보석으로 치장했다고 해서 간단히 줄여서 에머랄드 사원이라고 부른다. 에머랄드 사원은 태국 내 1천9백개의 사원 중 단연 최고로 꼽히며 1782년에 건축된 이 사원이 있는 왓 프라케오(Wat Phra Kaeo)에는 15세기에 조각되어 라오스에서 들여와 18세기 말에 여기에 안치된 태국인들이 국보 1호로 꼽는 75㎝ 높이의 신비스러운 에메랄드 불상을 만날 수 있다. 원래 이 불상은 라오스에서 가져와, 새벽사원에 모셔졌다가 이곳으로 오게되었다. (태국어로 Wat은 사원(temple)을 의미한다.) 특히, 이 불상은 계절에 바뀔 때마다 태국의 부미볼 국왕이 직접 불상의 옷을 갈아입히는 의식을 거행한다.
 방콕 수상시장 관광
  방콕을 가로지르는 차오프라야 강은 중요한 교통로 뿐 아니라 이곳 사람들의 생활 용수로도 중요하다. 강가에 늘어선 수상 가옥과 시장 사람들, 열대 과일의 천국이다. 강이 오염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비록 흙이 섞여있지만 물이 결코 오염되지 않았다. 그네들은 세수도 하고 목욕과 세탁도 한다. 석회질이 많이 섞여 있단다. 메기-물반 고기반동양의 베니스, 방콕 수상시장 새벽사원으로 이어지는 진한 흑빛을 하고 있는 차오 프라야 강(Chao Phrya River)의 곳곳에는 오래된 나무로 지어진 주택들과 배를 타고 물건을 파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판매되고 있는 물품들은 매우 다양하여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 육류, 어패류, 수공예품 등 갖가지 물품들이 모두 있다. 수상시장은 물과 함께 살아가는 태국인들의 생활상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으며 싱싱한 과일과 수공예품들을 즉석에서 구입할 수 있다.
관광객들을 반기며 달려드는 잉어와 탁하고 흐린 물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에 뛰어들어 수영을 즐기는 어린아이와 빨래를 하는 아낙들은 우리의 60~70년에 낯익은 광경들이다. 또한 찾아오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아 '1,000원'을 외치며 한국말을 제법하는 장사꾼들과 가격을 흥정하는 재미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망고-mango, 람부스탄-rambustan, 망고스틴-mangosteen)
차오프라야강은 언제나 황토빛 색깔을 띠고 있다. 탁한 강물이 상류로부터 반입되어 메기나 잉어들이 살기에는 적절한 환경을 가지고 있고, 우리나라의 한강처럼 방콕의 젓줄이라고 할 수 있다.
 새벽의 사원은 1842년에 준공되어 라마5세 왕의 말기인 1909년에 완공된 높이 75m의불탑입니다. 새벽의 사원안에는 부처에 관계되는 많은 불화와 조각품들이 있읍니다.

 

 보석 세공소 관람
다음에 도착한 곳은 아시아 최대 보석 전시장인 World Gems Collection 이었다. 거대한 보석 틀제작 작업장, 보석세공 작업장, 완성품 세척 작업장을 지나면서 현지 가이드(한국 교포)의 설명을 들었고, 아시아 최대 보석 전시 및 판매장이라는 명성에 걸맞는 전시장 희귀 보석들을 구경했다.  보석은 인류의 역사에서 권력과 부의 상징물로서 여겨져 왔단다. 지구상에는 3천여 종의 광물이 있으며 그중 100여종이 보석으로서 분류되며, 값비싼 보석은 20∼30여종에 불과하단다.  보석이 보석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아름다움(Beauty), 희귀성(Rarity), 내구성(Durability)이 요구되는데 보석중의 보석으로 불리우는 다이아몬드의 경우 눈부신 광채와 황홀함이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며 극소의 매장량으로 소유를 제한하고 외부충격에 대한 저항성이 강하기에 보석중의 보석으로 불려 질 수 있단다. 보석의 등급 판정은 '색깔(color)', '투명도(clearence)', '세공상태(cutting)', '크기(size)' 등이 기준이 된다는 사실도 알았다.
  30여분정도 보석에 대한 상식을 넓힐 기회를 가진 후 보석판매장에서 이번 해외여행을 떠나올 때부터 고민거리였던 아내 선물로 보석을 사기로 했다.  모든 사람들이 태어난 달과 관련지어서 설명을 했다. 나는 아내의 생일 달과는 달랐지만 국내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고 해서 진주 목걸이를 하나 샀다. 칭찬을 받을라나 모르겠다.

 

 

 

 

※ 월별 보석명과 색상 및 의미


 토산품 상점
  악어 가죽이나 가오리 가죽 제품, 불교 상품 보석 등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가격이 너무 비싸고 실질적으로 한국인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려는 것 같아 기분이 유쾌하지 못했고 나는 대나무로 만든 세팍타크로 공을 하나 사서 아들에게 선물했다.
  밤 12시 비행기라 시간이 많이 남아서 저녁 식사 후 우리는 태국 시내의 시장과 뒷골목을 둘러보았다. 다양한 상품과 장사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각종 음식류, 기념품, 옷, 토산품 등등.....호기심에 바퀴벌레를 튀겨서 팔기에 사먹어 보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바퀴벌레처럼 생겼지만 물방개 같았다. 맛은 번데기 같았다. 오광범 교장 선생님과 같이 다녔는데 어떤 네팔 사람이 다가와서 당신들 '네팔리'? 즉 네팔 사람이냐고 아주 반갑게 물었다. 그 사이에 벌써 네팔 사람처럼 되었나보다.
  드디어 비행기가 깜깜한 방콕 공항을 이륙했다. 13박 14일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의 여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깊은 수면에 빠졌다. 히말라야의 추억을 오랫동안 가슴속에 간직하고 싶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꼭 가고 싶다. 대지와 인간과 신이 함께 거주하는 히말라야를 말이다. 류시화의 시를 감상해 볼까요?

※ 히말라야의 새 ----------------- 류시화

히말라야 기슭
만년설이 바라보이는 해발 이천 오백 미터
고지대의 한적한 마을에서
한낮의 햇살이 매서운 눈처럼 쏘아보는 곳에서
나는 보았다
늙은 붉은 머리 독수리 한 마리
먹이를 찾아 천천히 공중을 선회하다가
까마귀 몇 마리에게 습격당하는 것을

원래는 자신의 영토였으나
이제는 까마귀들의 하늘이 된 곳에서
홀로 고독하게 날던 붉은 머리 독수리
까마귀들의 집중 공격에 잠시 균형을 잃고
마을의 지붕들 위로 추락할 뻔했다
그러나 붉은 머리 독수리는 초연하게 피할 뿐
까마귀들에 맞서 싸우려 하지 않았다

히말라야 고산지대
만년설의 흰 눈을 배경으로
더욱 검고 탐욕스러워 보이는 까마귀들은
늙은 붉은 머리 독수리를 얕잡아보고
사방에서 겁없이 덤벼들었다
나는 보았다
독수리의 눈빛이 한순간 흰 눈에 반사되는 것을
그러나 늙은 독수리는 이내 평정을 되찾고
한 바퀴 공중을 선회할 뿐
까마귀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한낮의 태양이 매서운 눈처럼 쏘아보는 곳
원주민들이 히말라야의 새라고 부르는 붉은 머리 독수리는
천천히 만년설을 향해 날아갔다
태양도 눈을 녹이지 못하는 그곳
까마귀들은 더 이상 그를 추적할 수 없었다
나 역시 그 흰 눈에 눈이 부셔서
그곳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제 12일(카트만두→방콕)
간단히 아침을 마친 우리는 이제 태국의 수도 방콕으로 향했다. 네팔의 비행기는 시간도 잘 지키지 않았다. 자욱한 안개와 비행기의 연착에도 안내 방송도 없고 그저 당당하다. 이런걸 느림과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공항은 트레킹과 관광객들로 인종 전시장 같았다. 공항 대기 중 화장실에 잠깐 갔다가 들어오는데 공항 관리인이 못 들어가게 한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당신 외국인이냐고 묻는다. 아마 나를 네팔 인으로 생각했는가 보다.(ㅋㅋㅋ...)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비행기는 이륙을 하였다. 비행기의 좌측으로 보이는 히말라야산맥의 빙설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자연의 위대함에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그리고 밑으로 보이는 가파른 사면에 계단식 경작지와 작은 집들이 수없이 흩어져 있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지표상에 나타나는 인간 거주의 취락과 경관은 지표상에 인간이 모자익한 것이라고(Human Mosaic)..... 벵골만을 건너 방콕으로 가는 도중에(갈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어느 구간은 항상 기류의 흐름이 나쁜지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렸다. 아마도 내 생각에는 히말라야 산맥을 돌아 나오는 제트 기류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항공기가 방콕 가까이 접어들자 여기는 전혀 딴 세상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메남 평야(차오프라야 강에 의하여 형성된 거대한 퇴적 평야)의 광대함과 잘 정돈된 경지들이 평야 지대임을 잘 나타내고 있다.
  공항에 도착하자 창 밖으로 벌써 후끈한 기운이 느껴져 여기가 열대의 나라임을 금방 느낄 수 있다. 해가 저물고 있으므로 오늘은 편히 쉬고 내일 방콕 전일 관광을 하기로 했다. 공항에서 호텔로 오는 도중에 한국인 가이드는 내가 지금까지 본 어느 관광 가이드와는 비교할 수 없는 프로였다. 해박한 지식 뿐 아니라 고급 언어와 문장의 구사 능력 등 이런 가이드를 만나는 것도 여행의 큰 복이리라. 그에 의하면 태국은 빈부의 격차가 매우 크고, 내기와 도박의 천국이며 킥복싱과 축구의 광들이 사는 나라, 그리고 사원과 승려의 나라, 소승불교에 바탕한 내세에 희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이라 했다. 약 7000여 교민이 산다고 했다. 
  태국왕실의 승려로부터 전수된 민간요법으로 전래되어온 전통지압법인 '태국전통안마'를 체험하러 갔다. 전통 안마장은 겉보기에는 우리나라 동네 목욕탕(찜질방)과 비슷한 시설을 한 것 같았다.  사전에 예약된 일행이 도착하자마자 1대1로 마사지사(안마사)가 붙어 깨끗하게 발을 씻긴다.  20여명에 이르는 일행이 커다란 방에 나란히 눕자 마사지사가 1시간 30분정도 땀을 뻘뻘흘리면서 온몸의 혈을 눌러 피로를 풀어준다.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비교적 규모가 큰 전통안마장엔 태국의 3가지 특수학교(코끼리 학교, 원숭이 학교, 안마 학교) 중의 하나인 '안마 학교'를 졸업한 600여명의 안마사들이 대기한단다.  원래 장시간에 걸친 참선 후에 굳은 스님들 근육을 풀기위해 행해지기 시작했다는 전통안마는 최고의 피로회복 마사지로 자리잡았단다. 

제 11일(포카라 →카트만두)
  모처럼 좋은 호텔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우리는 07:00 간단한 차와 빵으로 아침을 해결한 뒤 일찍이 카트만두로 향했다. 페디로 올 때 본 길이었으나 새롭고 훨씬 더 친근감이 느껴지는 계곡을 달렸다. 버스 운전 기사는 올 때보다는 얌전한 기사였지만 중앙선도 없는 이 하이웨이(?)를 달리는 우리는 여전히 약간 불안했다. 오후 2시경 카트만두에 도착하자 예의 그 매연이 메케했지만 올 때보다 덜한 것 같았다. 벌써 약간의 적응이 된 것일까? 비원에서 한식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김치찌개와 오이 김치의 시원한 이 맛! 누군가 식민지 통치의 마지막 정복 단계가 언어와 입맛이라고 했다더니 길들여진 입맛을 어찌 속이랴! 점심 식사 후 우리는 Royal Singi Hotel에 여장을 푼 후 시내 관광과 개인별 쇼핑을 하기로 했다. 
  시내는 전형적인 옛 도시와 아주 적은 부분이나마 현대식 건물들이 복합되어 있지만 대체로 구 시가지가 그대로 존재하는 도시다. 가운데 공터가 있고 사각형으로 3-4층 높이의 전형적인 옛 건물들이 그대로 있고, 시내 곳곳에 작은 사원과 불상들이 있는 사원의 도시이다. 어디에서고 향 타는 냄새와 연기, 먼지들로 자욱하다. 수많은 경적, 오토바이와 릭샤(자전거 인력거)가 시도 때도 없이 다닌다.
  또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옛 물건과 여러 가지 수공예품 양피 가죽 제품 등 현대화와 돈에 맛을 들인 상인들의 반짝이는 눈이 인상적으로 보이고, 무쓰를 바른 젊은이들 등 이미 현대화의 물결에 휩싸여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인간이 만들어낸 여러 가지 인위적 환경들에 의해 이곳 역시 공해와 소음에 찌들어 가는 것 같다.
  각자의 쇼핑이 끝난 후 저녁에는 정원이 있는 식당에서 통돼지 바비큐로 파티를 열었다. 전통적 악기를 연주하는 네팔 악사와 레쌈삐리리...... 그리고 긴장이 풀려서인지 떠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미련 때문인지 전통 네팔 증류주인 락시에 흥건히 젖어버렸다.

제 10일(New Bridge→포카라)
  원래 간드룽에서 자려고 했던 것이 애초의 계획이었는데 전날의 피로로 인하여 뉴 브리지에서 자고 오늘은 포가라까지 가야하는 긴 여정이 되었다. 계곡을 따라 예의 걸음을 걸으며 내려오다가 간드룽과 만나는 곳에서 능선길을 따라서 걸었다. 이곳은 계곡을 경계로 반대편의 란드룽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안나 트레킹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이다. 험한 계곡을 건너는 현수교는 중요한 도로 연결 고리이며 출렁거리는       <간드룽의 네팔 가족과>      맛이 좋다. 간드룽의 엄청난 계단식 경작지를 보면 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경지를 개척해 왔나를 짐작할 수 있다. 모두들 체력이 상당히 떨어진 듯 약간은 피곤해 보였다. 아무리 보아도 네팔 사람들의 삶은 자연에의 역행이 아니라 절묘한 조화라 해야 타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포가라 쪽으로 갈수록 날씨는 더욱 따뜻해지면서 오랜지나무에 많은 오랜지가 열려 있었다. 맛도 좋다. 기운들이 많이 빠졌다. 이곳에서 믿을 것은 오직 튼튼한 자신의 두 다리밖에 없다.
  베리뗀테에서의 점심은 그곳의 전통 음식인 달밭과 양고기를 먹었다. 양고기는 그런 대로 맛이 좋았으나 달밭은 예의 그 향이 약간의 비위를 건드렸다. 신기조산대(新期造山帶 - 신생대 제 3기에 습곡, 단층작용으로 형성된 산맥 : 형성 시기가 현재와 가장 가까움)의 활발한 침식과 급경사의 운반 작용이 활발하여 도로의 사정이 좋을 수가 없었고, 울퉁불퉁한 자갈과 돌길은 걷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이곳의 나귀는 짐을 운반하는 아주 중요한 수단이었다. 10여 마리의 나귀들이 곡물과 짐을 수송하고 있었다. 그 나귀들도 아주 일정한 보폭을 유지하며 체력을 아끼는 듯 하였다. 다 자기 살 궁리를 하는가 보다.
  이날은 이곳이 마침 우리나라의 장날 같아서 간두룽과 주변 촌락에서 나야폴의 시장으로 장보러 갔다가 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한 손에는 석유 기름을 들고 등에는 짐을 진 어린 소년에서부터 청년, 노인까지 다양하다. 노부모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가 오는지 포대기에 부모를 업고 가는 청년이 안쓰러워 보였지만 그 효심이 가상했다.
  나야폴은 이곳에서 큰 길이 지나가는 곳이며 주변 여러 마을에서 장을 보는 곳으로 우리네 옛날 장터를 연상케 했다. 갖가지 음식물이며 생활 필수품을 사서 들고 가는 사람, 닭을 한 마리 들고 가는 사람 양철판 등 건축 자제를 들고 가는 사람 등이 눈에 띄고 각종 물건 판매하는 곳과 옷 수선 하는곳 등이 정겹다. 나의 어린 시절에 보았던 시골 장터가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간다. 어려움 속에서도 모두 나야폴까지 도착했다. 7박 8일의 진짜 걷는 트레킹의 종점이 여기였다.         <나야폴의 장터>
 가슴이 뿌듯하다. 피곤이 겹쳐서인지 포가라로 이동중인 버스안에서 모두는 잠시 경관을 구경하다가 이내 깊은 잠으로 빠졌다. 포가라에 도착한 우리는 곧장 포와湖(Pehwa)로 가서 작은 보트를 타고 모처럼 시원함을 즐겼다. 호수 안에 있는 섬의 힌두교 사원을 관람했다. 포와호는 굉장히 컸으며 주변의 빙하 녹은 물이 유입되어 도시 주변에 있는 호수로는 수질도 비교적 좋은 편이었고, 이곳에서 보는 마차푸차례와 안나푸르나의 만년설은 가히 절경인데 유감스럽게도 구름이 앞을 가려 절경을 볼 수 없음이 안스러웠다. 남들이 찍어놓은 사진을 보고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이곳 포가라에서 Tibet Hotel에 도착한 우리는 모처럼 상쾌하게 샤워를 하고 면도도 하고(모처럼 내가 면도를 했더니 어떤 사람은 나의 놀라운 변신에 나를 구분하지 못했음...어흠!!!) 호텔 옆 식당에서 시원한 맥주에 만두에 피자에 쇠고기·닭 스테이크(닭이 더 비싸다 - 닭은 곡물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닭은 초식 동물이 아니라 재배된 곡물을 소비함에 있어서 인간의 경쟁자로 볼 수도 있다)를 즐겼다.
제 9일(도반→New Bridge)
  하산길이라 포카라에서의 여유 있는 휴식을 위해서 좀 더 많이 걷기로 했다. 그런데 도반에서 촘롱까지의 천길 계단의 W자형 오르막 내리막은 무릎에 심한 충격을 주었고 몇몇 일행은 더 큰 의지와 인내심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의외로 아이들은 잘 걸었고 노장들의 투혼도 빛났다. 촘롱에서 온 길을 되돌아보니 참으로 우리들이 장하게 느껴졌다.
하산길에 지형을 관찰해 보았다. Hot spring이 있는   지누다나에서 계곡을 따라 걸을 수만 있다면 안나로 가는 트레킹은 촘롱의 험한 W자 지형을 거치지 않고 훨씬 수월하게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왕룡씨의 말에 의하면 여름 한 철이 지나면 우기 때의 빗물로 인하여 심한 산사태와 지형의 침식으로 계곡이 완전히 변하여 길 자체가 없어지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리를 전공한 나로서는 충분히 이해           <포터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곳은 신기 습곡 산지로써 침식에 약한 지반일뿐더러 하상(河床)의 경사도가 심하여 왕성한 침식 활동이 지금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즉, 새로운 지형이 끈임 없이 형성된다는 얘기다.
  계곡의 물이 한없이 깨끗하리라 생각하면 안 된다. 작은 계곡의 물은 아주 맑지만 주류(主流)는 빙하의 녹은 물과 끊임없이 공급되는 침식 물질에 의해 석회질의 공급이 왕성하여 물이 약간은 청회색이다. 퇴적물이 많이 섞여 내려오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감자 가루의 녹말과 같은 미세한 석회질 물질이 많이 공급된다. 급경사의 계단에 그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는 포터들의 무릎이 성한게 용하다.
  New Bridge에서의 전기도 없는 모닥불의 밤(락시와 네팔 노래와.... 우리의 호프 기표의 연변 시리즈.....(......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천년이나 묵은.......!!!!) ABC까지 갔다 왔고 이제 내일 하루만 더 걸으면 걷기가 끝난다는 안도감 등으로 기운이 쭉 빠지는 저녁이다..
1960년대의 한국을 연상하는 나무 장사, 병아리 키우기 등등...
제 8일(MBC→도반)
  이미 MBC는 상당한 고도라서(3,700m)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띵하고 정신이 맑지 못하다.(후에 들은 얘기지만 오광범 교장 선생님께서는 아침에 일어나셔서 안병남 선생님께 '안 선생님 나 정말 못 올라갈 것 같아'라고 여러 번 말씀 하셨답니다) 아침 8시에 MBC를 출발하여 우리 일행은 우리의 마지막 목표 지점인 ABC(4,130m)를 향해서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미 우리의 박 선생은 얼굴이 붇고 창         <안나푸르나 1봉의 웅자>          백 해서 도저히 올라갈 것 같지가 않다. 그래도 표 사장님의 독려와 응원에 힘입어 출발을 시작하였다.(사실 표순남 사장님은 킬리만자로이까지 등정한 베테랑인데 처음부터 박혜열 선생님을 끝까지 독려하며 ABC까지 인도함. 그런데 표 사장님이 잘 하시는 말씀이 '나의 체력은 박 선생님 체력하고 똑 같다'...ㅋㅋㅋ) MBC에서 라마가 당신들은 축복 받은 그룹이고 모두 너무 착한 사람들이라고 극구 칭찬을 한다. 왜냐하면 잠시만 구름과 안개가 몰려와도 안나의 선경을 볼 수 없단다. 그런데 안나가 끝까지 우리를 환영하고 허락했기 때문이란다.
  골바람이 거세게 위로 치분다. 산바람과 골바람이라는 지형과 바람과의 관계를 여기보다 더 정확하게 보여주는 곳이 있을까? 말로 기압차(氣壓差)를 설명하지 않아도 실증적으로 아주 잘 알 수 있다. 10시쯤 ABC에 도착하여 사방을 돌아보니 Hiunchuli(6,441m), annaprna Souhth(7,219m), annaprnaⅠ(8,091m), Gangapurna(7,483m), annaprnaⅢ(7,855m), Machhapuchhre(6,995m) 빙설의 병풍이 너무도 장관이라 말로 형언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4000m나 더 솟아있는 안나 1봉은 너무도 높다.
  인간이 외경감(畏敬感)을 느끼기에 충분하였고 가히 인간이 접근하기 어려운 땅이다. 홍적세(洪績世) 때의 거대한 빙하(氷河)의 침식곡(浸蝕谷:U자형 골짜기)이 확연했으며 안나 1봉의 가파른 낭떠러지 옆으로 보이는 선명한 습곡작용(褶曲作用)의 흔적도 보인다. 지구의 거대한 에너지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거의 4㎞ 이상 늘어선 엄청난 빙퇴석(氷堆石:moraine - 빙하에 의하여 운반된 물질이 빙하가 녹는 말단에 쌓여 형성된 퇴적물)등등 빙하에 의해 형성된 현재적 물질과 과거의 흔적이 뚜렷하다. 잠시 후 사선을 헤매던 우리의 박선생까지 21명 전원이 여기 안나의 베이스 캠프에 다 모였다.
  김영식 대장과 한왕룡 사장님의 말에 의하면 저기 보이는 안나푸르나 남벽 빙하 속의 어딘가에 한국의 지현옥 대원의 시신이 있다고 말했다. 전에 등반 때 하산하다 변을 당해 저기 만년설에 묻혔단다. 천길 만 길의 저 만년설 속에 우리의 한국 낭자가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울컥 했다. 우리 모두는 모여서 지현옥 대원의 죽음에 대해 묵념했다. 그리고 우리 일행의 최 연장자 오광범 교장 선생님의 선창으로 우리 각자와 가정의 평화 그리고 한반도의 통일과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만세 3창을 불렀다. 여러 가지 사진 촬영과 주변을 구경한 후 우리는 다시 하산해야 했다. 쉬엄쉬엄 내려왔다. MBC에 도착하니 말로만 듣던 고산 증세가 나에게도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 그런데 잠시 하산해서 고도를 낮추니 곧바로 나았다. 참으로 묘하다.
       <ABC에서의 우리들>            우리는 여기서 다시 공기의 소중함을 느꼈다. 실질적으로 대류권의 두께는 15㎞ 밖에 안 된다. 지구의 반지름 6400여 ㎞에 비하면 얼마나 얇은 것인가? 농구공에 약간 두꺼운 표지로 발라놓은 두께밖에 더 되겠는가? 이렇게 적지만 삶에 필수 불가결한 대기를 오염시키는 인간은 반성하고 대기 오염 방지의 필요를 절실히 느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그 대가를 바로 되돌려 받을 테니까......     
  애초의 계획을 변경하여 좀 더 많이 도반까지 하산하기로 했다. 하산 도중 지난번 보았던
윤여신 선생과 그 일행을 도중에 만났다. 발목을 약간 다쳤지만 여기 까지 와서 트레킹을 포기할 수 없어 왔다며 땀을 뻘뻘 흘린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단독으로 서울에서 왔다는 한국의 대학생, 전주에서 왔다는 처녀 선생님 두분, 또 다른 여자 대학생과 많은 외국인 등 이 오지를 찾아 무언가 탐구하고 고민하는 젊음이 참 멋있어 보인다. 나는 왜 더 젊었을 때 이런 문화 체험을 하지 못했을가? 후회가 되었다. 내 아들놈들은 반드시 일찍 체험시키리라........                                   
  도반에 도착하여 오랜만에 양말을 빨고 머리를 감으니 아주 상쾌하다. 꼬마들의 당참과 환갑이 지난 교장 선생님과 안병남 선생님의 노익장이 놀랍다. 또한 맨 뒤에서 쳐진 사람들을 끝까지 다독거리며 챙기시는 표순남 씨의 헌신적 보조와 백전노장 답게 팀을 리드하시는 한왕용씨와 김영식 선생님의 차분하고 흐뜨러짐 없는 리드는 우리의 트레킹을 훨씬 수월하게 만든 것 같다. 
  왜 여기에 오는가? 걷는 것 자체가 여정이다. 편하게 관광이나 하려면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곳의 사업 지구나 롯지에서 장사를 하는 젊은이들은 거의가 영어 회화가 가능하다. 실재로 우리들도 짧은 영어 회화로 그들과 의사 소통이 가능했다. 국제어로서의 영어 회화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그리고 바디 렝귀지는 역시 만국 공용어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제 7일(히말라야 호텔→M.B.C.3700m)
  히말라야 호텔을 출발했다. 이제 경사가 점점 더 급해진다. 3000m를 넘어서자 어지럼증이 더하다. 빙하 녹은 물은 소리쳐 흐르고 얼어붙은 빙벽이 보이고 북 사면은 온통 눈으로 덮여있다. 경사를 갑자기 높였기 때문에 여기서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천천히 걸으라고 했다. 삼삼오오 무리지어 그냥 걷는다. 도중에 네덜란드에서 왔다는 피부색이 검은 여인이 사탕 한 알을 건넨다. 에너지 소스(energy source)라 했다. 우        <MBC에서 주인장들과>        리도 초코렛을 주었다. 이 깊은 안나푸르나의 성역에서는 너와 나, 인종과 문화의 차이도, 언어의 벽도 다 필요가 없는 듯했다. 얼마쯤 걸었을까?......... 저 멀리 MBC가 보였다. 절로 힘이 솟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하나 둘씩 모두 MBC에 도착했다.
  골바람이 몰아친다. 먼지를 동반한 고약한 바람이다. 안나의 북 사면에서는 거대한 눈바람이 기둥을 만들며 하늘로 솟구친다. 마차푸차례 베이스 켐프에서는 히윤츄리와 안나, 남봉 안나 1봉, 강가푸르나, 마차푸차레 등의 설산(雪山)이 산줄기를 형성하여 마치 거대한 빙벽 병풍을 쳐 놓은 듯하다. 빙하에 의해 침식 받은 봉우리들은 날카롭게 솟아 있고 아름답다 못해 두렵고 가슴이 서늘하다. 4000m나 올라왔는데 여기서부터 또 4000m의 안나 1봉이 솟아 있으니 4㎞를 수직으로 세워 놓았다고 상상해 보시라.
  내일의 마지막 ABC 트레킹을 위하여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개별 롯지는 추워서 있기가 좋지 않았고 우리는 모두 식당에 모여 침낭을 옆으로 덮고 휴식을 취하면서 각자의 피로를 풀고 있었다. 밖에는 안개가 전체 롯지를 휘감아 앞뒤 구분이 안 된다. 잠시 후 언제 그랬느냐는 듯 또 깨끗하다. 천변만화(千變萬化)의 기상 변화다. 기온도 상당히 낮아졌다.
  저녁 식사 후 MBC식당에서 쿡과 포터 그리고 롯지 주인과 우리는 같이 어울려 서로의 전통 노래와 이야기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사를 한글로 적어가며 네팔 노래 "레삼삐리리"를 배웠다. 괴산 김용국씨의 대금 연주도 듣고 어설픈 나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노래도 불렀다.
진도 아리랑 등 등 ..... 네팔과 우리 전통의 교감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우리의 전통에 무관심했나를 절실히 느끼는 반성의 시간도 되었다.(갑자기 한국 노래 한 번 해 보라는데 아리랑 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 추운 날 포터들은 계곡 옆의 동굴에서 비박(Biwak=bivouac : 등산에서, 천막을 치지 않고 바위 밑이나 나무 그늘, 눈 구덩이 따위를 이용한 간단한 야영을 이르는 말임)을 한다고 한다. 남금우 씨가 우리가 약간의 돈을 내서 그          <안나푸르나의 일출>
들을 롯지에 재우면 어떻겠냐고 제의했다. 이 추운 날 이 오지에서도 인간의 빈부의 차가 이렇게 존재하는 것인가? 안쓰럽게도 우리는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그네들도 포터와 쿡 세계에 질서와 묵시적 규칙이 있어서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약간의 과자를 사 주었는데 먹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닌가? 왜냐고 물었더니 전원이 다 모여 골고루 먹겠다는 것이다. 그들 사회에 존재의 양식이 따로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트레킹 과정에서 늘 마음에 걸리는 포터 한 사람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나이가 많아 보였다. 주변 친구들에게 나이를 물어보니 나이가 70이란다. 칠십 노인이 포터를 하다니? 그들의 평균 수명이 60살 내외라고 하니까 그 노인은 한국 나이로 100세에 포터를 하는 셈이라고 했다. 그가 건강하고 장수해서 행복하다고 해야 할는지 안쓰럽게 느껴야하는 것인지 판단이 안 선다.
  전기가 없음이 이리 불편할 줄이야... 석유 버너로 불을 밝히고 네팔 노래를 배운다.
  ※렛산 피리리(날아라 나비야!!!)
1. 렛산 피피∼리∼ 렛산 피피∼리∼
우데라 쟈우키 다라마 반잘 렛산 피피∼리∼
렛산 피피∼리∼ 렛산 피피∼리∼
우데라 쟈우키 다라마 반잘 렛산 피피∼리∼
렛산 피피∼리∼ 렛산 피피∼리∼
우데라 쟈우키 다라마 반잘 렛산 피피∼리∼
렛산 피피∼리∼ 렛산 피피∼리∼
우데라 쟈우키 다라마 반잘 렛산 피피∼리∼
(비단 옷감이 팔랑팔랑∼ 비단 옷감이 팔랑팔랑∼)
(날아갑시다. 산에 살골짜기에 비단의 옷감이 팔랑팔랑∼)
(날아갑시다. 산에 살골짜기에 비단의 옷감이 팔랑팔랑∼)
(날아갑시다. 산에 살골짜기에 비단의 옷감이 팔랑팔랑∼)  레삼삐리리....

  MBC 롯지에서 일하는 K. B. lama라고 하는 24세의 청년은 기타를 아주 좋아했다. 이 히말라야의 오지 4000m의 롯지에 기타라는 악기가 있다니!(그의 설명에 의하면 그는 인도에서 인도인 어머니와 네팔 아버지 사이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인도 북부에서 긴 머리를 하고 다니다 인도 경찰에 잡혀서 칼로 머리를 잘려보기도 했고, 마리화나 등의 마약에 중독이 되어 있었는데 모든 것을 청산하고 이 히말라야의 오지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기타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그의 노래는 아주 수준 급으로 느껴졌다.
  ABC의 실제 주인은 옛날 한국 농촌의 보통 처녀 같은 이미지를 풍기는 몸집이 비교적 뚱뚱한 처녀였다. 왜 결혼을 안 하느냐고 물으니 결혼은 다음 세상에서 한단다. 그리고 지금은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례가 자신의 애인이란다. 그래서 에베레스트며 강가푸르나, K2, 마나슬루, 갠지즈강 등 다 당신의 애인 하라고 너스레를 떠니 좋아 죽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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